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노아의 방주와 무지개 언약
동영상 큐레이션 : 창세기 대홍수 (CGNTV)
현대인들이 늘 쓰는 화석 연료는 유기체가 열과 압력을 받아 생성된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인류가 쓰고 있는 양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동식물이 죽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왜, 언제, 그리 많은 식물들과 짐승들이 무더기 무더기 묻히고 갇히고 완전히 다른 존재로 화하여 석유와 석탄과 천연가스가 된 것일까요?
오늘의 말씀
창세기 6:12,13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세기 9:14,15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
Q1. 창세기 6장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Q2. 노아의 삶은 당대의 분위기와 어떻게 달랐습니까? 전 지구적인 대홍수 심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Q3. 현대의 지질학과 화석, 홍수 설화 등은 노아 홍수 사건의 역사성을 어떻게 지지합니까?
Q4.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핵심 짚어보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절대로 인간을 무섭게 심판하고 징계하실 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실한 사랑을 하시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지만, 그렇다고 한도 끝도 없이 참고 봐주시는 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내세워 영원히 심판같은 것은 없을 것처럼 낙관할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http://www.quotesvalley.com/quotes/god/page/324/, http://blog.daum.net/sslee222/8691726 )
위 그림은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 반기독교 버스 광고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질서정연함, 수학 공식과 물리 법칙으로 설명 가능한 우주를 보며, 조물주가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것은 우주의 질서를 부여하고 운행하는 초월적인 힘과 관련이 깊지, 기독교의 성경이 계시하는 신, 즉, 인간사에 개입하여 선악 간에 상벌을 주고 인간의 소통하며 씨름하시는 그런 인격신은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위의 광고 문구는 그 중에서도 신의 ‘심판’ 측면만을 부각시켰는데요.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벌하는 신, 만약 있다면, 그런 신은 나쁘다라는 뉘앙스, 효과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선악 간의 심판자, 과연 필요 없는가?
사회마다 법 질서를 세우고, 재판관을 두고, 형을 집행하는 기관을 둡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분명히 악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적으론 그 존재 목적을 버리고 검경과 판검사들이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이 되고 정의가 서지 않는 사례가 많아 문제입니다. 국민 전체를 패닉 상태로 몰아넣은 VIP, 실상을 파헤친다고 자료 문건들을 실어나르는 검찰 관계자들이 든, 그 주체할 수 없이 가벼운 빈 박스들을 보며, 국민들은 더 이상 분노할 힘을 잃고 실소를 터뜨리고 있습니다.
선한 일엔 상을 주고 악한 일은 심판하는 재판관, 정말 필요 없나요? 아닙니다. 너무나 절실히 필요합니다. 뇌물을 받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으로 판결이 굽어지지 않는 판사, 정확히 판단하고 진상을 규명해줄 능력 있는 판사, 비단 작금의 대한민국 뿐 아니라 역사상 온 인류가 바래온 바입니다.
자국민을 많게는 1/3을 죽인 킬링필드의 주범 폴 포트는 인권운동가의 숱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법정에 서지 않고 비호를 받다가 자택에서 자연사할 때, 부모나 형, 누나 중 누구 하나는 처참하게 죽은 이를 둔 캄보디아 국민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전범을 찾아 재판정에 세우는 독일의 노력에 유대인들 뿐 아니라 먼 나라의 우리들이 왜 위로를 받을까요.
신을 믿지 않던 사람이라도 악이 판치는 세상을 보면,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가만히 계십니까? 왜 선량한 자들이 짓밟히고 악한 자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보고만 계십니까?’ 하고 항변하게 됩니다. 정의와 공평으로 우리를 판단할 재판장이 없다면, 우리 각 사람은 인생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까요? 나에게 피해를 입힌 누군가가 ‘재주 있으면 너도 해봐. 이 세상은 힘이 정의야.’ 하며 나를 루저 취급하며 비웃을 때, 우리 마음이 어떨까요?
인간이 아무리 자기 편의대로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왈가왈부해도, 성경은 역사 가운데 있었던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하고, 앞으로 있을 더 무시무시한 최후 심판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창세기 6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아담의 후예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그 죄악상이 더 심각해졌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은 ‘육체’로 전락하였고,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부터 모든 가축과 새까지 지면에서 쓸어버리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그런데 온통 죄악이 가득한 시대 분위기 가운데, 오직 한 사람,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요, 당대의 의인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대홍수 심판에 대비하여 방주 (네모난 배)를 지으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이 배는 키나 닻이 없이, 물 위에 안정적으로 떠 있기 위한 구조를 가졌습니다. 노아의 지혜로는 불가능했겠지만, 하나님께서 방주에 대한 상세한 설계도를 제시하셨습니다. 참고로, 노아가 만든 방주는 1992년 해사기술연구소의 실험을 통해 파도와 풍랑에 최적인 구조로 판명되었습니다(참조: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721).
육지 짐승들과 새들을 비롯하여, 코로 호흡하는 것들은 암수 한 쌍씩 태워야 했으므로, 그 크기는 축구장보다 더 긴, 삼층 구조의 초대형 배였습니다. 노아를 비롯하여 여덟 명의 가족이 총 동원되었습니다. 장장 120년에 걸쳐 방주를 지었습니다.마을 사람들은 ‘저 집은 도대체 왜 허구헌날 저런 걸 만들고 있느냐’며 조롱했을지도 모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브리서 11:7)”
노아가 600세 된 해, 드디어 방주는 완성되었고, ‘그가 죽을 때 심판이 온다’는 이름 뜻을 가진 무드셀라 할아버지도 최장수를 누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노아에게 가족들과 짐승들을 데리고 방주로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홍수는 7일 후로 다가왔건만, 노아의 가족 여덟 명을 제외하고는 단 한 사람도 그 배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일가족이 장장 120년 동안 배를 짓고 그토록 열심히 홍수 심판을 대비하는 것을 지켜봤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잠깐 탈 수도 있을 텐데, '설마 별 일이야 있겠어? 다른 사람들도 다 안 타네 뭐' 하면서 무시한 모양입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8,39)”
쿵! 노아 가족과 모든 동물들이 탑승 완료하고 7주일을 더 기다린 후,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 닫힌 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 해 2월 17일,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땅에서는 깊은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일 밤낮을 비가 쏟아졌습니다. 영원히 뭍에 덩그러니 있을 것 같던 방주가 순식간에 물에 떠올랐습니다. 비는 쉬지 않고 쏟아졌습니다. 이내 사람을 비롯하여 코로 숨쉬는 모든 생명체가 수장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산들도 다 물에 잠기고, 거대한 물이 온 지구를 뒤덮었습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창세기 7:23)”
위에서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것은 궁창 위의 물, 즉, 대기권을 둘러싸고 있던 수층이 쏟아진 것을 가리킵니다. 이로 인해 유해 광선이 많이 들어오고 적도와 극지방의 온도차가 커지는 등, 지구 환경이 열악해지고, 천년 장수를 누리던 인간 수명이 급감하였습니다. (자료: 한국 창조과학회)
(자료 출처 : 한국창조과학회)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진 것은 1950년대에 발견한 해령을 가리킵니다. 곳곳에서 큰 화산 폭발과 지진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광물이 풍부한 지하수가 터져나와 급격한 화석화, 찬 물에서 용암이 식으면서 생성된 베개 용암 등을 가능케 했습니다.
(해령 지도와 포천 아오리 베개 용암. 그림 출처: 한국 창조과학회, 문화재청)
어마어마한 물이 엄청난 토사를 실어날랐습니다. 지구 자전과 달의 인력으로 인해 지표면의 물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며, 지구 전 지표면에 광대한 퇴적층이 분포하게 되었습니다. 그랜드캐년의 경우, 폭 4km, 깊이 2km, 길이 500 km에 달하는 규모의 퇴적층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또한 거대한 물이 싹뚝 깎아낸 듯한 평탄면 (planation surfaces), 다지층 나무 화석, 고원의 소금 사막과 호수들은 성경에 기록된 노아 대홍수의 흔적들입니다. 이러한 자연 현상은 수십억년을 전제로 하는 동일과정설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몬태나 베어투스 산맥 (고위 평탄면), 해발 3653m에 있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
그러나, 처음 아담과 하와의 실패 때 그러셨던 것처럼, 멸망하고 심판하는 것이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바라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 가족 8인을 시작으로, 새로운 인류 역사를 펼치고자 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들이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한 것을 잘 아셨습니다. 그들의 죄악을 일일이 다루자면 살아남을 자가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에 무지개를 거시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창세기 8:21)”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9:14,15)”
노아 시대의 홍수 사건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만큼 그 죄악에 대해 무섭게 심판하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인간의 죄악상이 너무 참담하여, 누군가 고백한 것처럼 ‘내가 하나님이라면 아침 저녁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 같다’고 말할 지경이지만, 하늘의 무지개를 보실 때마다 마지막 최후 심판 외에는, 또 다시 인간의 죄악 때문에 전 지구적인 심판을 내리지 않기로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고 참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7,10)”
또한 노아의 방주는 궁극적으로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에 유일한 구원의 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킵니다. 홍수 경고를 우습게 여기고 멸망을 맞이할 것인지, 영접하는 자 모두에게 활짝 열린 구원의 닻줄 예수님을, 더 늦기 전에, 기회가 있을 때에 꼭 붙잡을 것인지, 신중히 생각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17)”
팡세
사랑하는 사람의 약점과 허물을 인내하느라 고통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적어 보세요.
'Gospel :: 복음이 궁금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0) | 2016.11.26 |
---|---|
16. 바벨탑과 민족들의 이동 (1) | 2016.11.07 |
14. 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 (2) | 2016.11.05 |
13. 두 명의 대표 선수, 첫 아담과 둘째 아담 (0) | 2016.10.17 |
12. 선악과, 그 오해와 진실 (0) | 2016.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