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독수리가 날개로 그 새끼를 업어 안전한 지대로 구출해내듯이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안는 것 같이 이스라엘을 안으셔서 광야를 무사히 지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가나안 땅 입성에 앞서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에게 얼마든지 승리를 주시고 약속의 땅을 허락하시는 것이었으나, 불신과 패배주의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의 해석은 어떠했습니까?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는 고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신명기 1:27)”
그들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 길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재, 출애굽 40년11월이 되기까지 광야에서 헤매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약속의 땅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곤 아무도 약속의 땅을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그 뼈아픈 과거를 회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을 낙심하고 절망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과거를 거울 삼아 다시는 그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다시금 그들에게 명하십니다.
징계를 받으며 광야 훈련을 받을지라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막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며 부족함이 없이 필요를 공급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족 에서의 자손이나 아브라함의 조카 룻의 자손인 모압, 암몬 족속과 삼가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길로 지나며 양식이나 물이 필요할 경우, 정당한 대가를 주고 사서 먹으라 하시고, 그들과 다투거나 그들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승리를 경험케 하심으로써 이집트에서 갓 해방된 백성이라고 아무도 얕잡아 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그들 손에 붙이시고 승리를 체험케 하셨습니다. 그들은 평화의 제의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일어났다가 이스라엘에게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으로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인하여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신명기 2:25)”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신명기 3:21,22)”
그림 출처 : http://m.blog.daum.net/followlight/1190
그러나 모세는 반석을 두 번 친 사건으로 인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끝까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반석으로 예표되는 예수님은 출애굽기 17장 호렙산에서 이미 한 번 맞으신 바 있습니다. 민수기20장 가데스에서는 하나님은 이제 반석을 명하기만 하면 물을 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혈기를 부리며 반석을 두 번이나 친 것입니다.
무려 40년을 미숙하고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거역과 불순종을 인내하며 중보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 많은 수고를 감당해낸 모세에게 하나님은 왜 이렇게 엄격하신 것입니까? 반석을 두 번째, 그것도 두번씩이나 친 사건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데스 므리바의 반석 사건은 성자 예수님과 관련된 문제요, 인생들의 구원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반석 위에 서시고 그것을 친 것은 그 본체가 하나님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 희생은 일개 짐승의 생명도 아니요, 자기 죄를 짊어져야 할 착한 사람 하나의 죽음도 아니요,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마지막 사람까지, 온 인류의 죄에 대한 대속이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스가랴 3:9)”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막 살면 잘 못 느끼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살피노라면 하루 하루, 순간마다 제 마음에 얼마나 죄가 많은지 놀랍고 두려워집니다. 저와 같은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내어주시고,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다만 겸손히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고 믿을 때, 의롭다고 인정하여 주시고 용납하여 주시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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