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나라에서 오신 예수님은 부활 논쟁에서 땅의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하늘의 지혜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KO 한판승을 지켜보던 이들 중에 한 서기관, 마태복음 기록에 따르면 한 율법사가 있었습니다.
마 22:34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막 12:28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그는 그간 궁금했던 것을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율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 법한 그가 왜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유대 율법의 목록을 정리하면 613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오늘날까지 랍비들의 해석, 탈무드의 가르침, 전통 등, 염두에 두고 지켜야 할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예를 들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 오늘날의 유대 젊은이들은 그 하루는 스마트폰도 쓰지 않습니다.
또한 율법이 아무리 상세히 지정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무수한 경우의 수가 있고, 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습니다. 또한 때로 이 법과 저 법을 다 충족시킬 수 없어서 우선순위를 따져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율법 조항이 그 모든 상황들의 해답을 제시할 수 없으므로, 그 모든 법들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무엇입니까?
막 12:2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막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 12:31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첫째는 유일하신 참신,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신 계명입니다.
둘째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막 12:32 서기관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옳소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그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이 참이니이다
막 12:33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서기관은 '과연 예수님!' 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마음 다하고, 지혜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는 것, 또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세 오경에 나온 613가지의 모든 율법을 지키고, 종교 의례를 지키고 무수한 번제를 드리고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강제나 억지가 아니라 논리적인 팩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오직 유일하신 한 분이십니다. 또한 모든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의 작품이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선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막 12:34 예수께서 그가 지혜 있게 대답함을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하시니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은 그런 그를 칭찬하셨습니다. 그 서기관이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비교적 가까우나, 그것을 알고 인정하고 원한다고 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아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한데, 그가 이 두 가지 계명을 마음 깊이 새기고 실천하려 정말로 애쓴다면, 어떤 일이 생겨날까요? 율법이 비로소 그에게 제대로 기능하여, 그는 아마도 사랑할 수 없는 자신에 매일 매일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계명을 알고 지키기 원하지만, 아담의 후손으로서, 선과 악의 판단 주체가 되어 내 마음에 좋은 것은 선이요, 나쁜 것은 악이라 할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수 없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정직하게 절망하는 자와, 인간이 다 그렇지 뭐, 하며 적당히 타협하는 자입니다. 타협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받으심직한 좀 더 나은 제물을 들고 나아가려 계속 애를 씁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인 척 포장합니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부분에서 죄의식과 열등감, 변명과 방어적인 태도를 가집니다.
한 마디로, 사람의 힘으로 두 큰 계명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을 듣고 나의 의가 되어주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절대적인 심판의 주 하나님께서 이미 용서하신 것, '의롭다', '합격이다'라는 판정을 내리신 것을 깨닫는 자라야,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너도 나처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소망의 주 예수님을 소개하고자 하고, 사랑을 베풉니다.
복음 앞에 들어 있는 이 용서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주시는 값 없는 은혜를 아는 자들만이 두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구주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사랑을 덧입고 살아난 자로서,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기적인 본성을 버리고 나와 타인으로 구별하고 차별짓던 것을, '우리'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구별에 사람을 두신 하나님의 원대한 꿈이 무엇입니까?
에덴의 처음 계명은 '요것만은 하지 말아라~' 하시는 선악과 금기 명령, 아주 소심하고, 소극적이고, 별 것 아닌 듯한 명령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은 명령이요, 창조주 하나님의 'Forget Me Not'과 같은 수줍은 당부의 말 같습니다. 그러나 이 부정형의 명령은, 실은 어마어마하게 어려운 트릭이었습니다. 항상, 영원히 지켜내야 하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강력한 기적으로 구해내신 이스라엘에게 선포하신 쉐마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신 6:4,5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두 가지 계명, 하나님을 마음 다해, 성품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시는 계명은 얼마나 폭탄같은 선언입니까? 죄악되고 부패한 인생들 그 누구가 '옛썰!' 하고 도전해볼 꿈이나 꿀까요.
그 어려운 것을 이루어내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선악과 명령, 불순종, 그 지지고 볶는 죄악상, 일생을 건 씨름, 수 없는 타이름과 섬뜩한 경고와 피맺히는 채찍질과 상처 끝에, 나 죽겠다 울부짖는 영혼들에게, 광야의 놋뱀처럼 나무 높이 달리신 피투성이의 예수, 온 인류를 위해 모아두었던 진노의 잔이 다 부어져 눈 뜨고 볼 수 없는 사형수 앞에서, 가공할 만한 나의 죄를 보게 하시고, 독생자를 대신 벌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하셔서,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신 것입니다. 감동 감화되어, 나의 전 존재를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고 영광돌리고자 하는 자들로 빚어내시는 것입니다.
주님, 너무하다 싶었던 이 놀라운 계명, 두 손 들고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그 안에 비치는 하나님의 강렬한 사랑의 빛깔을 보고 감사합니다. 이 부족하고 연약한 소자, 제게 주신 생명과, 젊음과 지혜와 힘과 창의력과 열정, 제게 주신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 소자를 받아주시고, 하나님 앞에 살며, 하나님과 함께 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섬기고, 쓰임받게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저는 그렇게 날마다 날마다,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제가, 제게 주신 은헤를 잊지 않고, 긍휼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 긍휼과 사랑을 품은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주님께서 붙여주시는 저의 이웃을 저 자신을 위하고 사랑하듯 그렇게 사랑하게 도와주십시오. 이기적인 욕심과 나태함, 시기 질투와 무정함을 제하여 주시고, 악독을 제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과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아직 너무나 부족하오나, 저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주의 자녀로 빚어주실 주님을 믿고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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