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죄인들을 멸시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향하여 계속하여 가르치시고 깨우쳐 주려 애쓰셨습니다. 물론 자기의와 세상적인 가치관은 우리 모두가 동일하게 가진 것, 진리의 말씀 앞에 깨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앞서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해고 통보를 받은 후 주인과 상의도 없이 채무자들의 빚을 줄여주며 허위 장부를 만들고 실직된 이후 살 방도를 마련한 것에 대해 '지혜롭다' 칭찬받았다 하시며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불의한 청지기처럼 하나님께 받은 생명을 허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갉아먹는 자들, 심판 받아야 마땅한 자들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불의의 삯을 대신 치러주시고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우리는 염치없지만 그 공로를 힘 입어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구원의 소식, 하나님께서 완성하시고 보증하시는 복음을 들었습니다.
복음에 대해 어떤 반응들이 나타납니까? 슬기 있는 자들은 이 복된 소식을 넙죽 받아들이고 구원의 문, 천국 문을 통과하여 영생 복락을 누립니다. 이들은 인생의 해고 선언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령께서 그 죄의 무게를 보게 하시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구주로 보여주신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은 남은 인생을 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통한 죄사함과 구원의 소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합니다. 동료 죄인들의 죄과를 보지 않고, 그들이 살 수 있는 방도, 인생 끝장날 위기에 처한 자들이 붙들 수 있는 예수님을 소개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나 자칭 빛의 아들들이라 믿던 종교지도자들은 살고 죽는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고 미련하게 행합니다. 자기의로 꽉 차서 다른 죄인들을 멸시하고, 죄인들을 가까이 하시고 영접해 주시는 예수님까지 비난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임을 깨닫지 못하기에 동료의 일백 데나리온 빚진 것을 용서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몰염치하고 부도덕한 불의한 청지기보다도 더욱 큰 죄, 교만의 죄를 범,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놓고 죄인인 세리, 창기들, 즉, 그들이 어두움이라 멸시하던 죄인들보다도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 무지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일반화하여 불의함과 불충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신 예수님은 이번에는불의함과 대조되는 '충성'에 대해, 특히 충성할 대상을 비교하여 말씀하십니다.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6: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6: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어서 이 땅에서의 청지기의 노후와 대비하여 '영원한 처소'를 언급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해 아래 세상과 하늘나라 영원한 나라를 대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불의한 재물', '남의 것'은 아마도 하늘 아래에서의 삶, 실낙원한 이 땅에서의 가치들일 것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큰 것', '참된 재물', '우리 자신의 것'은 주님께서 구원얻은 백성들을 위해 예비하신 하늘나라의 영원한 기업과 상급, 다스릴 나라 아닌가 싶습니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러면 무엇에 충성해야 합니까? 가장 큰 충성의 대상, 참되고 영원한 존재, 우리의 상급, 우리의 분깃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길 수 없도록 하는 가장 위험한 것을 대조해 주십니다.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을 주인을 섬기는 하인에 비유하십니다. 섬기는 자의 마음은 하나 뿐입니다.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재물은 <하나님 마이너스(-) 그 어떤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들 중 대부분을 해결할 수 있을 듯한 마법의 열쇠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심지어 충성과 애정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물은 요정 램프 지니처럼, 가장 중요한 과제, 즉, 나의 죄악된 본성을 변화시키는 데는 무력합니다.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떤 재물로도, 나의 그 어떤 거짓된 아첨과 연기로도 속일 수 없는 분, 나의 마음 중심을 꿰뚫어보시고, 나의 마음과 씨름하시고 나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분이십니다. 죄인들의 존재 자체를 변화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잠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인격 대 인격으로 나를 향하신 그 마음, 그 거룩하신 뜻을 쏙 빼고, 신적인 능력만 빌려 쓰고, 효용성만 극대화하고 싶은 것, 그것이 우상이요, 우상 중에 우상은 현대 사회의 재물입니다.
16: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바리새인들은 얼핏 보면 굉장히 영적인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 기자는 그들이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직설적으로 고발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자기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것과 싸우고 계십니다. 문맥을 고려해보면 바리새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요, 재물로 대표되는 세속적인 가치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영원한 본향이냐, 잠깐 살다 죽을 이 땅이냐 사이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2천년이 지난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상은 재물을 사랑하고 매우 세속적인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초대 교회처럼 예수님 믿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어서, 오히려 더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어려워진 측면이 있지요. 우리는 그럴듯한 종교의 옷을 입고 얼마든지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구하고 이 땅에서 호위호식하며 위선을 떨 수 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일입니다.
16:1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자기도 속도 남도 속이는 이런 종교적 위선이 왜 일어납니까? '사람 앞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높임받는 것에 만족하고, 진짜로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 앞에서 살았고, 스스로 옳다 하는 헛된 자부심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은 우리 속 마음을 다 들여다볼 수 없고 속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속 사람의 실체를 훤히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속임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마음은 죄로 그득 그득한데 겉으로만 의로운 척 위선을 떨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것은, 반대로 보면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경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 받는 것과 동일합니다.
16:16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The Law and the Prophets were proclaimed until John. Since that time, the gospel of the kingdom of God is being preached, and everyone is forcing his way into it.
16:17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율법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작은 것에도 충성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 율법이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죄를 고발하고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인정하고 은혜의 복음 앞에 나아오도록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 앞에서' 시늉만 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작은 것, 모형과 그림자에도 불충했기에 큰 것, 실체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하였고, 율법이 죄인으로 고발하고 그리하여 필연적으로 인도하는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순교한 후 본격적인 복음의 시대, 예수님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마다 그리로 침임해 들어갔습니다. 전에 율법으로 볼 때 부정한 자요, 이방인이요, 신체 중요 부위가 상한 자들, 여호와의 총회에 들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 전혀 다른 문, 활짝 열린 완전한 구원의 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로 침노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율법을 폐하여지지 않습니다. 율법대로 살려고 애쓰고 노력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죄인된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하여 복음이라는 열린 문에 눈을 뜨고 기뻐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영적인 눈을 열어주셔서, 예수님 십자가가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해 주시고, 죄사함 받고 천국에 입성하게 해 주십니다.
저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를 부르시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만난 후 비로소 자발적이고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을 깨달은 그 날 이후 내내 복음 복음 하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소원이 큽니다. 그런데 선물처럼 받은 구원의 진리로 믿음이 약한 사람들,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사람들에게 거칠게 조바심을 내고 가르치려 들고 비판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내가 간증을 하고 말씀을 들려줄 때 상대방이 내게 좋은 영향을 받아 깨닫는가, 변화되는가에 신경 쓰며, 나의 이름, 나의 명예, 사람들의 눈의 자꾸 의식됩니다. 내가 왜 그럴까, 가만히 제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귀한 복음 진리로 저를 치장하고, 제 자신이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원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예수님을 등에 업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나귀새끼처럼, 나의 구주 예수님께 눈을 맞추지 않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우쭐한 자임을 고백하오니 불쌍히 여겨주시고 용서하여 주십시오. 제가 예수님의 은혜를 알고 누린 만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마저 이용하여 제가 칭찬과 세속적인 상급을 받고자 했던 죄악이 큰 것을 깨닫습니다. 뼛속 깊이 자기를 사랑하고 세상 인정에 목마르고 우상을 섬기는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의 영혼을 주장하여 주시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 나의 예수님께 순수한 사랑을 드리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복음으로 영혼들을 도울 때에도, 남 몰래 골방에서 중보기도하고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주님의 일하심을 구하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절대로 영적인 일로라도 남의 면전에서 비판하고 비난하며 잘난 체하지 않도록, 제 입에 제갈을 물려주십시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겸비히고 경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사람의 인정과 칭찬, 세상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지켜 주십시오. 승리하신 나의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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