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은 이제 마지막 변론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결백을 힘주어 항변합니다.
그는 그가 눈으로 보는 것을 주의하여 죄를 범하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처녀를 음욕을 품고 주목하지 않았고, 이웃의 여인에게 유혹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종들에 대해서도 똑 같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만인평등사상, 겸손한 태도를 가지고 그들의 권리를 힘으로 억누르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거나 빈손으로 보내거나 못 본척 하지 않았습니다. 은금에 소망을 두고 재물의 풍부함을 낙으로 삼지 않았고, 일월성신을 섬기며 우상숭배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미워하는 자라 해도 그 멸망과 재난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욥기 31:6)"
누구든지 나의 변명을 들어다오 나의 서명이 여기 있으니 전능자가 내게 대답하시기를 바라노라 (31:35a)"
그가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결백과 순전함을 힘주어 역설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지키며 살아온 근본 이유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 앞에 살고자 힘썼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31:23)"
그렇다고 그가 결코 율법주의적으로 자기의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죄악됨을 애써 감추거나 위선을 떨지 않았습니다.
"내가 언제 다른 사람처럼 내 악행을 숨긴 일이 있거나 나의 죄악을 나의 품에 감추었으며
내가 언제 큰 무리와 여러 종족의 수모가 두려워서 대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잠잠하였던가 (31:33,34)"
이렇듯 믿음의 사람 욥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 대속자를 믿으면서도, 그 은혜와 자유를 방종함으로 오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살았고, 그의 삶의 아름다운 열매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좌로나 우로 치우침 없이, 이처럼 균형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게 합니다. 바르게 살면서도 자신에 대해 정직하고 겸손한 마음을 견지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성한 말싸움과 논쟁을 그치게 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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