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5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원근각처에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11:56 그들이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그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사람들 가운데 이슈는 단연 예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 청년으로서 당연히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오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점을 노리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1: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미 공개적으로 예수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린 것 같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계신 곳을 신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습니다.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길목을 노리는 암살단처럼, 예수님을 잡으려는 대적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보통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요? 특수한 상황이니 예외 케이스로 위험을 피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지혜로운 처신 아닐까요?
다니엘은 대적자들이 덫을 놓은 것을 알고도 훤히 보이도록 창을 열고 여상히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과연 다니엘은 이 선택으로 인해 잡히고 사자밥이 될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행동이 어리석고 무모한 행동이었고, 모든 것은 실패로 끝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사자의 입을 막으시고 능히 보호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불신 세상과 권세자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높이는 승리로 반전되었습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자기 괴력의 근원을 밝히면 잡혀 죽을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비밀을 말하고 진심을 토로했습니다. 들릴라는 망설임도 없이 배반을 했고 삼손을 잡히고 눈이 뽑히고 결국 블레셋 원수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그러나 사사기는 그가 죽을 때에 이룬 업적이 살아있을 때 이룬 업적보다 크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 하나님께서 세우신 리더로서 명예로인 장사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삼손은 끝까지 사랑하였고, 진심을 토로하고 괴력을 잃어, 사랑을 위하여 죽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고 그의 힘을 회복시켜주시는 자리, 원수들을 물리치고 가장 큰 업적을 이룬 자리, 의미 있는 승리의 자리가 되었습니다.
삼손의 죽음처럼, 예수님은 언뜻 보면 무모하고 어리석어보이는 이 예루살렘 길을 마다하지 않으십니다. 언뜻 보기에 실패요 치욕으로 보이는 이 길, 배반당하고 체포되고 이방인의 손에 넘기워 채찍질과 십자가 사형을 당하는 이 길이,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작정하고 걸으시는 길, 그리스도의 사명의 정점이기 때문입니다. 인류를 죄로부터 해방시키고, 원수 사단 마귀를 멸하시고 죽음의 권세를 폐하시기 위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제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 놀라운 역설과 대반전과 지혜의 경륜, 십자가 고난과 죽음으로 이루시는 승리의 방식을 배우고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십자가를 꺼려하고, 죽기를 두려워하고, 도망하고 회피하는 자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생명과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줄을 믿고, 예수님을 좇는 제자의 삶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복음서] 209. 나사로를 죽이려는 음모 (요 12:9~11) (0) | 2024.08.16 |
---|---|
[사복음서] 208. 향유를 부은 마리아 (마 26:6~13, 막 14:3~9, 요 12:1~8) (4) | 2024.08.15 |
[사복음서] 206. 열 므나의 비유 (눅 19:11~28) (0) | 2024.08.13 |
[사복음서- 205.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심 (마 20:29~34, 막 10:46~52, 눅 18:35~43) (0) | 2024.08.12 |
[사복음서] 204. 삭개오를 만나주심 (눅 19:1~10) (2) | 2024.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