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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210. 나귀 타고 오시는 그리스도 (마 21:1~9, 막 11:1~10, 눅 19:29~40, 요 12:12~16)

by songofkorea 2024. 8. 17.

요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것을 듣고 

요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이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사여 하더라 

마 2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서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나사로의 집에 머무신 다음 날,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 가까운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셨습니다. 

 

눅 19:30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막 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셔서 맞은편 마을에서 아직 아무도 태운 적 없는 어린 나귀 새끼를 가져오라 하셨습니다. 누가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는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라면, 왕 답게 멋진 백마를 타야 어울릴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마 21:4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마 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시온은 예루살렘을 영적으로 부르는 말입니다. 메시아가 오실 곳,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설 곳, 그리하여 만민을 위한 구원의 문이 열릴 곳입니다. 그런데 시온에 예언된 왕이 임하실 때에 그는 나귀 새끼를 타실 것입니다. 이는 세상 권세자들은 멋진 말을 타고 화려한 가마를 탑니다. 이 왕들은 복종하지 않으면 칼을 휘두를 수 있는 두려운 존재, 머리를 조아리고 섬겨줘야만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나귀는 일반 백성들이 타는 볼품 없는 짐승입니다. 나귀를 탄 사람은 위화감이 없고 친근합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는 것은 세상의 통치자들과 다른, 지극한 겸손의 성품을 나타냅니다. 왕 중의 왕, 가장 높으신 분께서 이렇게 백성들의 곁에 낮아져 오시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겸손이요, 은혜일까요. 

막 11:4 제자들아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눅 19:32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가서 그 말씀하신 대로 만난지라 

눅 19:33 나귀 새끼를 풀 때에 그 임자들이 이르되 어찌하여 나귀 새끼를 푸느냐 

눅 19:34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막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예수님 말씀대로 가 보니 과연 나귀 새끼가 매여 있었고, 나귀 주인이 물어 일러주신 대로 답하니 순순이 내주었습니다. 나귀 주인도 아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듣고 준비되어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곳곳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시고,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눅 19:35 그것을 예수께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요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제자들은 나귀 새끼를 끌고 왔습니다.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안장처럼 걸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나귀 새끼에 태워드렸습니다. 그들은 훗날, 예수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 즉, 십자가 사명을 완수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야 이 모든 일에 대해서도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지자의 말씀은 다음 스가랴서 말씀입니다.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제자들은 아직 영적인 눈이 뜨이지 못하여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함께 하면서도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잘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께서 오셔서 가르쳐주셨을 때, 성경의 기록들이 바로 예수님을 가리킨 것임을, 말씀대로 이루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막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밴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마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눅 19:37 이미 감람 산 내리막 길에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들이 본 바 모든 능한 일로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눅 19:38 이르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셨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당당히 입성하시는 것을 보자 대중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들은 4백년 암흑기를 지나며 메시아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에덴 동산의 범죄 이후 약속받은 여자의 후손, 원수를 물리쳐주실 구원자가, 드디어 오신 것입니다. 그들의 기대와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환호하며 찬양했습니다. 그들은 겉옷으로, 또 어떤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며 예수님의 길을 레드 카펫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눅 19: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눅 19:40 대답하여 이르시도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침묵하며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대한 찬송이 과하다고 생각하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선생'이라 부르며 이런 일을 벌이지 못하도록 책망하라고 종용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절대 그리스도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많은 기적과 말씀과 가르치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져온 전통과 율법 조문과 인간적인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끝까지 배척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내내 그리스도이신 것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기적을 베푸시면서도 소문 내지 않도록 당부하셨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신앙 고백 이후, 드러내 놓고 그리스도이심을, 그리고 그리스도로서 하실 일이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임을 천명하셨습니다. 

오늘 바리새인들 앞에서도 예수님은 이 입장을 강하게 확증하십니다. 사람들이 침묵한다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르며 찬양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 비유는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죽은 자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시는 구세주 예수님께서 돌들이 찬양하게 못 하실 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요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시라는 것이요, 그것을 분명하게 시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그토록 높은 권세를 가지시고 인생들을 위해 엄청난 일을 하신다면, 얼마든지 생색을 내고 권위를 주장하고, 힘으로, 당위성으로, 군림하려 할 텐데 말이죠. 예수님은 어쩜 그렇게 출생에서부터 죽으심에 이르기까지, 겸손히, 가장 낮은 모습으로, 위화감 하나 없이 무해하고 무해한 분으로 우리 곁을 살다 가셨을까요. 

힘 없고 서러운 인생, 두고보자 하며 이를 부득부득 가는 저로서는 정말 너무 멀고 먼 넘사벽의 주님이십니다. 저는 주님께 복을 비는 지금 이 순간도, 힘을 얻고 권세를 얻으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잘 해주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얄짤 없으리라 상상하는 속 좁은 인간입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께서 악독한 냄새를 풍기는 비참한 이 죄인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가까이 가까이 낮아져오셨건만, 그 은혜를 인하여 구원 얻었건만, 저는 아직도 바리새인들의 못된 마음씨를 닮아 있습니다. 얄팍한 군중들 속에 똑같은 심보를 가지고 서 있습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저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허락해주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제 삶의 열매가 복음을 훼방하거나 주의 귀하신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저의 모나고 가시돋힌 마음, 쓴 뿌리, 악독한 폭력과 미움과 분노를 없애주십시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주님께서 주시는 모든 것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며 나누며 사랑하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마음에 사랑이 가득한 자, 겸손한 자, 온유한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제 마음, 주님과 함께하며, 천국을 누리게 도와주십시오. 

제 마음에 나귀를 타고 오신 주님, 하나님께서 보내어주신 나의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