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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204. 삭개오를 만나주심 (눅 19:1~10)

by songofkorea 2024. 8. 9.

예수님은 여리고를 지나시며 삭개오라는 세리장이를 만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죄인 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시는지, 창조주시요 하늘 아버지시요 구원자이신 예수님의 시각을 볼 수 있습니다. 

 

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여리고의 삭개오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세리들은 당시 로마 압제하에 신음하는 약하고 힘 없는 이스라엘 동족을 괴롭히고 자기 배를 불리는 매국노로 지탄 받았습니다. 창기보다 더한 죄인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삭개오는 명예를 버리고 질시와 비난을 감수하며 악착같이 살아 돈에 맺힌 한을 풀고 부자가 되었지만 그 영혼의 목마름은 어찌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는 예수님께 관한 소문을 듣고는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헤집고 달려가보았지만 키가 작아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시는 동선에서 저 앞에 돌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무리들을 지나쳐 달음질쳐 나무에 올라 예수님 일행이 가까이 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생기신 분인지, 어떤 아우라를 풍기시는지 꼭 보고만 싶었습니다. 

 

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그런데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이르자 예수님께서 고개를 들어 나무에 매달린 삭개오를 주목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우스꽝스럽게 나무를 붙들고 있던 그는 창피하고 민망했겠지요. 그러나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주목하신 것, 그의 이름을 불러주신 것이 너무나 가슴 벅차고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 묵어가야겠다 하시다니... 

 

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는 정말 뜻밖의 기쁨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을 것입니다. 그는 정신 없이 나무에서 내려와 예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는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삭개오를 아시네? 그런데 그가 악랄한 세리장이요, 동족을 쥐어짜 부를 축적한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시나?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며 수군거렸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인과는 거리를 두실 것이라는 게 인간의 판단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쉽고도 어렵습니다. 활짝 열려 있는 문이지만, 사람들이 무시하고 믿지 못합니다. 그 엄청난 비밀과 힘을 간과하고, 누리지 못합니다. 

 

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달랐습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으로서, 잘못된 인생 여정 끝에서 가난해진 심령을 가졌을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상이 필요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다시는 인생을 돌이킬 수도, 사람들의 이해를 바랄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의 선택과 행보에 대한 책임으로 비난과 정죄, 외롭고 답 없는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엄위하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할 말 없는 죄인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그는 애통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 구원과 용납하심을 간절히 간절히 사모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눈을 맞춰주시고, 이름을 불러주시고, 그와 함께 하고 함께 먹으며 친구가 되겠다 하시는 음성을 들었으니, 삭개오의 기쁨과 감격이 어땠을까요.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는 그간 돈만 좇던 자에서 이제는 그 돈이 문제가 되지 않을만큼 진정한 가치, 참된 가치를 안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노라, 만약 속여 취한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노라 다짐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가치관이 변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은 또한 삶이 달라집니다. 

 

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예수님을 삭개오의 집에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삭개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조상 아브라함을 자랑스러워하며, 아브라함의 후손이기에 선민이요 하나님 백성이요 구원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혈통 중에서도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사는 자요, 의롭다 인정받는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손임이 구원과 어떻게 연관됩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는 사람이 구원을 얻습니다. 자기의 의는 부족하되, 구원을 베푸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겠노라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그 믿음으로 인하여 은혜로 의롭다 인정받는 것입니다. 

 

롬 4:1~3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롬 4:11,12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사람의 의를 내세우고 죄인들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진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로운 자들을 찾아 상 주려 하심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는 의인이 없습니다.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자신은 조금 더 나은 죄인이 되어 하나님 눈에 들어 선발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하나도 없고 모두 죄인들 뿐이라는 것을 잘 아십니다. 그러나 지구를 엎어버리고 손 털고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죄인들을 포기치 않으시고, 불러 모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하게 하시고, 구원하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아 변화되게 하십니다. 삭개오는 그 복음에 올바르게 반응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더럽고 냄새나는 죄인인 것을 아시고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 십자가 고난과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저의 죄값을 다 치르게 하신 은혜를 감사 찬양합니다. 제가 삭개오처럼, 세상 유혹과 방해물들을 헤치고 주님을 찾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늘 구원의 은혜와 감격으로 충만하게 하시사 저의 소유를 아낌 없이 주와 복음을 위하여 쓰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시고 경외하며, 삶의 질서가 서고 생활의 열매로 나타나게 도와주십시오.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낮고 낮은 자의 집에 기꺼이 오시고 함께 하시고 저의 섬김을 받아주십시오. 죄인들을 위해 오신 구세주, 이 소자의 구원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