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을 앞두고 사람들의 관심사는 체포 위협을 받고 있는 예수님께서 과연 예루살렘에 오실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 앞에 있음을 잘 아시면서도 도망치지 않으셨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 예수님 일행은 예루살렘과 가까운 베다니 마을에 오셨습니다. 거기서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남매의 집에 머무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다시 맞이한 나사로 가족은 잔치를 벌이고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특히, 마리아는 순전한 나드 향유 한 근을 예수님 발에 아낌 없이 들이붓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어드리며, 예수님께 '나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이다',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 하시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12: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함이러라
초미의 관심사인 예수님께서 베다니 동네 나사로의 집에 계시다는 소문을 듣고 큰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했습니다. 또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나사로에 대한 기이한 소문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12: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2:11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하면 할수록 위협과 긴장감을 느끼며 눈을 치켜뜨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위선적인 종교가들, 기득권자들, 권세자들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 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기로 모의했습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왜 일반 대중보다도 못한 분별력을 가지고, 심각한 악을 도모하는 것일까요? 혼자 몰래 하는 것도 아니고, 대제사장들, 종교의 최고 지도자들이 모여 이런 일을 의논하고 결의한다는 것이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실상은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진리를 추구하지도 않고, 그들 영혼의 구원을 이루실 그리스도를 바라지도 않는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들은 지금 이대로의 자신, 누리고 존경받고 대접받는 여건, 이 땅의 부귀와 영화, 기득권, 그것이 더 좋고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의 거룩한 모양과 사람들의 존경을 누리면서도 그 핵심 내용이신 하나님께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하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구원과 영생의 복락을 거절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죽이고자 하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거해주는 부활의 증인, 나사로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예수님을 대적합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시고 예언하신 일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원수 옛 뱀에게도 후손이 있고, 여자에게도 후손이 있습니다. 그 두 사이에는 적대관계가 있습니다. 니고데모를 비롯하여 종교지도자들 중에서도 진리를 사모하는 자들, 진정으로 하나님을 추구한 자들은 달랐지만, 많은 종교지도자들, 기득권을 가지고 누리는 자들이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에게 깊은 적개심을 가지고 잡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귀인의 왕 됨을 원치 않는 자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결국은 그들의 절대적이고 유일한 구원의 주 예수님을 배척한 결과, 그들이 당할 진노를 고스란히 받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제가 사람의 지위고하를 따지고 빈부귀천을 따지는 이 세상의 가치관에 속아서는 안 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많이 가지고 많이 누릴수록 오히려 구원의 주 예수님을 대적할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가 가진 것으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으니 스스로 속기 쉽습니다. 종교성이 강하고 신앙 양심을 지켜 죄를 멀리할 때에도 자기의와 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죄인으로서의 자기 발견이 어렵고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오히려 역기능적 가정에서 자라나 인간적인 보살핌을 못 받은 자들, 가진 것 없고 지위가 낮아 인간 대접을 못 받는 자들, 이 땅에서 가진 것이 없고, 혹은 있어도 그 한계에 환멸과 허무를 느끼는 자들, 이런 자들은 구원자를 갈망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오랫동안 교회 안에 있으면서 본문의 대제사장들처럼 자기의 것을 지키고 높이기 위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저의 영혼을 붙들어 주십시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고, 복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찌라도, 그 승리와 소유와 전리품들이 저의 자랑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뻔히 보이는 저의 연약함과 실패와 수치들을 애써 가리려 하거나 위선을 떨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저의 자존심, 높아지고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경계하게 도와주십시오. 또한 내가 옳다 여기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거짓되이 행치 않게 도와주십시오. 진실을 왜곡하고 거짓말을 보태려는 악한 유혹을 이기게 도와주십시오. 오직 마음 중심을 보시고 눈동자처럼 보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 진실되이 행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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