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헤롯 성전이라 불렸습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 후 재건한 스룹바벨 성전이 있었지만 여러 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헤롯왕은 통치 18년째인 BC 19년부터, 수십년에 걸쳐 성전을 재건하고 있었습니다.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는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종교중심적인 유대인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막 13: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성전에서 나가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의 모습에 감탄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막 1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에는 '진실로'라는 말씀으로 강조하셨습니다.
마 24: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또한 누가복음 말씀에는 그 날에 유대인들에게 어떤 무서운 환난이 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눅 19:44 또 너와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성전을 신성시하던 당시 사회에서 이 얼마나 폭탄같은 발언이었을까요.
성전은 인생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떠나지 않으시고, 성막에서부터 언약궤를 덮은 뚜껑, 속죄소 위에 좌정하셔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장소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로 이어졌습니다. 이 성전은 오랜 세월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의 중심지, 하나님을 앙망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과 성전에서 행해지던 규례들은 모두 그림자였습니다. 피 흘리시고 생명을 내어주셔서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 담당하실 예수님을 잘 알아보고 믿을 수 있도록 돕는 예습 절차였습니다. 그러나 유대 역사는 종교가 본질을 잃고 형식에 치우쳐버렸습니다.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종교지도자들의 이권이 오가고 백성들에게 무거운 종교의 짐을 지우는 형식 뿐인 곳이 되었습니다. 성전 자체가 우상화되고,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믿음 대신, 자기 의를 쌓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그런 성전은 이제 무너질 운명이었습니다.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전 되신 예수님은 당신의 육체가 찢기고 피를 쏟으시며 마지막, 온전한 희생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께로 가는 새로운 길, 산 길, 완전한 길이 되셨습니다.
요 2:19~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실제로 유대 성전은 AD 70년 경,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훼파되었습니다. 그리고 참 성전이신 예수님을 거부한 유대 역사는 이후 근 2천년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디아스포라로 고난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용서받고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절대적이고 완전한 기회입니다.
그 모진 고난과 아픔들을 다 참아내신 주님, 이 작은 자의 마음 가운데 친히 성령으로 좌정하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 찬양드립니다. 제 마음에 세상의 온갖 그릇된 가치관과 욕심, 이기심, 음란과 악독이 있는 것을 회개합니다. 거룩하신 주님을 모실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저를 정결케 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기꺼이 저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저를 성전 삼으시고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기쁨과 흐뭇함으로 계실 수 있는 내면 소유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임마누엘의 예수님, 나와 함께 계시는 성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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