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열 한 아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해도, 죽은 줄로만 알았던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과 되어 있다니... 야곱은 충격과 놀라움에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하나님은 환상으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비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 (46:3,4)"
그제서야 야곱은 안심하고 모든 가산을 정리하여 이집트로 향했습니다. 이집트에 먼저 가 가정을 이룬 요셉의 아들들까지, 야곱과 그의 몸에서 직접 낳은 후손들은 도합 칠십 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공로 덕분에 이집트에서도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목축업을 경멸하는 풍조가 있어 야곱 족속은 고센 땅, 라암세스라는 지역에 정착하였습니다. 덕분에 독립적으로 히브리 민족을 이루며, 이집트의 문화에 물들지 않고 아브라함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여호와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야곱은 향년 147세에 임종을 맞았습니다. 그는 문명이 발달한 이집트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편안한 여생을 누렸지만, 그래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요셉에게 유언하기를 자기가 죽으면 그 시체를 이집트 땅이 아니라 조상들 계신 땅(세겜)에 묻도록 하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임종이 다가옴을 느끼고,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할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받도록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기도 받을 때, 아버지의 오른손 앞에 장자를, 왼손 앞에 차자를 서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대목에서 성경은 야곱의 개명된 이름 이스라엘을 쓰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으로서의 역사성이 있는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입니다)은 굳이 불편하게 팔을 교차하여 오른손을 차자 에브라임의 머리에, 좌수를 므낫세의 머리에 얹고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전통에 맞지 않으므로 요셉은 아버지 손을 들어 옮기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혈통에서, 이들 조상들의 임종 시의 기도는 예언적이며 중차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영적인 통찰력과 영감을 주신 것 같습니다.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48:19)"
분명, 육체적으로는 늦게 태어났는데, 장자보다 위대하게 되고 장자의 섬김을 받게 된다는 것은 가인과 아벨,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에 이어 반복되는 예표입니다. 당시의 풍습과 전통을 거스르는 것이므로 독특한 예언적 의미를 담기도 하구요. 이것은 신약 시대에 가서는 예수님의 비유 속에 장자 vs. 차자의 구도로 다시 반복됩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한번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켰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48:21)"
이스라엘 민족의 삶의 방식은, 생존을 위해, 좋은 조건을 찾아 다니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 현세적 조건을 따라 사는 것을 뛰어 넘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따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습니다. 물론 그것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이후 사백년 간의 이집트 노예시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통해 어떤 뜻을 두고 계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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