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229.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심 (마 23:1~15, 막 12:38~40, 눅 20:45~47)

by songofkorea 2024. 10. 4.

본문에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 등, 종교 지도자들에 대한 엄히 경계하십니다. 

 

눅 20: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마 23:2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언행 불일치였습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 23: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마 23:5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마 23:6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마 23:7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눅 20: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한 손가락도 움직이지 않는다고까지 표현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은 실천하지도 않을 율법을 가르치고 온갖 종교적인 모양을 갖추고자 힘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 높은 자리에 앉고 선생 대접을 받기 위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의 한계를 알고 남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심에 화인을 맞은 자들은 말만 잘 해도 믿어주고 따르는 자들이 있기에, 이렇게 속이는 자가 됩니다.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자신은 행하지 않는 부왕부왕하고 이상적인 말들로 혹세무민하는 자, 위선자가 됩니다. 사람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찾는 종교성이 있는 것을 이용하여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 23: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예수님은 선생이라 불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진정한 선생님은 오직 진리로 가르치시며 언행일치가 되시는 절대자이신 하나님 뿐이십니다. 인생들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자녀, 형제입니다. 

 

마 23:9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가 진정한 아버지인가를 언급하십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는 인간 사회의 전통과 규범을 저버리라는 말씀이 아니라, 진정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생명의 근원, 존재의 근원이 궁극적으로는 조상들을 거슬러 올라가 올라가, 아담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생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게 해 줍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백년을 못 살고 대부분 돌아가십니다. 또한 그들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가지므로 이상적인 아버지, 참된 사랑과 진리로 양육하고, 고난 속에 버팀목이 되어줄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부모님도 결국 인간으로서, 구원이 필요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마 23:10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시니라 

 

참된 지도자 역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담의 모든 후손들은 자기 문제가 급박한 자들입니다. 다른 사람은 진리의 길로, 옳은 데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그리스도 뿐입니다. 예수님 믿고 거듭나 영적인 눈이 뜨인 자들만이 이 진리의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심지어, 거듭나고 영성이 훌륭한 자라 하더라도 여전히 연약함에 싸여 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예수님 부활 승천 이후, 믿는 자들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 뿐이십니다.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나님은 한계 많은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섬기는 자, 자기를 낮추는 자, 겸손한 자,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과 죄성을 인정하고 경계하고 주님 앞에서 씨름하는 자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이 결국 큰 자, 위대한 자, 높임 받는 자가 됩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외식하는 것도 다른 많은 죄들 중 하나이겠지만, 그 무엇보다 심각한 죄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그들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엄히 경고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일한 구원의 문, 절대적이며 누구라도 구원 얻을 수 있는, 바로 그 천국 문을 닫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만 안 들어가도 자기 인생이니 그러려니 하겠는데, 남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입니다. 온갖 노력을 기울여 교인 한 사람을 얻어내고는, 그들을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합니다. 

키엘케고르에 의하면 사람은 크게 세 단계의 양상을 거칩니다. 쾌락주의자에서 윤리주의자로, 윤리주의자에서 자시 종교적 존재로 발전합니다.

첫 단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는 별 관심이 없고 세상 부귀와 안일을 좇아 사는, 탕자와 같은 삶입니다. 그들은 여러 환난과 고통을 겪으며,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하고 정신을 차리고 옷 매무새를 고치고 하나님 앞에 나아옵니다. 

두번째 단계로, 하나님의 율법이 내재화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살아내려고 애쓰는 윤리적 인간입니다. 그러나 피상적이고 겉치레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노력을 경주하다보면,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고 점점 절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람의 죄성과 타협이 1도 없는 온전한 율법의 정신을 가르치시고 더 높고 어려운 차원의 율법을 명하신 것은 율법이 율법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여, 죄 많은 인생들이 자신의 점수가 빵점임을 깨닫고 입을 다물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앞의 두 단계의 절망을 제대로 겪은 자들 중 일부가 도달하는 세 번째 단계는 진정한 신앙인, 복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종교적 실존의 단계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며, 구원자가 필요한 존재요, 그 구원자가 예수님이심을 아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신자, 믿는 자, 신앙인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의 행태, 즉, 율법의 단계에 있는 듯 하지만 진정으로 율법을 지키고자 하나님 앞에서 애쓰지 않는 애매한 단계는 율법 단계가 지향하는 바, 철저한 절망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몸부림치며 해 봐야 안 되는구나 하고 절망을 하는데, 적당히 사람 앞에서 하고, 사람의 인정과 칭찬, 지위와 권세라는 세속의 단꿀만 빨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이들은 아직 1단계입니다. 쾌락주의자들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자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들은 절망도 없이 계속 율법을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짐 지우기 때문에, 자기도 복음을 믿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믿음이 아니라 율법을 행함이라고 속입니다. 자기도 천국 문에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천국 문을 막고 떡 버티고 서서 다른 사람들도 못 들어가게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매하게 자신들은 1단계의 쾌락주의자들을 비웃고 정죄하며, 보다 경건하고 거룩한 자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1단계 통과도 못합니다. 죄인으로서의 자신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구원은 요원합니다. 죄에 대한 통렬한 회개도, 율법의 기준 앞에서의 절망도 없으므로, 종교적 실존,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목숨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지켜야 했던 초대 교회, 믿음 하나만으로 사자밥이 되고 화형에 처해지던 그 극심한 핍박의 시대일 때는 이런 위선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교회가 멋드러진 건물과 시스템과, 그 안을 채우는 점잖고 우아하고 도적적으로 보이는 교인들로 가득찬 시대,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성경의 교훈을 잘 가르치면 교인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고 좋은 집과 좋은 차,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기도 하는 시대에는 이런 위선자들이 많이 양상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위선자가 되기 딱 좋습니다. 아니,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갖는 위선은 우리 모두 안에 언제든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자이지만, 제 안에는 항상, 말씀을 잘 가르친다는 칭찬, 감동받았다는 칭찬을 갈구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얻으려는 자아의 욕구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사, 세례 요한처럼, 크고 명징하게 울리는 소리, 메시지만 남기고 사라지는 소리가 되게 도와주십시오. 달을 가리우는 일 없이 분명하게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고, 사람들의 눈이 예수님께 가 닿을 때, 그들 자신과 예수님만 남기고 사라지게 도와주십시오. 주님, 제 영혼이 주님의 아름다우심, 주님의 완전하심, 주님의 존귀하심, 주님의 놀랍고 놀라운 구원의 사역에 대한 감사로 남김 없이 채워지게 하시고, 그리하여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과 세상 부귀영화에 대한 욕망이 들어설 곳 없게 도와주십시오. 이 시대에, 참된 믿음의 사역자들을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교회 안에, 성삼위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시며, 주님의 영광, 주님의 권능이 밝히 드러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