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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 163. 니고데모의 중재 (요 7:45~53) 7:45 하속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저희가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예수님을 잡아오라고 보낸 부하들이 빈 손으로 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왜 잡아오지 않았느냐고 다그치자 부하들의 반응이 어떠했나요? 7:46 하속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아랫사람들이 보기에도 예수님은 비범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참된 것을 말씀하시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더욱 고차원적인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가시적으로 증명해보이신 능력 또한 대단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고 악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이 세상에 얼마나 귀한 능력입니까? 어느 누가 그런 권세를 갖고 있단 말입니까? 상식이 있고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라면 감히 그런 분에게 손을 댈.. 2024. 5. 1.
[사복음서] 161. 예수님을 잡으려서 사람들을 보냄 (요 7:32~36) 예수님을 두고 그리스도다 아니다, 좋은 사람이다 아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행적과 수많은 기적을 보며 실제적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7: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예수님이 대중들 속에 이슈가 되고 신도들이 생긴 것은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그들의 기득권, 그들이 만들어온 가치 체계에 대한 큰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참에 예수님을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었습니다. 진상을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무력으로 예수님을 잡아오려 하다니... 이런 행동은 그들이 진리를 중시하지도 않고, 매우 권위적이고 힘의 논리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7:33 예수.. 2024. 4. 30.
[사복음서] 160. 유대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 (요 7:25~31)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하는 데 대한 반대자들의 견해, 예수님의 주장, 그리고 객관적인 여론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다는 비판에 할례를 예로 들어 안식일에 전신을 건전케 하는 것이 옳다는 논증을 하셨습니다. 이는 누가 들어도, 초등학생이 들어도 예수님 승!이었습니다. 요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예수님의 진리의 일격에, 종교 지도자들도 양심에 찔려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밀릴 세라 또 다른 공격자들, 더욱 드센 강경론자들이 일어나 온건파(?)들을 나무랐습니다. 죽이기로 한 당사자가 드러내놓고 성전에서 설교를 하는데 왜 손 놓고 당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며 나름의 공격 논리를 .. 2024. 4. 29.
[사복음서] 159. 안식일 논쟁과 할례 비교 (요 7:14~24)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의식하여 은밀히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은, 이제 노출을 감수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7: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오히려 매스미디어에 사실을 폭로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합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대중들은 단박에 그 적대 세력의 짓이라 의심할 것이므로 대적자들이 함부로 헤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오히려 드러내어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유대인들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제 객관적인 논리와 권능으로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 보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들을 수록, 예수님의.. 2024. 4. 27.
[사복음서] 158. 은밀히 올라가신 예수님 (요 7:10~13) 앞선 본문에서, 예수님은 형제들이 초막절 절기를 즈음하여 유대로 올라가서 명성을 내라고 조언할 때에 그 면전에서는 거절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살기 등등하여 그들을 피하여 갈릴리에서 활동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형제들이 올라간 후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예수님은 형제들이 올라간 후에 당신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않으시고 비밀스럽게 올라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7:1 이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은 전통적으로 남유다의 수도였으므로 '유대'라 불린 것 같.. 2024. 4. 26.
[사복음서] 157. 예수님을 믿지 않는 동생들 (요 7:2~9)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때는 유월절, 칠칠절과 함께 유대 3대 절기라 하는 초막절(장막절)이 가까운 날이었습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40년 광야 생활을 기억하기 위한 절기였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는 네 형제들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누이동생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말했습니다. 7: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7: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형제들은 예수님이 유대로 가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보게 되면 추종자들이 많이 생기고 예수님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라는.. 2024. 4. 25.
[사복음서] 156.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 (마 18:21~35, 눅 17:3~4) 죄 가운데 있는 형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더 나아가 형제를 용서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눅 17: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 17:4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형제가 죄를 범하면 경계하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하루 일곱 번이라고 돌아와 회개하노라 고백한다면 용서해야 합니다. 하루에만 일곱 번을 죄를 짓기도, 회개를 하기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형제가 그렇게 한다면, 끝까지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마 18: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 2024. 4. 24.
[사복음서] 155.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마 18:15~20) 교회는 죄인들이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그리스도 안에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그 중에는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를 받아 하루 아침에 술, 담배 등 중독을 끊는 사람도 있고, 옛사람의 습관이 끈질기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중에 누군가 현재적으로, 명백하게 죄라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 18:15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예수님 말씀에 의거해보면, 죄를 용납하거나 묵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폭로해서도 안 됩니다. 먼저는 다른 사람들이 없는 자리, 그 사람과만 있는 자리에서 권고하라고 하십니다. 그 형제의 위신을.. 2024. 4. 23.
[사복음서] 154. 잃은 아들의 비유 (눅 15:11~32) 오늘 본문은 그 유명한 탕자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시는 맥락이 무엇입니까?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오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영접한다며 원망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에 빠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고 죄인들을 정죄하는 교만한 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십니다.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한 닢에 이어,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적 입장이나 이해타산, 더 나아가 해묵은 신념과 하나님 역사에 대한 오해까지 내려놓고, 인간 본연의 감정과 상식으로 본질을 생각해보도록 도와주십니다. 오로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객관적으로 이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보도록.. 2024. 4. 22.
[사복음서] 153.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눅 15:8~10) 예수님은 잃은 양의 비유에 이어 잃은 드라크마 동전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눅 15: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비유 속의 여인은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드라크마는 고대 그리스의 화폐로 폴리스 시절부터 쓰이다가 2002년 유로화로 전환되었다고 합니다. 1세기 경에 1 드라크마는 데나리온처럼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녔다고 합니다. 산술적으로 보면 그리 큰 액수는 아니지만, 또 어찌 보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돈이기도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여인이라면,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를 찾기 위해 등불을 비추고 빗자루로 먼지를 쓸어가며 부지런히 찾을 것입니다. 찾을 때까지 쉬이 포기하지 못할 것.. 2024.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