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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192. 포도원 품꾼의 비유 (마 20:1~16)

by songofkorea 2024. 6. 15.

예수님의 비유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속적 가치관과 전혀 맞지 않는 낭비와 허비와 비효율이 있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99마리 양들을 뒤로 하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아 떠났으며, 탕자의 아버지는 미덥지 못한 아들의 청을 들어주어 결국 둘째가 재산을 탕진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부자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고, 해고 통보 후에 임의로 자기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만행을 저질렀는데도, 자신을 위해 지혜롭게 행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포도원 품꾼들을 고용하는 주인의 행동 또한 손익 계산이 전혀 안 된 듯 보입니다.

예수님은 왜 언뜻 보기에 의구심이 드는 이런 비유들을 계속 말씀하실까요? 이러한 비유들을 통해 무엇을 가르쳐 주고자 하실까요?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비유의 주제는 천국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품꾼을 구하는 목적이 포도원에 들여보내는 것이라니! 이 일을 위해 주인이 이른 아침부터 나가서 사람들을 찾아다니다니!!! 출발부터 뭔가 은혜롭습니다. 

 

20: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 보내고

 

본문에는 각각 품꾼들을 부른 시각이 나오는데, 이른 아침은 인력 시장이 열리는 6시로 보입니다. 그들과 약속된 품삯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20: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20: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

 

제삼시는 오전 9시입니다. 주인은 장터에 놀로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 그들도 포도원에 들여보내주었습니다. 품삯은 약간 모호하지만, '상당하게 considerably' 주겠다고 했습니다. 

 

20: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20: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20: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제육시는 정오를, 제구시는 오후 3시, 제십일시는 오후 5시입니다. 하루 일을 마감해야 할 때가 다 되었는데 그 때에도 품꾼들을 써 주었습니다. 품꾼으로 써 주는 이가 없어 종일토록 놀고 있는 이들을 긍휼히 여겨준 것입니다. 

비유 속에서 포도원에 들어가 일을 하는 것은 전적으로 고용하는 포도원 주인의 선택권에 달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 갑질을 해도 뭐라 하기가 어려운데, 비유의 주인은 오히려 품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것 같습니다. 


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군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20: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20: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날이 저물어 품삯을 줄 때가 왔씁니다. 청지기는 나중 온 자로부터 품삯을 주기 시작했는데,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 정도밖에 일하지 않은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뭘 얼마나 생산성이 있었을까요. 일 좀 익히다가 끝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 품삯을 온전히 주었으니, 이는 무척 큰 은혜였습니다. 이를 보고는 먼저 온 자들은 더 받을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은 것입니다. 


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아침 6시부터 온 종일 일한 사람들은 억울함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에게 불평을 표현했습니다. 한 시간 일한 자들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디고 일한 자신들을 똑같이 대우한 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20: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은 불평하는 일꾼을 '친구여'라고 부드럽고 따뜻한 호칭으로 불렀지만 그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기 때문에 주인은 분명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일찍 온 자들이 속으로야 좀 기대감이 꺼지고 섭섭하다 하더라고 주인에게 원망 불평을 늘어놓을 근거가 없습니다. 조금 일한 자들에게 하루 품삯을 온전히 쳐주는 것은 주인이 그들에게 베푸는 호의요 얼마든지 그럴 권한이 있는 것이요, 또한 늦게 온 품꾼들 입장에서 보면 선한 일, 은혜로운 일입니다. 

주인은 나중 온 자들에게 똑같이 주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고 밝히 말했습니다. 선한 것을 자기 입장에 안 맞다고 악하게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주인의 행보는 품꾼들을 부를 때도 그렇고, 품삯을 줄 때도 그렇고, 불평을 들은 때도, 참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교훈을 주고자 하심일까요?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저녁 나절에나 포도원에 들어간 나중 된 자들과 아침 6시부터 일한 먼저 된 자들, 그들은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결론에는 먼저 됨과 나중 됨이라는 선호 관계, 차이가 발생할까요? 자기 손에 쥔 한 데나리온에 대한 마음, 포도원 주인에 대한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온 자들은 한 데나리온이 마치 공짜로 얻은 선물, 주인의 전적인 은혜로 얻은 돈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온 자들이 바라보는 한 데나리온은 힘들게 노력해서 얻은 돈, 당연히 소유할 돈, 오히려 더 얻을 줄 알았는데, 턱 없이 모자론 돈, 쓰디 쓴 돈이었을 것입니다. 

먼저 온 일꾼들이 알지 못한 것은 포도원 주인은 자기 유익을 위해 품꾼들을 이용한 사람이 아니요, 선한 마음, 자비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품삯을 주기 위해 일할 기회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포함하여 늦게 온 모든 일꾼들이, 주인에게 긍휼과 자비를 얻은 자들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천국은 인생들이 원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근거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믿는 자들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천국 입성케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부터 부르심을 받고 어떤 사람들은 끄트머리에서 겨우 턱걸이를 하여 들어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택함을 받은 은혜가 하도 커서 그런 차이는 먼지처럼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것이 유대인들이요,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찍부터 일하고 애쓴 자기 공로가 커 보이고, 똑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 분하고 억울하고, 주인도 미웠습니다. 그들은 탕자의 비유에서 마치 씁쓸한 마음으로 잔치의 기쁨,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기쁨에 함께 할 수 없는 큰아들과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기쁨의 크기, 평강의 크기를 넘어서는 심각한 점을 암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고 그 문을 통과하여 천국 입성하는 자들은 모두 다 자신이 맨 끄트머리에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 일도 별로 한 것이 없는데 온전한 하루 품삯을 받을 일꾼처럼, 자신의 일한 것에 비해 너무도 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쁨이 넘쳐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일찍부터 일하고 주인에게 유익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이요, 자기의에 가득 차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의 공로를 멸시하는 불신자들의 마인드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의 판단과 하나님의 생각은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사람들의 의가 아무리 볼품 없는 누더기라 하더라도, 사람들끼로 비교하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 영적이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과 악행을 일삼는 죄인들과의 차이가 실로 커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사는 사람의 일생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일생은 너무다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건하고 숭고한 삶이 오히려 구원의 복음을 가리우고 영적으로 나중 된 자로 만들다니... 정말 어렵게 느껴집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열심과 에너지가 없이는 웬만해서는 경건한 삶을 살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고삐를 늦추어도 금새 마음이 퍼지고 안일과 육신의 쾌락과 정욕이 틈탑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종교지도자들의 자기의와 교만과 영적 무지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나의 삶의 잘 살고 못 살고를 쉽게 생각하고 안일함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를 늘 새롭게 알면서도, 사람의 의지와 열심으로 하는 것보다 훨씬 열정있고 힘 있게 주와 복음을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절제가 없고 나 자신과의 약속,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도 잘 지키지 못하는 연약한 저를 다만 긍휼히 여겨 주시고, 남은 생을 주와 복음을 위해, 깨어 있게 하시고, 열정을 바치게 하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늘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생생한 감사와 감격 속에 주님을 찬양하는 마음 갖게 하시고, 이웃과 이 사회에 복음을 밝히 드러내게 도와주십시오. 저의 교만함, 저의 연약함 때문에 복음 진리를 가리고 훼방하는 자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