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193. 나사로의 병 (요 11:1~37)

by songofkorea 2024. 6. 17.

11:1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11:2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러라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베다니 마을에 세 남매,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중 마리아는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던 바로 그 여인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병드는 일이 생겼습니다. 누이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고 전하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11:4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5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예수님은 그 병이 죽을 병이 아니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일을 통해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즉, 목적이 있어서 발생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이틀을 더 지체하며 계시던 곳에 머무셨습니다. 결과적으로, 나사로의 병이 악화되고 죽기까지, 소망의 불씨까지 완전히 꺼져버렸습니다. 제자들도, 어떤 사람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11: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11: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11: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1: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이틀이 지난 후에야 유대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은 유대인들의 위협을 상기시켜 드렸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낮에 다니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낮이 12시간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는 영적으로는 예수님께서 그들 곁에 함께 계시는 시간들입니다. 안심하고 다닐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의 때가 오기 전까지는 유대인들이 아무리 인간적인 꽤를 쓰고 힘을 동원해도 예수님과 제자들을 헤칠 수 없습니다. 

 

11: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1:12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11: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1: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1:16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어 죽기까지 지체하신 후 뒤늦게서야 친구 나사로에게 가자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공급자이신 예수님께는 죽음이 문제가 되지 않고 나사로의 죽음도 그저 잠들어 쉬는 것과 같았찌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죽었다고 분명하게 밝혀주시며, 그 상황을 '기뻐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죽은 자도 살리시는 생명의 주 되심을 드러내시고 믿음을 심으려 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의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죽음도 불사하는 의리로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외쳤습니다. 그의 의리를 충성되다 칭찬해야 할까요, 무모한 만용이라 경계해야 할까요.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1: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1: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11:20 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11: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11: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님 일행이 베다니에 오셨을 때에는 나사로가 무덤에 묻힌 지 이미 나흘 째였습니다. 마르다는 일어나 예수님을 맞으러 나왔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함께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때라도 예수님께서 구하시면 무엇이든 하나님이 들어주실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후 마르다의 태도를 보면 이것이 진짜 믿음의 고백인지 립 서비스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그런데 그의 말을 타박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어떤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까? 



11: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11:24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오라비의 부활을 막연하게 믿었습니다. 지금 당장 일어나는 기적은 불가능하고,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안다'고까지 표현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이 아니면, 검증해낼 수도 없고 따라서 논쟁도 무의미한, 아무런 힘도 소망도 못 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를 도전하시고, 죽음 권세 아래 신음하는 모든 인생들을 도전하셔서 더욱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부활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그 부활 생명을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살아서 나를 믿는 자', '영원히 죽지 않는 자'란, 아마도 예수님 재림하실 때, 죽음을 겪지 않고 영생을 누릴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11:27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11: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마르다는 일단 보고 배운 예수님께 대한 지식이 있어서인지, 예스 예스 하였습니다. 질문에 더하여,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 분이 하시는 말씀이니, 당연히 믿을 수 있다는 분위기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믿음에 대한 도전이 사뭇 부담스러웠는지 얼른 돌아가서, 예수님이 그러신 적도 없어보이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며 보냈습니다. 



11: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11: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11: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11: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11:33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11:34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11: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11: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마리아도 예수님이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르다와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마리아와 무리들은 부활의 주, 생명의 주 예수님을 코 앞에 두고도, 나사로의 죽음을 인해 슬피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 권세 앞에 절망하는 영혼들을 보시고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나사로를 어디에 두었는지 물으시고, 그의 무덤 앞에 도달하셔서는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유대인들은 나사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자를 죽지 않게끔 지켜줄 수 없었는가 하며 수군대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이적과 기사를 베푸시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이제 인생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적, 죽음 권세를 물리치시고 나사로를 다시 살리는 기적을 베풀고자 하십니다. 

인생들은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들어도, 전능하시고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의 세계를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경험과 지식과 한계치 안에 익숙하고 그 안에 갇혀서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이런 한계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마르다처럼, 예수님을 믿는 믿음도 부족하고, 솔직하게 시인하지도 못하고, 그저 입술로 예스 예스,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길 잘 하는 위선자였습니다. 주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믿음도 없이 의무감과 당위성에 짓눌려 종교의 짐까지 떠 안고 신음하는 저를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로 인도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저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것을 대신 지시고 이미 죄 값을 치르시고 구원의 문을 여신 것을 깨닫게 도와주셨습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값 없이 베푸시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게 도와주셨습니다. 

그 후로 제가 처한 현실 상황과 사람들과의 관계의 문제 속에서 자꾸 제 수준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을 제한하고, 입술 뿐인 신앙고백을 하곤 합니다. 신세 한탄을 하고, 나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푸념할 때가 많습니다. 마르다와 같은 애매한 신앙, 가르침을 받기도 어렵고, 요리 조리 미꾸라지같은 상태로 있어서는 아무 것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오늘 여기 이 자리에서, 살아있는 믿음을 드리고 예수님의 권능을 체험하길 기도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연약한 것을 강하게 하여주시고, 필요한 물질과 지혜와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연약함과 안일과 이기심을 이기고, 오병이어를 드려, 하루 하루, 제가 섬기는 가정과 일터에서, 주와 복음을 위해서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