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큐레이션 : Christianity for Beginners : The B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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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까지 질서정연한 우주와 정교한 생명의 매커니즘으로 공생하는 자연을 생각할 때, 엄청난 능력과 지혜를 가진 존재의 지적 설계를 상정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만물의 기원을 알고 싶어하고 절대자를 찾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런 본성입니다. 역사 이래로 인류는 자유와 정의, 진리, 그리고 진실한 사랑의 관계성을 추구하고, 죽음의 한계를 넘어 영원을 갈망해 왔습니다. 하지만 피조물이 어떻게 창조주를 알 수 있을까요? 유한한 존재, 시공에 갖힌 존재가 영원한 신적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인간이 창조주를 아는 것은 만년필이 장인을 아는 것보다도 어려운 일입니다. 오직 창조주가 자신을 알려주고자 할 때, 알려주는 만큼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시스 쉐퍼 박사의 책,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원제는 ‘He Is There and He Is Not Silent’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분이시요, 커튼 뒤에 꽁꽁 숨어 있거나, 인간에게 무관심한 채 따로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시는지 살펴봅시다.
오늘의 말씀
요한복음 1:14,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Q1. 어떻게 하면 피조물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인간이 탐색해가는 것과 신이 자신을 계시하는 것은 어떻게 다릅니까?
Q2.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자연, 인간의 이성과 양심 등은 계시 측면에서 어떤 한계점이 있을까요?
Q3.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한 점이 무엇입니까? 이 말씀을 궁극적으로 무엇을 가리킵니까?
핵심 짚어보기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유대교, 이스람교, 기독교의 뚜렷한 특징은 ‘계시(啓示, revelation)의 종교’라는 점입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성경이라는 경전을 갖고 있으며, 거기에 계시된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주요 유일한 참 신으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드러내어 피조물로 하여금 알게 하는 계시의 방법은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자연 만물
자연(自然)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외부 힘의 개입 없이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가리킵니다. 산자락의 계곡물 아래로 이름 없이 뒹구는 수많은 돌들과,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무심하게 뚝뚝 떼어 넣으신 수제비처럼 불규칙적이고 제각각인 구름을 보면서 우리는 이들이 모두 자연, 즉, 누군가의 개입 없이 저절로,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계곡에 있는 돌들을 줍다가 매끈하고 세모난 화살촉 모양의 돌들이 한 무더기 발견된다면, 우리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만든 사람이 있다고 짐작합니다. 자연이 임의로 만들어내는 패턴과,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가공을 한 것은 그 패턴이 현저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학이 발달하면서 우주 자체의 질서와 정교함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자연’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배후에는 사실 인간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정교한 매커니즘과 법칙과 질서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과학자들 중에는 우주 만물을 설계하고 창조해낸 탁월한 지적 존재, 전능한 창조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로마서 1:20)”
그런데, 우주를 탐사한 후 한 우주비행사는 ‘어디서나 신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반면, 무신론자 우주비행사는 ‘우주 어디를 보아도 신은 보이지 않았다’라고 말하듯, 우주의 질서와 법칙을 보아도 그것이 꼭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으로 귀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인일 수도 있다고 얘기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유물론적 관점을 견지하며 창조주 없이도 이 모든 것이 물질만의 작용으로, 우연으로 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이렇듯 똑같은 현상을 보면서도 해석이 다르므로, 자연 만물은 창조주에 대한 계시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 양심, 종교성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여타의 생명체들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지성과 언어 능력 등을 물론이고,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일을 했을 때 불안감과 죄책감을 느끼고, 그것이 드러날 때는 수치스러워 합니다. 불의와 부조리를 보면 마음에 의분이 일어납니다.
또한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고, 타자와 더불어 진심어린 우정과 사랑의 관계성을 갖기 원합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 흠모할 만한 것을 갈구하며, 자신을 다 바쳐 열정을 불태울 무언가를 갈구합니다. 여타의 동물과 다른 인간 고유의 이성과 양심, 종교성 등은 인간 내면에 심겨진 계시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고난 이성과 양심의 기능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작은 일에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어떤 사람은 염치를 모른 채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절대적인 진리를 추구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진리에 대한 이해도, 절대자에 대한 생각도 저마다 달라 개인의 주관적인 견해로 ‘상대화’ 됩니다. 결과적으로는 인간의 이성과 양심, 종교적 성향 역시 계시로서는 한계가 있지요.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성경
사람의 마음은 얼마든지 변덕을 부릴 수 있기에 중요한 약속은 모두 계약서를 써서 문서화 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기록된 문헌인 성경은 개개인의 호불호로 변개되지 못하도록 오랜 세월 정확하게 필사되고 보존되었습니다.
계시로서의 성경, 즉, 하나님께서 커튼을 열어젖히고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말씀하신 성경은, 인간이 고민하고 탐색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가치와 권위를 갖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 신적 권위를 지닌 책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요?
성경은 40명이 넘는 저자들이 1600여 년에 걸쳐 쓴 책으로, 각 사람의 개성과 문체와 문화, 역사적 배경이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조건과 상황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영감을 주신 책입니다. 인간의 자가당착을 깨뜨려주고, 진리에 눈 뜨게 하고, 그리하여 자유와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브리서 4:12)”
하나님께서 주관하셔서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책이므로,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타락,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며, 구체적인 내용들이 통일성을 갖습니다. 헛되어 땅에 떨어지는 말씀이 없이 몇 천년, 몇 백년 전 기록된 예언이,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정확히 성취되어 짝을 이룹니다. 이는 인간의 지혜와 시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적 지혜와 섭리를 보여줍니다.
성경은 분량이 방대하지만, 인간을 지으시고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 죄로 인해 막힌 담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요한복음 5:39)”
예수님
하나님은 매우 상세한 말씀을 기록된 형태로 주셨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보고 싶어합니다. 모세도 그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여주세요.”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요한복음 14:8,9)"
사실 하나님은 영이시며, 그분의 영광과 위엄 그대로를 보며 너무 눈부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일부만이라고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죽지 않을까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광스럽고 무한하신 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함께 먹고, 대화하시며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14,18)”
역사 속에 들어오시고 인간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인간과 함께 하신 하나님(임마누엘)은 그분 자체로, 삶으로, 가르침으로,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로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마치 활자로 공부하는 것과 시청각 자료를 보는 것과의 차이라 할까요?
저 역시,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면서도 나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여 목말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구세주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처음부터 끝까지 옳으심을 인정하게 되고, 나를 향하신 인내와 긍휼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신령한 보화들을 주시되, 예수님을 통해 주십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성령님의 가르치심
계시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계시며,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체입니다. 구원의 길을 완성하신 하나님은 ‘길을 다 닦아 놓았으니, 이제 알아서 잘 찾아와 봐’ 하며 팔장끼고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각 사람과 일평생 씨름하시며, 생명의 근원, 진정한 축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케 하십니다.
활자로 박혀 있는 성경만으로는 인간이 진리를 찾지 못합니다. 성경 박사가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셔서 성경이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영혼에 울려 퍼지도록 말씀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2천여 년 전 이스라엘 땅에 살다 가신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복음을 깨달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의 놀라운 능력이 발휘됩니다. 무거운 죄짐이 풀리고, 있는 그대로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늘나라 영생을 맛보게 되지요.
‘거기 계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란 고백처럼,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며, 우리의 영혼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진실하게 소통하시는 분, 죄로 막힌 담장을 허물로 우리를 그 품에 안아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팡세
주변 사람들, 혹은 어떤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영혼에 말씀하신다고 느껴본 적이 있다면 적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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