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큐레이션 : Passion of the Christ - The Garden
그림 출처: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QQkj&articleno=862
오늘의 말씀 (창세기 3장)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Q1. 선악과 금기 명령의 목적에 대해 말해 보세요.
Q2. 뱀은 어떻게 여자를 유혹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 여자의 답변, 뱀의 주장들을 비교, 대조해 보세요.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각 진술에 깔린 동기는 무엇일까요?
Q3. 선악과를 따 먹을 때, 인간이 가진 기대가 무엇이었으며, 실제 따 먹었을 때 나타난 변화가 무엇입니까?
Q4. 뱀에게 내려진 저주의 내용 중 ‘여자의
후손’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여기에는 복음이 어떻게 예언되었습니까?
Q5. 하나님의 예언은 어떻게 실현되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받은 형벌과 고통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핵심 짚어보기
1회전: 최상의 조건에서 얻은 참담한 패배
온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 그들은 세상이 죄로 오염되기 전, 고생할 일도, 갈등할 일도 없는 낙원을 만끽하며 하나님과 스스럼 없이 교제하였습니다. 필요한 모든 좋은 것들이 공급되던 최상의 조건에서,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을 기억하기 위한 딱 하나의 제한, 선악과 금기 명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천사 사탄이 간교한 뱀의 모양으로 다가가 여자를 유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1b)”
누군가 ‘참으로?’, ‘진짜로?’, ‘참말로?’ 해가며, 의심어린 질문을 하면, 알고 있던 것도 한 번 더 의심하고 회의하게 됩니다. 하와는 이미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슴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2,3)”
온갖 종류의 실과를 자유롭게, 마음껏 먹을 수 있었지만 그 풍성함은 살짝 축소되었습니다. 동산 중앙에는 허락된 특별한 나무, 영생할 수 있는 생명나무도 있었지만, 그 얘기도 빼먹었습니다. 선악과는 만지지도 못하게 하셨다는 말은 지어낸 말입니다. 결정적으로, 하나님의 금기 명령을 어겨도 ‘죽을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불순종하고도 살아남을 확률도 ‘살짝은 있다’는 건방진 생각을 내비쳤습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뱀이 확신에 찬 어조로 결정타 한 방을 날렸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에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아래 도식을 보면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진술들이 대조됩니다.
결국, ‘따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상충되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라는 뱀의 주장 앞에, 여자는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설마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존재케 하시고, 에덴 동산과 모든 필요를 좋은 것들로 넘치게 공급하신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이들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될까봐, 그게 싫어서 먹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정말 원치 않으셨다면 굳이 그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셨을까요?
이쯤 해서 여자는 뱀을 의심하고 배척해야 마땅했습니다.
“어머, 너 누구야? 니 말은 하나님 말씀하신 것과 영 딴판이구나. 하나님이 그럴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모든 좋은 것들을 주신 분이시다. 이 거짓말쟁이야, 썩 물러가라!” 하고 뱀의 유혹을 보기 좋게 물리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일러스트 : John Song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창세기 3:6a)”
여자는 결국 그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주어 공범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떤가요? 과연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 선악을 알게 되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이 악해지고 영혼이 더러워졌습니다. 인간의 타락이 어떤 증상으로 나타났을까요?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세기 3:7)”
그들은 전에는 벌거벗고도 서로 거리낄 것이 없는 사이, 인격적으로 진실되게 사랑하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타락한 후에는 상대방을 더러운 정욕의 수단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역으로 자신도 상대방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을 느꼈겠지요. 그래서 그들은 돌연 수치심을 느끼고 무화과 나무잎을 엮어 몸을 가렸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피하고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부끄러워 숨은 아담을 보시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물으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줘서 먹었습니다’라며 하와에게, 더 나아가 하나님께 화살을 돌렸습니다. 여자도 “네가 어지하여 이렇게 하였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에, 뱀에게 속아서 그랬노라 핑계를 대었습니다. 누구 하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하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인격 대 인격의 진실한 사랑의 대상인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절대로 양보할 수 없으셨던 중대한 요소, 자유의지…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마치 자신은 그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듯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듯이 합리화하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였습니다.
인격적인 주체로서의 자기 선택과 책임, 그 고귀함과 존귀함을 너무나 쉽게 내던져버리고 스스로를 운명과 상황의 노예인양 격하시켰습니다. 철없는 자녀가 자기가 잘못해놓고 죄의식이 드니까 숨고 회피하고 부모를 의심하고 주위를 원망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인간은 이제 거룩하신 하나님과 코드가 맞지 않고, 진솔한 대화가 되지 않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초래하고도 뱀이 사과를 하거나 최소한의 변명이라도 하는 장면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의 목적은 분명하였습니다. 금지된 나무, 선악과의 열매를 따먹도록 하는 것, 그리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관계성이 파괴되는 것, 그리하여 생명과 축복의 근원에서 떨어져나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요한복음 8:44)”
사탄은 하나님 존전에서 그 영광과 위엄을 보고 알면서도 고의로 반역한 자요, 용서의 기회나 일말의 희망이 전혀 없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어리석과 비뚫어진 가치관으로 이기심에 근거한 자기 유익을 위한 것일 때가 많지만, 사탄의 악은 그런 목적조차도 없는, 철저한 악이요, 무목적성의 악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고,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망치면 그만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고귀한 인생들을 죽음과 파멸로 이끄는 데만 관심이 있습니다. 가히 인간의 진정한 원수라 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절대 그 거짓말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속으면, 우리만 손해입니다.
2회전: 적들이 사방을 에워싸도, 필승! 전승! 압승!
이 참담한 변명과 책임 전가의 현장에서 하나님은 인류 역사를 ‘불합격! 실패작!’으로 규정 짓고 끝내버리셨을까요? 인류라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폐기처분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때문에 실패로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대표자, 예수님을 출전시키셔서 패자부활전을 여시고, 새로운 역사의 서막을 여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공부하는 이 성경책은 창세기 3장 중간에서 끝나지 않고, 이리 두껍고 방대해진 것이지요. 아래 도표를 살펴 보세요.
첫째, 하나님은 사람에게 고통과 고난과 육신의 죽음을 주셨습니다. 하와는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었고, 땅이 저주를 받아 아담은 먹고 살기 위해 평생 땀을 흘리며 수고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깊이 생각해볼 것은 뱀에게도 '저주'를 내리셨고, 땅도 '저주'받았다고 표현하셨지만, 사람에게는 그런 표현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잘 살펴보면, 이 무시 무시한 아픔들이 저주나 형벌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빈 말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 금기 명령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관계성 속에 하나님의 생명과 축복을 누리도록 의도하셨는데, 그 뜻을 거역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영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겪을 고통과 육신의 죽음은, 자신들이 이러한 영적 죽음에 처한 사실을 온 몸으로, 삶으로 자각해내고, 하나님을 떠나서는 생명도, 기쁨도, 행복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마련하실 구원의 문으로 인도되게 하는 메가폰 역할을 합니다.
만약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떠나 나쁜 길로 가고 악한 행동을 하는데도 고통이나 불행이 없다면, 그 누가 진리의 길로 돌이키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까요? 반면,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에 속고 악한 길로 가는데, 그 누가 '그래, 너 좋을 대로 해라, 나는 상관 않겠다' 할 사람이 있을까요? 진리의 길에 생명과 축복과 평안을, 거짓된 길에 고통과 불안과 죽음을 주시는 하나님, 정말 일관성 있으시지 않나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매를 들어 치시며 생명의 길로 돌이키게 하시는 하나님은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치졸한 변명과 책임전가의 현장에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원시 복음'이라고 합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세기 3:15)"
성경 원문에서 '여자의 후손'은 특정한 한 사람, 즉,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통해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발꿈치가 상하게 된다는 것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게 되므로 궁극적으로는 옛 뱀, 거짓말장이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to crush')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첫 사람 아담이 실패한 것을 회복하셨습니다. 2라운도, 패자 부활전에서 인류의 대표 주자로 나가셔서 악조건 속에서도 완전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아담이 실패하여 인류 역사 가운데 죄가 들어오고 죽음의 그늘이 드리웠지만, 예수님이 만회하셔서 생명과 영생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이것을 '대표의 원리'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를 예수님과 같은 존재로까지 높여주실 것입니다. 뱀은 '선악과를 따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악한 마음, 교만한 마음을 심으며 유혹했지만, 그런 나쁜 방법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정당한 방법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한일서 3:3)"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고귀한 존재로, 얼마나 큰 소망과 비전을 품고 창조하셨는지, 생각할수록 참으로 놀랍지 않나요?
팡세
해결하기 힘든 문제나 갈등 상황이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을 찾도록 만든 경험이 있다면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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