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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231, 232. 외식을 책망하심 (마 23:23~28, 눅 11:42)

by songofkorea 2024. 10. 9.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들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에 대해서는 놀라운 관용과 용납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아주 직접적으로 신랄한 비판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그들의 오류가 무엇이며,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요? 

 

첫째, 위선을 행하는 종교인들의 특징은 우선순위가 전복되어 있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 박사요, 율법을 지키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다는 명분으로 값싼 채소들의 십일조까지 꼼꼼하게 준수하였습니다. 그들이 얻으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기준으로 하여 완벽하게 잘 지켜냈다는 자긍심이요, 사람의 인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자신들도 눈 멀었으면서 남을 인도하는 어리석은 자들이라 지탄하셨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마치 모기장을 쳐서 하루살이는 걸러내는데, 덩치 큰 낙타는 걸러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고 완벽을 기해도 비교할 수 없이 큰 더 중요한 곳에 빈틈이 생겨 술술 물이 새는 것과 같습니다. 

십일조 규례를 완벽하게 준수하려고 법 조항을 보태고 신경쓰면서 그들이 놓친, 비교할 수 없이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정의와 긍휼과 믿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의를 실현해야 하지만, 기득권을 지키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긍휼의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출애굽 백성으로서, 가난하고 힘 없는 백성들,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영육 간에 돌보아야 하는 목자로서, 오히려 고혈을 짜내고, 무거운 종교적 짐까지 더 부과하였습니다. 죄인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믿는 믿음으로 행치 않았습니다. 자칭 의인들이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언약이 필요가 없고, 믿음으로 열리는 은혜의 세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가 충만하고 죄인들을 업신 여기며, 진리의 말씀으로, 그리고 십자가로 구원을 베푸시는 약속된 그리스도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마 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마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예수님은 또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겉과 속이 다른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의식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비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런데 위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이 겉으로는 깨끗하고 거룩한 척,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 사는 척 하지만,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다고 지적하십니다. 말끔하게 회칠을 하여 보기 좋게 꾸몄지만, 그 안에는 썩은 사체처럼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온갖 위선을 떨고, 심지어 스스로도 자신이 의롭다고 착각하는 그들이 공개적으로 이런 엄청난 비판의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예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기 위해 오신 영적인 의사이십니다. 위선적인 종교가들도 분명 영적으로 눈 멀고 병든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죄와 싸우시고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시기 위해 씨름해 주신 것입니다. 당장은 자존심이 구겨져 분개했겠지만, 더러는 후에 예수님 말씀을 생각하며 내가 정말 그런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 23: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사람은 누구나 선을 향한 의지도 있고, 한계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였습니다. 현실과 욕망에 타협하며 막 사는 인생들에 비해 종교적 열심이 있는 자들은 당연히 생색 내기 쉽고 자기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의 장점과 단점, 좋은 의도와 그 오류를 모두 고려하여 보시며 약한 부분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당장은 기분 나쁠지라도 그들이 정말로 추구한 것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인정이었다면, 예수님의 책망이 약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칭찬과 인정만이 목적이고 하나님은 그저 자신을 거룩하고 경건한 자로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자들에게는, 물론 더욱 마음이 굳어지고 적개심을 품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지키노라 하면서 끝끝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절하는 이스라엘 동포들을 안타까이 여기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롬 10: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10: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저는 지독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요, 그들만큼 율법을 잘 지키지도 못했지만, 교만함과 어리석음과 자기의 만큼은 그들과 결이 비슷했습니다. 더욱 답이 없는 것은 저는 복음을 전해들었고, 배웠고, 알고 있다고 여겼고, 믿고 있다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로서, 예수님의 크신 은혜를 덧입은 자로서, 참된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여겼고,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신다고 여겼습니다. 그렇게 캄캄한 가운데 나 자신에 대한 죄의식과, 사람 앞에서의 위선과 교만으로 죄에 죄를 더해가고 있던 저에게 하나님은 죄를 이길 수 없고 미움과 악독이 가득한 저를 직면하게 하셨습니다. 선을 행할 능력이 없고, 외식과 죄악이 가득한 바리새인 된 저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망하고 있는 저에게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도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서 살려 애쓰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본문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어쩔 수 없이, 진리에 대한 무지와 선을 행할 능력이 없어 외식으로 꾸미고 죄악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종교인들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믿노라 하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전혀 개의치 않는 무도한 자들, 가짜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사람들조차 손가락질 하는 오늘날의 교회의 위상이 얼마나 한탄스럽겠습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렇게 살 수 없다고, 구원이 그렇게 쉬울 리가 없다고, 나름대로 성경을 근거로 들이대며, 행위와 열매의 증거를 내놓으라 자신과 교회에게 목 놓아 외치는 그 절박한 심정을 왜 모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보시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사 아프게 찌르시고 호통도 치시고 씨름하시는 줄을 믿습니다. 그만 사람의 칭찬을 포기하고, 가면을 벗고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라고 애타게 부르시는 줄로 믿습니다. 남에 대한 손가락질을 그치고, 그 율법의 잣대로 자신을 먼저 진단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치며 탄식하기를 기도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 하셔서 자기 의로운 행위로 못 하고, 오직 믿음으로 되는 그 은혜의 세계를 보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 복음의 능력을 밝히 드러내어 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가 복음을 누리며, 또한 의의 열매가 맺히는 자 되길, 우리의 구원의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