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계속하여 욥에게 질문하셨습니다.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욥기 40:2)"
욥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49:4)"
욥은 친구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필사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많은 말들로 하소연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서자 그는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폭풍어 가운데서 또 질문을 이어가셨습니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 (40:8)"
할 수 있거든 위엄과 존귀로 단장하고 영광과 영활ㄹ 입고, 교만한 자를 낮추고 악인을 그들의 처소에서 짓밟아보라 하였습니다.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 (40:14)"
하나님은 또한 소 같이 풀을 먹는 힘센 짐승 베헤못을 언급하십니다. 그 꼬리 치는 것이 백향목이 흔들리는 것 같고 뼈는 놋관 같고 뼈대가 쇠 막대기 같은 으뜸 되는 짐승을을 생각해보라고 하십니다.
"강물이 소용돌이칠지라도 그것이 놀라지 않고 요단 강 물이 쏟아져 그 입으로 들어가도 태연하니
그것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누가 능히 잡을 수 있겠으며 갈고리로 그것의 코를 꿸 수 있겠느냐 (40:23,24)"
또한 물에 사는 리워야단을 언급하십니다. 그것은 너무 거대하여 노끈츠로, 밧줄로, 갈고리로 어떻게 잡을 수 없는 짐승입니다. 부드러운 말로 간청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 들짐승을 길들여 일을 시키거나 애완동물 삼을 수 없습니다. 한 번 상대해보면 다시는 싸울 엄두도 못 냅니다. 그 입에서 불길을 뿜어내고 콧구멍에서는 솥이 끓는 듯한 연기를 뿜어냅니다. 칼을 꽂아도 소용 없고, 화살을 날려도 화살촉이 꽂히지도 않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만 해도 기가 꺾이고, 아무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인간은 한계가 있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지혜와 힘과 능력의 범위 내에서, 주어진 역량을 발휘할 뿐입니다. 아무리 교만을 떠는 인간이라도 이 짐승은 개의치 않고 교만한 모든 자들 위에 왕처럼 군림합니다.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41:11)"
짐승 하나도 이렇듯 제어하기 어려운 인생들인데,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우주 만들을 만드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한계는 너무나 명확합니다.
욥은 친구들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의로움을 주장하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었을 지언정, 하나님 앞에서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은총을 베푸시고 우리 생명을 붙들어주실 때는 잘 깨닫지 못하지만, 이렇게 정면으로 주님과 마주대할 때, 우리는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생명과 힘과 지혜와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주님께 달려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손의 의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하나님 앞에 주장할 수 없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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