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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201.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보상 (마 19:27~30, 막 10:28~31, 눅 18:28~30)

by songofkorea 2024. 8. 5.

부자 청년과 예수님의 대화를 듣고 제자들은 처음엔 당혹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그토록 어렵다면 과연 누가 갈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가졌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제자들은 당장 현실적인 생활의 염려에 빠지고, 이 땅에서의 보상에 대해 진심 궁금해졌던 것 같습니다.

막연한 기대감, 뭔지 모르지만 핑크빛 꿈을 안고 오직 예수님 한 분 바라보고 제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아, 내가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마음이 복잡해졌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용기를 내어 마음에 있는 의문을 솔직하게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마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에는 어떤 보상이 있을까요? 어떤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크게는 영원한 생명,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영생을 누리는 복과, 이 땅에서 누리는 현세적인 복, 세속적인 복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명확한 기준을 말씀해 주신다면, 사람들은 나름대로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버릴 것과 취할 것, 기대할 것과 포기할 것을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이렇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영생도 얻고 이 땅에서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뭐 그런 기준 말이죠. 

제자들은 아마도 예수님을 따르며 구원은 당연하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뭔가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장이요 주관적인 착각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도 예루살렘 입성 후 누가 한 자리 차지할 수 있을지 다투었습니다.

 

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그러나 예수님은 한계적이고 부족한 제자들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라는 것은 예수님의 궁극적인 심판의 때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인자가 심판의 주로 다시 오셔서 각 사람을 심판하실 때에, 제자들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릴 것이라 하셨습니다. 

눅 22:30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막 1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주와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고 희생한 자들이 받을 보상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들은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으며, 현세에 있어서도 희생한 것을 백 배나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단,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기독교는 비움과 부정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좋은 것과 싫은 것, 행복을 추구하는 본성을 심어주셨고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도 부합하는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있도록 양심과 이성과 영성을 모두 부여하셨습니다. 보상을 바라고 상급을 바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십니다. 백 배나 보상해 주시고, 받을 자격이 없는 영생의 선물까지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장래 일을 염려하지 않고, 위대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 싶은 소원, 하나님을 추구하는 마음, 좋은 것을 얻고자 하는 우리의 동기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안심하고 신뢰하며 뚜벅 뚜벅 자기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붙좇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당장의 수고와 희생, 가족들로부터의 핍박, 사회에서 당하는 핍박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주의할 점은 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을 든든히 믿고 의욕 넘치게 달려들어 내 방식대로 내달릴 수 없습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는 예수님에서 율법주의에 젖어 자기의를 부여잡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로 많이 거론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즉, 성령님의 조명에 의해 자신이 율법의 기준으로 전적인 죄인이요, 하나님의 존전에 설 수 없는 심판감인 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과정은 자신에 대한 이해, 세상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로잡아줍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위한 인생을 살면서도 교만에 빠지거나 생색을 내거나 보상을 바라거자 하지 않게 해 줍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 역시, 장차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과하여 그런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가 생기고 영적인 눈이 뜨이고 존재 자체가 변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따를 수 없었던 예수님을 끝까지 붙좇고, 핍박을 받을 때에도 영원한 하늘나라를 고향으로 알고 기꺼이 받을 수 있는 자들로 변모됩니다. 우리 죄인들을 불러 변화시키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영적으로 무지하여 바리새인들처럼 더러운 누더기같은 자기의를 부여잡고 고생하던 저에게 고개를 들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님으로 인하여 새 인생 살고, 예수님을 따는 제자의 삶으로 부르심 받은 것을 감사합니다. 제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살되, 받을 것을 헤아리지 않고, 주님 주시는 넘치는 은혜대로 또한 주님께 아낌없이 드려 복음을 전하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저를 위하여 하늘나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천국을 기업으로 허락하신 주님 은혜를 찬양합니다. 산 소망 가운데, 이 땅에서 제자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육신의 안일을 도모하지 않고, 나 자신을 싸워 이기며, 하루의 첫 시간을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주님께 기도하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루 하루 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