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은 더 이상 미움을 감추지 못하고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며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요나단은 이 사실을 다윗에게 알리고 아버지에게 직언을 하였습니다.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사무엘상 19:4,5)”
요나단의 모든 말은 옳고 또 옳았습니다. 골리앗에게 굴욕을 당하며 모두 벌벌 떨다가 꼼짝 없이블레셋의 노예로 전락할 뻔한 상황에서 생명을 걸고 구원을 이룬 다윗인데… 사울은 반박할 말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며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요나단의 전갈을 듣고 다윗은 다시 사울 앞에 나아왔고 블레셋과의 전투에도 참전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악한 영이 들어 다윗이 수금을 탈 때에 또 단창을 던졌습니다. 그는 이미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도피한 다윗을 잡아 죽이기 위해 그의 집에 군사들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가 된 미갈이 이 사실을 귀띔하고 다윗이 창을 통해 도주하도록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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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을 찾아가 사울의 일을 고하였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사울에게 다윗이 라마 나욧에 있다고 알렸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사자들을 보냈는데, 세 번째 무리를 보내기까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하는 수 없이 직접 라마로 간 사울에게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나욧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사무엘 앞에서는 옷을 벗고 예언을 하였고, 하루 밤낮을 벗은 몸으로 누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다윗을 시기하고 해하려는 악한 사울의 의지까지도 한 없이 무력해졌습니다 (ESV 스터디성경 참조).
다윗은 라마에서 다시 도망해야 했습니다. 그는 요나단을 만나 서러움을 토로하였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군사들을 동원하여 자신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그는 자신과 죽음 사이에 겨우 한 발짝 떨어져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초하루 만찬(태음력으로 초승달이 떠오르는 달의 첫날, 이스라엘에서 주요 절기들 가운데 하나로 지킴. ESV 스터디성경 참조)을 이용하여 사울이 다윗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셋째 날까지 만찬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 다윗에 대해 ‘집안의 매년제를 위해 자기 고향 베들레헴에 급히 가기를 청했다’고 말하고, 사울이 허락하는지 노하는지 판단하기로 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진실하게 알려주겠노라 다짐하며 다윗의 집과 언약하였습니다. 그는 다윗을 자기 생명을 사랑함같이 사랑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사무엘상 20:16b)”
사울은 반응은 어땠을까요? 역시 그는 요나단의 말을 듣고는 다윗 뿐만 아니라 요나단에게까지 욕을 하며 화를 내었습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20:31)”
여기에서 사울의 관점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과 권한으로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처럼, 이스라엘 왕권이 자신과 자기 집안의 소유물이나 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는 아들을 위해주는 척, 아들의 왕권을 생각하는 것처럼 표현했지만, 요나단이 ‘다윗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그러세요?’라며 항변하자, 단창을 던져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에게는 딸도, 아들도, 그 어떤 다른 존재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저 자기애, 왕으로서의 특권 의식, 왕위를 지키고자 하는 집착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이스라엘 민족의 번영 따위는 안중에 없었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실망하고, 모욕을 당한 다윗 때문에 슬펐습니다. 그는 다윗이 숨어 있는 에셀 바위가 있는 들판에 이르러 미리 약속한 대로 화살로 신호를 보내었습니다. 요나단은 친구 다윗을 멀리 보내야 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붙들고 함께 울었습니다. 요나단은 얼마든지 사울처럼 왕권에 집착하고 다윗을 적대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의 인기를 시샘하지도 않았고,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시달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의 진심과 업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았고, 진정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뜻 두신 다윗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orcsbible11-12.wikispaces.com
제가 요나단과 같은 가치관과 감성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편협한 자기사랑과 교만한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닮아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마음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사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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