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앞서 예수님의 권위,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정당한 권세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맏아들은 예 해놓고 실제로는 순종하지 않았고, 둘째 아들은 싫어요 했지만 후에 뉘우치고 가서 일했습니다. 누가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느냐 물으시고, 세리와 창기들이 그들보다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또 다른 비유로 종교지도자들의 행태를 드러내어 주십니다.
막 12: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어떤 유력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포도원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산울타리를 두르고 망대를 지어 도적이나 들짐승으로부터 보호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수확 때 쓰도록 즙 짜는 틀을 만들고 필요한 것들을 갖추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소작농들에게 세를 내놓고 외국에 나갔습니다.
마 21: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열매 거둘 시기가 되자 포도원 주인은 종들을 보내어 포도 수확한 것에서 약속된 일정량을 세로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마 21: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마 21: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농부들이 세 주는 것이 아까워 파견 받은 종들을 잡아다가 심하게 때리고 심지어 한 종은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그 포도원에서 일을 하고 포도를 수확할 수 있었는지, 포도원 주인의 공로와 소유권은 깡그리 무시하고, 마치 그가 불노소득하고 자신들을 착취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손해의식, 피해의식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의 행패는 너무나 심각한 것입니다.
막 12:5 또 다른 종들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그런데 주인의 반응은 더욱 놀랍습니다. 주인은 그 위험한 곳에 또 다른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들도 주검으로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주인은 그 외에도 또 많은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백번 양보하고 소작농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옹졸한 사고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너그러운 관용을 유지하고 기회를 주고 또 주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결코 세를 낼 생각이 없었고, 주인이 보내는 족족 무고한 종들을 때리고 죽였습니다.
막 12: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런데도 주인은 포기하지 않고 소작농들과의 관계성을 바로 잡고자 했습니다. 어떤 종들을 보내도 소용 없고 다 맞고 죽었는데도 마지막 남은 한 사람,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고자 했습니다. 그는 '저들이 아무리 그래도, 설마, 내 아들에게까지 그럴 리는 없지. 아들은 존대해줄 거야. 뉘우치고 바른 태도를 보일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무모하고 어리석어보이는 행동입니까?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작농들의 마음을 이미 읽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아니, 첫판부터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악한 농부들을 두고 그런 일말의 희망을 갖다니...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을 그런 리스크 엄청난 상황으로 몰아넣다니...
비유는 얼핏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개연성이 없고 설득력도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비유는, 그러므로 일반적인 사람들 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이한 하나님의 인내요, 놀라운 자비요, 죄인들을 향하신 포기치 않으시는 사랑이라는 것을 역설합니다.
눅 20: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눅 20: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포도원 주인의 마음은 아랑곳 없이, 농부들을 여전히, 그리고 가장 큰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주인의 아들은 상속자이니 아들을 죽이고 그 유산을 차지하자고 작당한 것입니다. 소작농들은 파송받은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내쫓아 죽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유대인들이 영문 밖으로 내어쫓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할 일을 암시합니다. 비유만 들어도 말도 안 될 일을, 하나님이 진짜 실행하시고, 선민 이스라엘이 진짜로 실행할 것입니다. 역사 속에 나타나는 이런 넌센스, 엄청난 부조리가 왜 일어납니까? 주인은 어리석기만 한 것입니까? 그 종들과 아들은 그저 억울한 개죽음만 당하는 것입니까? 아니라면,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하여 이런 엄청난 일이 발생할까요?
예수님은 비유를 듣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에게 '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물으셨습니다.
마 21: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눅 20: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포도원 주인은 할 만큼 했다, 소작농들이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러니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정신을 가진 자들, 포도원을 제공한 주인의 권리를 충분히 인정해주고, 열심히 농사를 지어 먹고 살고, 또 그 일부는 기꺼이 소작료로 납부할 합당한 자들에게 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본문에 의하면, 악한 농부들은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될 텐데요', '아, 부디 비유의 악한 농부들이 벌이는 그런 어리석은 일들, 그런 끔찍한 비극은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앞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 맏아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보다 둘째 아들과 같은 세리, 창기, 경멸을 받을 만한 죄인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끝까지 거절하고, 잡아 죽이는 유대 종교인들이, 바로 그 악한 소작농들과 같은 짓을 하는 것이요, 그 끝은 무서운 진멸을 당하는 것임을 시사해 주십니다. 유대 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포도원을 누리며 하나님을 늘 입에 달고 살며 경건의 모양을 갖추었지만, 실제로 그들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무수한 주의 종들을 박해하고 잡아 죽인 것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카드, 그 아들까지 죽일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악한 본성이, 하나님께서 아무리 참고 참고 또 인내하셔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결고 그들의 악한 존재 자체가 변화될 가능성이 없음을 말해줍니다. 자신 앞에 놓인 십자가를 뻔히 아시는 하나님, 그들이 어떻게 행할지 다 아시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 마음이 어땠을까요. 우리 죄인들의 무지함과 어리석음, 그 악함이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러나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이 비유를 듣고 미리 책망을 받은 이들 중,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해 깨닫고 돌이켜 믿는 자가 된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렇게 대적자에서 충성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죄인들을 오래 참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씨름하여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 놀라우신 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시고, 죄인들을 감당하시고, 십자가 고난과 죽음까지 견디어내신 예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께서 주신 생명과 좋은 포도원을 누리는 자로서, 욕심 부리고 불평하고 부당하게 주님의 것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고, 겸손과 감사함으로 영광 돌리게 도와주십시오. 제게 주신 너무나 좋은 귀한 것들을 온전히 누리고 열매 맺고 소출을 안겨드리게 도와주십시오. 진멸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이 죄인의 어두운 눈을 밝혀주시고, 제가 넘치는 은혜 가운데 선하신 하나님의 모든 선물을 누리는 자 되게 하시고, 그것을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겸손하고 온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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