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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시가서

12.02. 엘리후가 말하는 주권자 하나님 (욥기 32장, 33장)

by songofkorea 2016. 12. 2.

세 사람이 돌아가며 욥을 공격해도 욥이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자, 엘리후가 입을 열었습니다.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또 세 친구에게 화를 냄은 그들이 능히 대답하지 못하면서도 욥을 정죄함이라 (욥기 32:2,3)" 


엘리후는 세 친구나 욥보다 한참 어린 사람인지라 참고 있었지만,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자 너무 답답하여 이제는 할 말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욥을 추궁할 자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이 아니라는 그런 약한 말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은 자신이 결코 사람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헛된 말을 하거나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아첨할 줄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렇듯 장황하게 서론을 늘어놓고 싶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33:6,7)" 


그가 이해한 욥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33:9~11)" 


이에 대한 엘리후의 비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33:11,12)" 


엘리후의 말은 다 옳아보입니다. 크고 광대한 우주, 그 안에서 먼지만 한 작은 지구, 그리고 그 안에 고물고물 살고 있는 인생들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존재의 무게를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요. 인생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그런데 욥이 하나님이 주시는 이런 고통이 억울하고, 자신은 그렇게 심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엘리후 자신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하나님 편에서는 모독이 되고, 그것이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마치 하나님의 대변인인 양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역설하고, 이를 위해 욥의 고난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간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요? 그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시고 대화하시고 씨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중요한 존재로, 주님께 의미있는 존재로, 인격적으로 대해주시기 때문이지요. 욥도 끝까지 하나님을 만나 대화하고 싶어했습니다. 사람들은 다 몰라줘도 하나님은 자신을 바로 판단해 주실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엘리후의 신념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엄청난 간극, 하나님 앞에 한 없이 낮아지고 겸비할 수 밖에 없는 인간 실존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굽어살피시고 공평과 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욥의 고난이 결코 이유 없는 것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욥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주는 충고는 회개하고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33:23,24)"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33:26,28)" 


세 친구의 말도 그렇고 엘리후의 말도 다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징계하시며 선인에게는 복과 상급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 예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원수처럼 대하시고 공격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그가 구원과 도우심을 구하여 외쳐 부를 때 외면하셨고, 그의 영혼을 죽음의 심연에 빠뜨리셨고, 끝까지 구원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지요. 


욥은 우리와 동일하게 흙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 죄인입니다. 그러나 그가 징계를 받은 것은 의인으로서 고난 받으실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욥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 자요, 자랑스러워하시던 자였습니다. 모범생 욥은 '그가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하며 조건부 사랑으로 치부하는 사탄의 도전이 그릇된 것임을 보여줄 대표 주자였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하나님 한 분을 사랑하는 진정한 사랑의 수준이 기대되었습니다. 물론 욥은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한계를 넘어서자 탄식과 원망과 회한의 시간을 보내야 했지요. 누구인들 안 그렇겠습니까. 


욥은 비록 자신의 죄가 있고 유한한 인간이었지만, 훗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대표 주자가 되셔서 그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완벽하게 성공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뢰하셨습니다. 욥의 인생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상식과 기대가, 일반론이요 이론일 뿐임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욥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셨고, 욥의 작은 신음과 원망 가득한 반항의 외침을 아프게 아프게 듣고 계셨을 것입니다. 먼 훗날 있을 외아들의 고통과 탄식을 생각하시며...


모순되어 보이는 양파 껍질을 한 겹 벗기고 들어가, 욥처럼 실제를 맞닥뜨리고, 하나님과 씨름하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이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높고 높으시지만 한 없이 낮아져서 우리 목소리를 들으시고, 대화하시고, 자격 없는 자들에게도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 그 구원의 소망을 위해 의롭디 의로운 예수 그리스도에게, 언뜻 너무나 불합리해 보이는 진노의 잔을 쏟아부으신 하나님의 사랑을 조우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