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전쟁을 치를 때에, 강대한 거민들을 보고 두려워 떨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함께 가시고 그들을 위하여 싸우시며 그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날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인하여 놀라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 자니라 (신명기 20:3,4)”
군사들 중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자들도 있습니다. 먼저 자비를 베풀어 전쟁 소집을 면제해 주어야 할 부류가 있습니다.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마치지도 못한 사람, 약혼자가 있고 결혼을 앞둔 사람 등, 그간의 공이 헛되이 돌아가 억울한 마음이 들고 정신이 분산될 사람은 본인을 위해서도, 이스라엘 군대 전체를 위해서도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특수한 상황도 아닌데 그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많아서 마음에 겁을 내는 사람들도 집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촉즉발의 긴박한 전쟁 상황에서 제대로 책임을 수행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주위의 형제들의 마음에까지 두려움을 심고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직접적인 정복 대상이 아닌 멀리 떨어진 성읍들에 대한 전쟁의 법도는 가나안 족속에 대한 것과는 좀 다릅니다. 만약 어떤 성읍을 치려고 하면, 먼저 평화를 선언하고, 그성읍이 평화 조약으로 답할 경우, 전쟁을 피하고 조공을 받아야 합니다. 평화 조약을 거절할 경우에만 그 성읍을 에워싸고 치는 절차를 밟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고대 전쟁처럼 탈취물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족속들에 대해서는 정책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도 살리지 말고 진멸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가증한 일로 심판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을 살려둘 경우,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우상숭배의 범죄에 빠지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21장에서는 결혼에 관한 다양한 규례들이 나옵니다. 전쟁 포로가 마음에 들어 결혼하는 경우, 후에 마음이 변하여 그 여인을 내보낼 때, 자기 종처럼 생각하여 돈을 받고 팔거나 하지 말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한 쪽을 더 편애하는 경우, 자기 감정은 감정이고 권리에 대해서는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싫어하는 여인이 장자를 낳아도 아들들에게 유산을 나누어줄 때 차별하지 말고 원래 장자를 장자로 인정하여 두 몫을 주어야 합니다.
공개 처형으로 엄히 다스려야 할 것 중에 부모에 대한 일이 있습니다.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징책해도 듣지 않을 경우, 부모가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순종치 않고 방탕하여 술에 잠긴 자’라고 고박할 경우, 성읍 사람들이 그를 돌려 쳐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중에 경각심을 주고 악을 제하라고 하셨습니다. 어지간해서 자식을 이렇게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자식이 범죄하여 형벌을 받게 될 때, 자신이 대신 받게 해달라며 희생하는 것이 부모 마음이지요. 그만큼 부모에게 거역하고 패역한 죄는 큰 것이며, 부모가 그렇게 증언할 경우, 다른 물증이나 심리 없이 사형이 집행될 정도였습니다.
한 가지 더, 누군가 죽을 죄를 지어 처형을 하고 나무 위에 달 경우, 중요한 지침이 또 있었습니다.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신명기 21:22,23)”
공개 처형을 하고 나무에 매어단다는 것은 그 사람의 죄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입니다. 땅조차도 토해내는 극악무도한 죄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예수님에 대해 굳이 로마의 십자가 처형을 요구했습니다. 나무 높이 매달려 십자가 형을 당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임을 입증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무 높이 달리면, 그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던 것도 모두 거짓으로 증명되고,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군중들의 마음을 일순간에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종교지도자들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가장 극악무도한 죄인을 위한 십자가로 내 몬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의 악함마저 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저주를 예수님께 쏟아 부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저주는 본래 우리 죄인들이 받아야 할 것이었으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니라 (갈라디아서 3:13)”
그림 출처 : qartal.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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