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반에게 무사히 놓여나 고향 땅을 향하는 야곱에게 한 가지 큰 산이 남아 있었습니다. 형 에서였습니다. 종들을 먼저 보내어 알아봤더니,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심히 두려워졌습니다. 다급한 상황에서 오직 기댈 곳은 하나님 뿐이었습니다. 그는 그간의 은혜를 감사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도움을 청합니다.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32:9~12)”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선물 공세로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자 수많은 가축들을 몇 무리로 나누어 앞서 보내었습니다. 아내와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강 나루도 건너보냈습니다. 그러나 야곱 자신만은 건너지 못하고 홀로 남았습니다. 원한을 품은 형 앞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는 야곱에게 그 많은 재물도, 가족도, 그 무엇도 방패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와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는 도저히 야곱을 이기지 못하자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그는 날이 새어 가려고 하지만 야곱은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매달려,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2:27~28)”
‘야곱’은 쌍둥이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사람, 자기 열심과 고집으로 원하는 것을 악착같이 붙잡고, 심지어 속여서라도 쟁취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꾸어주신 이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도 겨루어 이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힘으로, 능으로, 얼마든지 야곱을 굴복시키실 수 있지만, 오히려 밤새 씨름하고도 그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야곱의 마음을 얻고자, 그의 자유의지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관계성을 맺기까지 그의 평생에 뒤에서 걸으시며 애태우며 씨름하셨습니다.
'이스라엘'로 불리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야곱 자신과, 그 후손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또 그 분의 축복을 간절히 바라지만, 그 고집과 편견, 죄악된 본성 때문에 하나님을 쩔쩔 매시게 하고 마음 아프시게 하는 못된 망아지 같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야곱을 축복하고 떠났습니다. 야곱은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고 고백하며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불렀습니다. 이 하나님은 사자는 훗날 여자의 후손으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그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하여 친히 이스라엘의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패를 머리 위에 두십니다. 죄악되고 미련한 자녀들을 위해 씨름에서 져 주시는 사랑의 왕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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