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어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서 가실 길은 부귀영화와 영달의 길이 아니라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길이심도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의 생각, 심지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고 자처하는 제자들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신비였습니다.
막 10: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께서 세번이나 십자가 고난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에 대해 말씀하셨어도 제자들은 동상이몽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맞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기들은 장래가 보장되고 남은 인생 꽃길만 걸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에 부풀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독대하여 단도직입적으로 약속을 받아내고자 했습니다. 마태복음 기사에는 그들의 어머니가 와서 청탁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20:20)
마 20: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어머니의 청이든 야고보 요한이 직접 청한 것이든, 그들이 원한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나라, 즉 예수님께서 로마의 압제도 물리치시고, 종교 지도자들, 대적하는 모든 자들을 이기신 후 예수님의 나라를 세우실 때에, 야고보와 요한을 우의정, 좌의정으로 세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다음 가장 높은 2인자 자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상당한 지위욕을 숨기지 않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공정한 경쟁이고, 예수님의 의중이고 뭐고 없이, 최종 의사결정권자의 마음만 얻어내면 된다고 여겼습니다. 예수님의 확약을 받아내면 뜻대로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일면 술수에 능한 정치꾼들 같은 행태를 보였습니다. 세상에서는 그것이 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막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야고보와 요한이 모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의 좌우에 앉는 것,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르는 삶이 어떤 것인가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 예수님이 받으실 세례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원하는 모든 좋은 것들의 정반대 끝단에 있는 것, 즉, 남을 위한 희생과 자기비움과 낮아짐과 고난, 죽음과 버림받는 고통이었습니다.
막 10:39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마 20:23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 말씀을 듣고도, '주님, 그게 무엇인가요? 저희가 모르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주님 뜻이 다르시다면 알려주세요.'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있나이다!' 큰 소리 칠 뿐이었습니다. 힘과 권세와 부귀영화를 얻고자 하는 욕심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가련한 영혼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장차 겪을 사명의 길과 고난의 길을 아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하셨습니다. '맞다. 너희들은 원하지 않아도 나를 따르며 나의 제자로서 내 잔을 함께 마시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좌우편에 앉는 것은 예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선을 그으셨습니다.
막 10: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나머지 열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의 행동에 분노했습니다. 절차도 공정함도 무시한 청탁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그들도 같은 욕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마 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예수님은 제자들이 큰 자, 위대한 자, 으뜸이 되고자 하는 욕망 자체를 잘 이해하셨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위대함과 리더쉽은 세속의 가치관이나 행태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힘으로 타인의 의지를 꺾고 내 뜻대로 좌지우지하고 싶은 지배욕과 자기중심성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집권자가 아랫 사람을 자기 뜻대로 주관합니다. 힘 있고 명망있는 자들이 힘 없는 자들에게 권세를 부립니다. 꼭 유명하고 지위와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 뿐만이 아닙니다. 한 가정 내에서도, 중소기업 직장 내에서도, 심지어 순진무구해보이는 어린 아이들이 뛰노는 유치원에서조차, 이 힘의 논리 아래 얼마나 많은 부조리가 일어나고 약자의 자유가 짓밟히고 얼마나 많은 진실이 가려졌을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마 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 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공동체, 믿는 자들의 공동체, 교회 내에서는 다른 법칙이 적용됩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높이고 남을 섬겨주는 자가 위대한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추고 남을 위해주고 섬기는 것은 이기적인 본성을 거스리는 것이기에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그만큼 진정한 파워를 지닙니다. 얇팍하고 방어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 감화 시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말로만 가르치지 않으시고 직접 그 위대한 삶을 살아내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이 되어 이 땅에 오시고 죄인들 곁에 사신 것이, 애초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인내의 수고를 하셨습니다. 진리로 가르치시고, 먹이고 마시우셨습니다. 모든 좋은 것들로 주고 주고 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가장 귀한 생명,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생명까지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수고와 헌신은 결코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놀라운 방법, 역설적인 방법, 죄인들과 다른 진짜 사랑의 길을 걸으셔서 죄인들의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사랑의 힘을 알게 되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제자들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역사상 예수님처럼 많은 찐 팬들을 보유한 인물이 어디 있을까요? 역사상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인생을 바치고 생명까지 바쳐 사랑하고 붙좇는, 그야말로 역사상 최고의 수퍼스타가 되셨습니다. 가장 위대한 인물, 으뜸가는 리더가 되셨습니다.
주님, 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사랑하고 사랑합니다. 제가 제자들처럼 세속적인 가치관과 욕심으로 명예와 권력과 재력을 동경하고 구하며 그 힘들로 사람들이 인정과 존경을 사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이 어리석은 마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제게 많은 것을 주셔도, 나를 위해 쓰고 내 뜻대로 남을 부리고자 하는 교만을 품지 않도록 이 연약한 자를 붙들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귀한 진리를 보여주시고 알려주셨사온데, 또한 야고보와 요한을 그리하신 것처럼, 어리석과 연약한 자도 인도하시어 예수님의 제자의 삶 살도록 불러주셨사온데, 예수님이 가르치신 섬김과 헌신과 사랑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주 안에서 진정으로 위대한 삶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 엄청난 비전을 품고, 오늘 하루 만나는 이들에게 주께 대하듯 진심으로 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교만과 미움과 이기심을 겸손과 사랑과 섬김으로 이겨내는 마음과 손발이 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복음서- 205.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심 (마 20:29~34, 막 10:46~52, 눅 18:35~43) (0) | 2024.08.12 |
---|---|
[사복음서] 204. 삭개오를 만나주심 (눅 19:1~10) (2) | 2024.08.09 |
[사복음서] 202. 죽음과 부활을 세 번째 예고 (마 20:17~19, 막 10:32~34 눅 18:31~34) (0) | 2024.08.07 |
[사복음서] 201.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보상 (마 19:27~30, 막 10:28~31, 눅 18:28~30) (0) | 2024.08.05 |
[사복음서] 200. 구원을 얻을 자 (마 19:23~26, 막 10:23~27, 눅 18:24~27) (0) | 2024.08.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