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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spel :: 복음이 궁금해?

14. 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

by songofkorea 2016. 11. 5.

4. 아담의 후예들: 고대 인류사

14. 가인의 제사, 아벨의 제사

가상 인터뷰: 믿음으로 나은 제사로 인정받은 신앙인, 아벨


기자: <그 사람이 알고싶다> 오늘은 하나님이 인정하신 예배자의 모범, 바로 아벨님과 인터뷰 나눕니다. 아벨님, 반갑습니다. 이렇게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벨 : 안녕하세요.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자 : 기록된 바로는 아벨님은 인류 최초로 죽음을 경험하셨고, , 최초의 순교자이시지요. 워낙 젊은 나이에 돌아가셔서 그런지, 수천 년 동안 베일에 쌓였던 분이신데요.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의 처음 형제들 아니셨습니까?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셨나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아벨 : 부모님의 삶은 두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이었어요.

가자 : , 그래요? 왜 그렇게 표현하시는지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세요?

아벨 : 두 분은 해질 녁이면 들판에 나가 노을을 바라보며 에덴 동산을 그리워하는 게 일이셨어요. 그 곳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얼마나 풍성했는지짐승과 새들도 눈빛을 맞추고, 함께 노래하던 곳, 하나님과 거리낌 없이 만나고 대화하던 곳, 미움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던 꿈같은 시절

그런 만큼 슬픔과 회한도 크셨어요. 당신들이 큰 죄를 지어 하나님 존전에서 쫓겨났다며 슬퍼하셨어요. 그리고 당신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도록 창조되었지만, 저희 형제들은 타락한 부모님의 형상을 닮아 태생 자체가 다르다고, 미안해 하셨어요. 우리 형제들이 어릴 때부터 서로 싸우고 못된 짓을 할 때, 부모님은 화를 낸다기보단 당혹스럽고 슬퍼하셨어요. 마치 자기들 잘못인 양

기자 : 선악과 사건의 장본인들로서, 정말 그럴 만 했겠군요. 그럼 기다림이란, 뭘 기다렸다는 거죠?

아벨 : 여자의 후손이요. 뱀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낙원을 회복시켜주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다고부모님은 첫 아들 가인 형님이 그 사람인 줄 기대하셨나봐요. 그런데 전혀 아니었던 거죠. 형님에 대한 실망감에, 저를 낳으시고는 이름을 허무하고 공허한 아벨로 지으셨죠.

아무튼 중요한 건 말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으셨고, 장차 구원자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셨다는 점, 부모님은 그 메시야가 그렇게 한참 있다 오실 줄 모르고, 매일 매일 기다리신 거죠.

기자 : ~ 정말, 인류 역사상 완전한 상태, 완전한 자유의지를 누렸고, 타락 이전 시대를 경험한분들이니, 느끼는 게 많이 다르셨겠네요. 그럼, 이번에는 가인 형님이랑, 아벨 아우님 얘기 좀 해주세요. 두 분이 성격이 어떠셨는지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라든가

아벨 : 가인 형은 남자답고 씩씩하고, 한 마디로 멋진 사나이였어요. 자존심이 무척 강해서, 부모님께 꾸중 듣는 걸 굉장히 싫어했어요. 어쩌다 부모님께 혼나면, 잘못했다는 얘길 절대로 안 해서, 회초리를 더 맞곤 했죠. 저는 형 혼나는 것만 봐도 겁이 나서 알아서 싹싹 비는 스타일이었어요. 하하.

기자 : . 그랬군요. 두 분께서 사실 때는 제사가 의무는 아니었지 않나요? 어떻게 제사를 드릴 생각을 하셨죠?

아벨 : 부모님께 하나님과 거리낌 없이 교제하던 에덴 동산 시절을 많이 들어온 터라,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느 해, 농사가 아주 잘 되었는데, 형이 그 곡식이랑 열매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좋아하실 거라며, 자발적으로 드린 거예요. 저도 형을 보고 따라 한 것이죠.

기자 : 그렇군요. 그런데 모두들 궁금해 하는 점이 있는데, 가인 형님의 제사는 왜 거절된 것일까요? 혹시 가인 형님은 양을 잡지 않고 곡식으로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께 인정을 못 받았다는 설이 있는데, 맞나요?

아벨 : 그건 아닐 겁니다. 제가 드린 제사가 공교롭게도 하나님이 후에 제정하신 제사의 모습이랑 일치되었던 것뿐이고, 그 때까지는 어떤 식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뚜렷한 법이 없었어요. 제가 양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린 것이 장차 메시야의 희생을 예표한다는 것도 당시엔 전혀 몰랐지요. 형님은 농부로서 분명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농작물로, 정성스럽게 바쳤으니까요. 어쩌면 인간적으로 보면 형이 화를 내고 저를 시기한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해요.

기자 : 그래요? 그럼, 도대체 아벨님과 어떤 차이점이 있었던 거죠? 문제의 그 제사를 드릴 때, 무슨 특이한 점이 있었습니까?

일러스트 : John Song

아벨 : 저도 처음엔 의아했어요. 하나님께서 왜 형과 형의 제물은 받아주지 않으실까, 원인이 뭘까 하구요. 형 안색이 너무 안 좋아서 뭐라 물어볼 수도 없고, 괜히 미안해지기도 하고그런데, 나중에 형이 들로 불러내서 얘기를 하게 됐는데, 그 때 저도 깜짝 놀랐죠.

기자 : 왜요? 형님이 뭐라고 했는데요?

아벨 : 형은 화가 너무 나서 제 정신이 아니었어요. 하나님께 화 내고 저에게 화 내고아 물론,정성껏 준비한 제사가 인정을 못 받고, 또 비교되게 내 것만 받으시니 당황스럽고 속상한 건 충분히 이해가 가요. 하지만, 받고 안 받고는 사실 하나님이 결정하실 일이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왜 안 받으시는지, 뭐가 잘못된 건지 한번 생각해보는 게 어떠냐고 했는데, 형님은 너무 방어적이었어요. 자기는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하나님 앞에 떳떳하다고, 분명 하나님이 잘못하신 거라고 소리 소리 질렀어요.

기자 : 거절 당했을 때 그토록 화를 냈다면, 형님은 자신의 제사가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을 한 모양이군요. 그런데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자 그런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극단적인 결과를 낸 것 아닐까요?

아벨 : 동감이에요. 하나님 보기시엔 부족한데 우리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점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제가 그냥 맞장구를 쳐줘야 했었는데, 형님을 위해준답시고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했어요. 우리가 완전한 자들이 아닌데,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하나님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라고 설득하려 했어요. 설득이 잘 안 되니까 제가 평소 느꼈던 이런 저런 팩트들을 들었는데, 그게 그만 화근이 되고 말았지요.

기자 : , 혹시 형님 때문에 뭐 어려움을 겪거나 괴로워한 점이 있으셨나요?

아벨 : 허허이런 공개석상에서 남 얘기 할 필요는 없구요. 중요한 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엔 나나 형님이나 다 불완전하고 부적격이었다는 거죠. 저도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죄들이 있어요. 결코 제가 잘 나서, 의로워서 받아주신 건 아닐 거예요. 제물 때문도 아니에요. 저는 그걸 알고 있었고, 반면에 형님은 하나님이 당연히 자기를 인정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기자 : .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두 분 제사의 차이점에 대해 직접적인 단서를 찾자면, 히브리서 기록에는 아벨님이 믿음으로드린 점이 더 나은 제사로 인정받았다고 써 있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의 비결을 좀 알려주세요.

아벨 : 평소에 부모님도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왜 하나님과 떨어져 있게 되었는지 종종 말씀해 주셨으요. 그리고 여자의 후손에 대해 늘 말씀해 주셔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기자 : , 자신을 죄인으로서 인식하는 것, 그리고 복음에 대한 믿음사실, 그건 듣기는 많이 들어도 진정으로 깨닫기는 어려운 것인데, 아벨님은 어떤 계기로 그걸 깨달으셨죠?

아벨 : 하하하아주 어렸을 때, 저에게 아주 중대한 사건이 있었죠. 다섯 살 때였던가? 형이랑 모래밭에서 놀 때, 제가 잠자리 잡은 걸 형이 뺏어간 적이 있었어요. 제가 보는 눈 앞에서 능글 능글 웃으면서 잠자리 날개를 떼는 걸 보고 순간 욱! 하고는 모래를 한 움큼 집어서 형 얼굴에 확 뿌려버렸죠. 형은 눈 아프다고 울고, 아버지 어머니 놀라서 뛰어나오시고, 한바탕 난리가 났죠.

기자 : 하하하! 많이 혼나셨겠네요.

아벨 : 아무렴요~ 되게 무섭게 혼나고, 벽 보고 손 들고 벌 섰어요. 팔은 아파오고, 저 쪽에서 형은 계속울고, 두 분은 모래 빼낸다고 얼굴 씻기고 하는데그 북새통에, 저는 제 행동이 참 후회되고 부끄러웠어요. 눈에 들어가면 아플 줄 뻔히 알면서, 일부러 그런 거죠. 벌을 서는 동안 내가 어떻게 그런 나쁜 마음을 먹었을까, 나 정말 나빴구나 하는 생각에, 진심으로 후회가 되고 미안했어요.

기자 : ~~~ 정말이요? 겨우 다섯 살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놀랍군요.

아벨 : . 부모님이랑 형에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이러고 저러고, 정말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니까, 부모님은 제가 진심으로 뉘우치는 걸 알고 기뻐하셨어요. 그 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부모님에 대해서도 그런 마음을 갖고 계시다는 걸 깨달았죠. 여자의 후손을 약속해 주신 것, 뱀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원수를 갚아 주실 것에 대해 소망이 생겼어요. 신약 시대를 산 여러분들만큼 구체적으로 안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과 저희를 포함한 온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 용서, 메시야를 통한 구원에 대해 믿을 수 있게 되었죠.

기자 : , 지금 보니 그게 아벨님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상 그 수많은 사람의, 인류 공통의 문제가 되고, 그리고 수천 년 후에 구원자 예수님이 오신 것이네요.

아벨 : 그렇죠. 그 후로 저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늘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었고, 하나님 사랑을 목말라 했어요. 그렇게 예배 드릴 때마다 저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비로 저를 영접해 주실 것을 알았고, 그걸 히브리서에서 믿음의 제사라고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기자 : 그럼, 가인 형님과의 차별점은 겸손한 자세, 믿음의 자세, 그게 관건이었다는 거네요?

아벨 : 이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그럼 또 겸손한 자세를 갖추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할텐데… 중요한 핵심은, 두 손에 제물이든 마음 속의 자세이든, 뭔가 내게 있는 것을 들고 나아가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자체가 여자의 후손 예수님을 의지해서 나아가지 않는다는 반증이라니까요. 하나님께서 활짝 열어놓으신 그 길이 눈에 들어와서, 그 길로 들어가는 게 아니면, 우리 손에 그 어떤 것을 들고 나아가도 다 불합격이고, 하나님은 그렇게 드리는 제사를 받으실 수가 없어요.

기자 : , 그렇습니까? 자기 인식도, 자세도 아니고, 제물의 종류도 아니고알 듯 말 듯, 어렵군요.

아벨 : 물론 어렵죠. 우리 인간의 본성으로 생각이 그렇게 돌아가지가 않으니까요. 그럼, 이렇게 한번 물어볼께요. 가인 형님이 그 해 농사가 엉망이고, 번듯한 제물이 없었다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까요?

기자 : 음... 아마 아닐 것 같습니다.

아벨 : 그렇죠? 자기 제물이 훌륭하면 교만해져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기 손의 제물이 못난 것이면 죄의식, 불의감에 빠져서 아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질 않죠. 그런데 말입니다, 제물과 반대 개념으로 믿음을 말하니까 이번에는 또 믿음이 합격의 조건인 양 착각하기 쉬운데, 그런 게 아닙니다 

기자 : 그럼, 히브리서에서 '믿음으로 드린 제사'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요? 쉽게 말해서, 아벨님의 제사가 합격 판정을 받은 이유가 뭔가요?

아벨 : 오해 없으시길… 저에게 비결이 있는 게 아녜요. 제가 겸손해서, 혹은 양으로 제물을 삼아서 합격된 게 아니에요. 합격 여부를 판단하는 근거가 전혀 제 자신이 아니에요.

기자 : 아~ 그럼 도대체 비결이 뭐예요? 쉽게 좀 설명해 주세요. 

아벨 :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은, 모두에게, 그냥 활짝 열려 있어요. 여러분이 미달이고 모자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갈 수 있어요. 예수님이 우리 죄 값을 다 치르시고 하나님께 가는 문을 활짝 열어놓으셨잖아요. 그게 복음이잖아요. 그 당시 저는 복음을 잘 몰랐지만, 단순히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기대하고 나아갔고, 하나님은 기쁘게 받아주셨어요. 세상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기자 : 아, 좀 멍~ 하군요. 뭔가 굉장히 파격적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아벨 : 네. 복음은 너무 귀한 선물이 아무런 조건 없이 모두에게 주어진다는 놀라운 소식이에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 않거나, 찾더라도 인간의 종교성을 발휘해서 자기 의를 들고 나아가거나, 정성스런 예물을 들고 나가려고 하는 게 문제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세요. 하나님께서 직접 그 외아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갈 길을 활짝 열어놓으시고, 원하는 자 다 이리로 들어오라~ 누구든지 받아주겠다~ 약속하셨어요. 그냥 그 열린 문을 통해 하나님 품에 안기시면 되요. 

기자 : 그렇군요. 늘 들어왔던 복음의 내용인데, 집에 가서 깊이 생각해봐야겠네요.

아벨 : 네, 가인 형님이나 제게는 청춘과 일생이 담긴 얘기들입니다. 옛날 얘기 취급하지 마시고,우리 형제의 이야기에서 주는 교훈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분들은 복음을 통해, 있는 그대로, 하루 속히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당부 드립니다.

기자 : . 소중한 교훈 잘 간직하겠습니다. 오늘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사람이 알고 싶다> 청취자 여러분,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의 말씀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누가복음 18:13, 14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Q1. 창세기 4장을 읽어보세요. 인간이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Q2. 가인의 제사와 아벨의 제사는 어떻게 달랐나요? 가인의 반응을 통해 그가 기대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거절당했을 때 그의 마음이 어떠했는지 생각해보세요.       

 

Q3.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대조해보세요. 누구의 기도가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습니까? 두 이야기를 토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예배 자세, 기뻐하시는 믿음이 어떤 것인지 말해보세요.

 

핵심 짚어보기

창세기 3장에 기록된 첫 사람 아담의 실패로 인해, 인간은 이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 거역하고 불순종한 인간들의 타락상이, 시간이 가고 세대가 바뀔수록 더 심각해지는 양상을 띱니다.

실낙원 이후 첫번째로 기록된 사건은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사를 지낸 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한 예배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한 예배는 거절 당했습니다. 그리고, 거절당한 사람이 반성하고 변화되는 대신 하나님이 인정하신 사람을 죽이는 살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이후로 오고 올 모든 세대, 특히,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 하나님과 사귐을 회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유형을 보여줍니다.

첫째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 멸시하는 사람들,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누가복음 18:9)"

그들은 근본적으로잘한 것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들의 기도는 뿌듯한 자랑으로 채워집니다.

하나님, 나는 도둑질도 안 하고, 간음도 안 하고, 남한테 피해주는 일도 안 하였습니다. 착실히 신앙생활하고, 주일 예배 꼬박 꼬박 드리고, 기도 열심히 하고, 십일조도 안 빼먹습니다. 저 쪽에 있는 저 이기적인 죄인, 매국노 세리와 다른 삶을 살게 하시고, 이렇게 떳떳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도록 저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는, 자기 죄가 자명하여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두 유형의 인간 모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입니다. 죄의식에 쌓인 자도,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근엄한 종교인과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 결과는 어떠할까요? 예수님의 선언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8:14)”

먼 옛날, 유대 사회의 문맥이기에 우리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로마 압제하의 유대 동족에게서 세금을 착복하던 세리는 매춘부, 깡패, 매국노와 같은 지독한 죄인, 공인된 죄인입니다. 세리가 종교지도자 바리새인보다 의롭다고 인정받았다니... 이는 실로 충격적인 일입니다.

일면, 너무도 불합리해 보이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가능케 되는 걸까요? 이것은 양심과 법도를 따라 하루 하루 정성스레 살아가는 우리의 행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우리, 하릴 없는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양심의 작용과 판단과 결정을, 다 지켜보시고, 아시고, 중요하게 보시며, 우리를 이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걷어내야 할 것, 극복해야 할 것이 분명 있습니다. 상대적인 잣대와 위선과 자기 기만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들 앞에서, 혹은 자기 인식으로 의로운 것이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앞에서의 가면을 벗고 단독자로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완전한 기준 앞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직시하는 것을 그토록 어려워하는 이유는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유죄 판명되면 처벌만이 기다리는 상황처럼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의로운 척 하고, 합리화하고, 언젠가는 의로워질 수 있을 것처럼 헛된 소망을 품습니다.

반면, 솔루션이 있다는 것을 알면 애써 가장하거나 감추지 않습니다. 유죄 판명되었는데, 재판관이 나를 불쌍히 여기고 정상 참작을 해 주고, 새로운 살 길을 열어줄 것을 안다면, 우리는 얼른 불편한 가면을 벗고 진정한 참회를 할 것입니다. 빛 가운데로 노출되어 내 더러움이 드러나도, 이내 부끄러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의의 새 옷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 불완전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지만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예배를 받아주십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자기 죄 됨을 아는 사람만 받아주십니다. 바로 저 세리처럼 말이지요.

그리고 죄인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는 희생되는 양이 하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부끄러움을 가릴 수 있도록 가죽옷을 지어 입히실 때 희생된 양, 아벨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희생된 양, 그리고, 제도화 되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아침 저녁으로 희생될 무수한 양과 염소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불의를 짊어지고 멀리 멀리 옮기고는 광야에서 홀로 죽는 염소들, 바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셔서 뱀의 머리를 박살내신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 하나님의 어린 양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드려 더 나은 제사라고 인정을 받은 아벨의 제사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4 )"

 

팡세

나는 가인의 줄을 섰을까요, 아벨의 줄을 섰을까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바리새인과 세리 중 어떤 유형과 가까운지 생각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