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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 복음이 궁금해?

12. 선악과, 그 오해와 진실

by songofkorea 2016. 9. 14.

큐레이션 : 다큐멘터러 Human’,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주제로 60개국 2,020 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키엘케고르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좋은 쪽과 나쁜 쪽의 엄청난 양극단을 오갈 수 있는 잠재성의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믿기 힘들 만큼 존엄함과 숭고한 면모와 동시에 가공할 만한 악과 부조리의 모습을 다 보여줍니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요? , 무엇 때문에 현실에서 그런 극단의 모습들이 표출될까요?   

  

다큐멘터리 Volume 1,2,3 링크 : 클릭 


오늘의 말씀

창세기 2:9,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3:4,5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에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Q1. 인간의 특별한 점은 무엇입니까? 인간의 약점과 나쁜 면모들은 무엇입니까?

 

Q2. 창세기 2 9절을 읽어보세요. 에덴 동산 중앙에는 어떤 특별한 나무들이 있었습니까? 아담과 하와에서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Q3.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금기 명령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어떤 기능을 합니까?


핵심 짚어보기


인간, 하나님의 형상

창세기 2장은 인간 창조의 장면을 줌인하여 보여줍니다.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에 대해서는 육체를 지니고 존재케 된 것과 생명을 지니게 된 단계가 구분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soul)이 되니라 (창세기 2:7)"

인간은 유기체 생물인 점 외에도,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셨을 때 생명을 누리게 된 존재입니다. 왜 이렇게 특별한 과정을 거칠까요? 바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7,28)”

인간은 육체적 욕구가 충족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있고, 선하고 의로운 것을 기뻐합니다. 예술성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아름다운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습니다. 타인과 인격 대 인격의 진실된 사귐을 갖고싶어 합니다.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을 의식하는 신의식, 그리고 진심을 다해 섬기고 사랑할 만한 경배의 대상을 찾는 종교성이 있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으신 영혼의 존재, 영원의 존재, 하나님을 닮은 자녀이기에,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취하는 것은 큰 죄악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창세기 9:6)"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삶의 터전을 섬세하고 조성하셨습니다. 삶을 누리고, 우주 만물을 관찰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느끼고 감탄하게 하셨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편 8:3~8)"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그런데 지금의 인간의 모습은 왜 이런 것일까요?

직장 일이 고단해질 때마다, 인류사에 두고 두고 회한과 아쉬움을 남기는 그 사건, 아담과 하와의 선악과 사건이 떠오르게 마련입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순간의 선택이 온 인류 역사를 좌우하다니이분들이 테스트에 실패하며 악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은 죽을 운명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평생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여자는 극심한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선악과를 생각하면 하나님은 왜 하필 선악과를 동산에 두시고 먹지 말라는 가혹한시험을 주셨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인간이 그렇게 실패할 줄 아셨을 텐데, 아예 처음부터 선악과를 거기 두지 않으셨으면 될 일 아닌가 싶은 거죠. 그러나 사실 기쁨의 동산에덴에는 비옥한 강이 흐르고 순금과 보석이 있었습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도 좋은 나무들이 즐비했고, 하나님은 각종 나무의 열매를 원하는 대로, 마음껏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무한대한 자유와 축복 속에 한 가지 제한을 두신 것이지요. 아담과 하와가 제정신을 차리고 합당한 자세를 가졌다면, 응당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있는 그런 테스트였습니다.

벤첼 페테르의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 Wenzel Peter, Adam And Eve In The Garden Of Eden

(출처: http://blog.hani.co.kr/nomusa/56978 )

여튼, 결론적으로 볼 때, 사람에게 죄와 고통과 죽음이 올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외아들을 십자가에 희생해야 하는 심각한 결과가 초래되었는데, 그걸 아시고도 굳이 선악과 나무를 거기 심으셨다면그렇다면 그 모든 고통과 불행에도 불구하고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하나님만의 분명한 의도와 목적이 있지 않으셨을까요?

 

선악과 금기 명령,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질서를 세우는 장치

우선, 선악과 테스트는 부정형의 금기 명령이었습니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올라라, 성지 순례를 해라,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해라, 일주일에 두 번은 금식을 해라 등등, 긍정의 명령이면, 좀 잊고 다른 일 하다가 한번 용트림을 하거나, 때 맞춰 지켜내면 될텐데먹지 말라는 부정형의 명령은 항상, 그리고 끝까지 지켜야 하는 명령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 나무를 볼 때마다, ‘나를 존재케 하시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 배우자를 주시고, 이 기쁨의 동산과 거의 무한대의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저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지.’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 언제나, 끝까지 순종해야 했을 것입니다. 결국 선악과를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는 것,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대접해드리는 표현이 가능케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John Song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다른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며 번성하게 하신 하나님, 그러나, 작품을 완성하시고는이제 너희들끼리 마음대로 잘 살아봐라하며 손 털고 다른 데로 눈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인간과 지속적으로 사귐을 갖되 올바른 영적 질서, 합당한 바른 관계성을 유지하는 것, 이 한 가지를 하나님은 요구하셨습니다. ‘다른 것은 다 마음껏 써라. , 이 펜은 안 된다.’ 하면서 볼펜 한 자루를 두셨더라도 같은 맥락 -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적 질서를 상기시키는 장치 - 이었겠지요.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

둘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을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뭔가 지식을 갖게 한다는 것은 좋은 것처럼 들리는데,  (선악과에 대한 성경의 정확한 표현은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the frui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입니다) 왜 그 열매를 금하셨을까요? 더군다나 그것이선과 악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라면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보여준 변화상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고, 그게 잘못된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그렇게 죄의식이 들어 이전처럼 하나님 앞에 떳떳이 나오지 못하고 숨어버렸습니다. 서로에 대해서도 순수한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더러운 욕정의 대상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자기 눈을 통해 상대방의 시선을 알아채자 벗은 몸이 수치스럽게 느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물으실 때도, 누구 하나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하지 않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그렇게 타락해버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형상이 아닌, 타락한 인간의 형상, 자신들의 형상을 닮은 후대를 낳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모든 아들과 딸들에게 이어지는 원죄(original sin)이지요.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유지할 때, 선 안에 있었지만, 선악과 금기 명령을 어겼을때, 창조주와의 관계성이 깨어지고, 생명의 근원에서 떨어져 나가고, 진리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절대선을 버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이기적이고 부패한 본성으로, ‘나에게 좋은 것은 선이고 나에게 나쁜 것은 악이라 판단하는 것이죠. 서로 자기 뜻을 관철시키고자 온갖 힘의 논리,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종으로, 성별로, 소유로, 심지어 학연이나 지연으로 구분을 짓고 차별적인 구조를 만들어 그 폭력을 전통화하고 합법화합니다. 뜻대로 안 되면 도둑질과 속임과 전쟁까지 불사합니다. 자기 선을 관철시키기 위한 갈등과 싸움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도 세계 구석구석에서 가공할 만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자유 의지

그런데, 자유 의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아예 하나님께 순종만 하도록 만드셨다면 어떨까요?

저는 어릴 적,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주인공이 나무와 대화를 한 것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말하는 강아지가 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했습니다. 나를 마냥 좋아해주고 따르는 강아지가, 생각도 하고 말도 할 줄 알아서 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설령 말하는 강아지가 있어도, 로봇이나 컴퓨터 OS가 발전하여 감정을 느끼고 인간처럼 반응할 수 있다 해도,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관계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주는 환상, ,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자기 뜻으로 진실한 관계성을 맺는 것을 상상하고 투영시키는 선, 딱 거기까지만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누군가를 찾기까지, 우리는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갈망합니다.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는 진실한 사랑역사 이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런 사랑을 갈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창조하신 까닭이 아닐까요. 결코 쉽지 않은 사랑, 그러나 진실한 사랑의 본질 아닐까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물려받은 진정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 그 코드가 우리 안에 프로그래밍되어 누군가는 지위도 명예도 버리고, 누군가는 불나방처럼 왜곡된 사랑에 집착하고, 또 우리 중 많은 사람은 그런 사랑이 채워지지 않아 목말라 하는 것 아닐까요.

 

죽을 운명에 처한 불멸의 존재, 그들을 위해 예비된 생명 나무

한 가지 주목해볼 것은, 동산 중앙에는 금지된 열매 선악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허락된 나무, 좋은 나무, 생명 나무도 있었지요. 그런데도 인간은 굳이 금지된 열매를 탐하였고, 그 결과 생명 나무 길도 막히고 말았습니다.

페이팔, 구글, 페이스북 창업자 등 IT 거물들이 생명연장 프로젝트, 소위 영생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류가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 없는 에덴 동산에서 영원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영생은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질적으로 지옥을 살면서 양적으로만 영생을 하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나무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만물이 회복되는 그 날까지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지요. 영생 자체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었지만, 하나님 밖으로 뛰쳐나갔기에 제한된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꺼이 영생을 주고자 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이 전제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요한계시록 2:7)”

 ‘생명나무’, The Tree of Life - Gustav Klimt, 1909 (그림 출처: http://www.artinthepicture.com/)

선악과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격적이고, 지고지순하며, 진리 안에서 기뻐하는 사랑,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수 없으신 열정적인 사랑이십니다. 당신이 찾고 찾던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팡세

선악의 판단 기준이 달라 어려움을 겪어본 적이 있나요? 가령, 다른 사람과 큰 견해차, 입장차를 느껴본 경험, 대화를 해봐도 생각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답답함을 느껴본 적이 있다면 적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