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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189-1. 불의한 청지기 비유 (눅 16:1~9)

by songofkorea 2024. 6. 5.

앞서 누가복음 15장에는 유명한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향해 그 비유를 말씀해 주셨을까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들으로 가까이 오는 것과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시고 음식을 같이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는, 하나님 편이 아니다, 어찌 저럴 수 있는가 하며 비판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예수님은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두 아들 중 하나를 잃은 주인의 비유를 들어,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의 천국의 기쁨, 또한 의인을 불러 상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사역 목적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은 제자들에게,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무엇을 가르쳐주고자 하실까요?

 

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6: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어떤 부유한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청지기가 있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사실 관계를 확인해보니 그의 부정한 배임, 횡령 등 많은 비리가 드러났습니다. 주인은 그를 청지기 직위를 박탈할 것이니, 곧 업무를 마무리하라고 해고 통보했습니다. 

 

16: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청지기는 자신을 믿고 맡기는 주인 덕에 딴 주머니를 많이 찰 수 있었는데, 그런 상황이 계속될 줄로 알았는지,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축 좀 해둘 걸... 명품 시계, 비싼 차는 좀 사지 말 걸... 후회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는 앞으로 먹고 살 일이 막막해졌습니다. 그는 자기 잘못은 생각도 안 하고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는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렇게 염치 없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지만 적어도 솔직한 면이 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 자기가 피하고 싶고 싫어하는 것을 고백했습니다. 변명하거나 자존심을 부리지 않았고, 분에 넘치게 과오를 다 시정하리라, 손해 입힌 것을 다 배상하리라 약속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꾀를 내었습니다. 해고를 당했지만, 업무 정리를 하는 그 작은 틈을 노려 할 수 있는 것을 도모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누렸던 청지기직, 이제는 내려놓아야 하는 그 지위를 최대한 이용하여 또 자기 살 방도를 찾았습니다.  

 

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16: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16: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그는 채무자들을 일일이 불러서 '우리끼리만 아는 비밀이다!' 입단속을 해 가며, 서둘러 기름 백 말은 오십으로, 밀 백석은 팔십으로, 장부를 조작하며 채무자들의 빚을 일부 탕감해준 것입니다. 채무자들 입장에서 볼 때, 20%~50% 원금 삭감이면 얼마나 파격적인 혜택입니까? 불의한 청지기가 이렇게 남들에게 호의를 베푼 목적은 오직 하나, 직업을 잃은 후, 자기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 자신을 자기 집으로 영접해주고 먹고 살도록 도와줄 것이라 계산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비밀 없다고, 워낙 서둘러서 여러 사람 그렇게 해서 그런지, 주인은 이 청지기의 배임 횡령 사문서 조작 등의 만행을 알고 말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주인은 이 불의한 청지기에게 피해를 배상해내게 하거나, 안 되면 감옥에 쳐넣어 보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해고로 곱게 보내주려는데 그 틈을 노려 끝까지 주인을 능욕하다니... 이제 경을 칠 일입니다. 정말 뻔뻔하고 염치없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주인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16:8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예수님은 비유의 청지기가 분명 '옳지 않다'고 평하셨습니다. 청지기는 상식적으로 볼 때, 죄에 죄를 더한 것입니다. 또 월권을 행하고, 주인의 돈을 오용하고 손해를 끼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비유 속의 주인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여기서 지혜롭다는 것은 그 세대의 아들들, 불의한 시대를 사는 어두움의 아들들을 지칭할 것입니다. 불의의 사람들이 불의한 자기 시대에 한하여 볼 때,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주인에 대해 '부자'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얼마나 부자인지, 일꾼이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서는 전혀 게으치 않는 듯 보입니다. 그냥 그 일꾼 입장에서 생각하고, 일꾼이 위기의 때에 자기 자신에게 유리하게 행동하여 사후를 잘 대비했다는 점만 언급합니다. 이해타산이 평가의 기준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입니다. 

앞선 탕자의 비유에서, 시퍼렇게 눈 뜨고 살아있는데도 유산을 요구하는 작은아들에게 재산을 뚝 떼어주고 그가 철 없이 탕진하도록 허락하는 아버지가 나옵니다. 아버지는 재산 따위는, 적어도 아들을 위해서는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원하는 대로 다 해보고 쫄딱 망해봐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돌이킬 것을 알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기에 그 재산을 기꺼이 내어주고, 허비하고 아들만을 기다렸습니다. 재산을 손해보며 아버지는 비로소 잃어버렸던 아들의 마음을 얻어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처럼 이 주인도 돈에는 부족함도 없고 아까운 마음도 없습니다. 오직 청지기의 안위, 그의 행복 측면에서만 보았습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가 훗날 주인이 자기가 저지른 일을 다 알았었다는 것과, 그런 평을 했다는 것을 들었을 때, 그가 무엇을 느꼈을까요?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하며, 자신이 섬기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자신을 향한 주인의 마음이 얼마나 관대하고 너그럽고 희생적인 것인지 느끼지 않았을까요?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선악과 금기 명령을 주시고 구원을 위해 독생자의 성육신과 고난과 죽음까지도 아낌 없이 투입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최대 관심사, 즉, 인생들의 마음 얻어내기 프로젝트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오늘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 역시, 가장 값진 생명이라는 선물, 삶이라는 선물을 주시고, 불의하게 멋대로 써버리는 죄인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과 축복의 마음을 가늠하게 해줍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은 둘째 아들과 불의한 청지기로 표현되는 죄인들을, '빛의 아들들'은 종교지도자들처럼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고 죄인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점에서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자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습니까? 

16:8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The master commended the dishonest manager because he had acted shrewdly. For the sons of this age are more shrewd in dealing with their own kind than are the sons of light., ESV)  

여기서 '지혜'라는 단어는 shrewdness로, 영민하고 기민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자기에게 유리한 판단과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에서 '슬기롭다'라는 표현에 많이 쓰이는 단어입니다. 나쁜 문맥에서는 약삭빠르고 교활한 꾀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에 딱 어울리는, 뭔가 옳지는 않은데 본인을 위해서는 처신을 잘 한 경우에 해당하지요. 정의의 측면에서 본다면 분노를 일으키는 행동이요, 염치도 없고 뻔뻔하고 얍삽한 행동입니다. 불의한 행동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동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니, 무슨 뜻일까요?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기의에 빠져 있는 종교지도자들과 씨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오늘날도, 자기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 그래도 좀 괜찮은 죄인, 노력하는 중에 있는, 파란 새싹이라 여기는 자들과 씨름하십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율법을 알고,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고, 이해타산보다 양심을 떳떳하게 지키고 싶고, 하나님 앞에 '나 잘했지요~', '저 좀 칭찬해주세요~', '하나님은 저를 좀 알아주세요~'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세리와 창녀처럼 막되먹은 인생들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의로 열심히 하나님의 의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거절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은덕을 입는 죄인들을 손가락질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존심과 자긍심과 자기 인정을 위해 씨름하고 남들을 죄인이라 손가락질하다가 인생이 거덜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비교에서도 그렇고, 누가복음 18장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이후 하나님의 평가도 그렇고, 더 성경에서 비교 우위는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받아주시고 용납하시는가, 누구를 더 의롭다고 인정해주시는가 하는 힌트를 줍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By faith Abel offered God a better sacrifice than Cain did. By faith he was commended as righteous when God gave approval to his gifts. And by faith he still speaks, even though he is dead. )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 I tell you, this man, rather than the Pharisee, went home justified. For everyone who exalts himself will be humbled, but the one who humbles himself will be exalted.)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자유의지도 병들고 선을 행할 마음도 능력도 없는 인생들에게, 하나님의 평가는 필연적으로 상대 평가요, 패자부활전을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기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인정해주시는 '그래도 너는 너의 불의를 알고 나의 은혜를아는구나, 네가 저 자기의로 꽉 차서 자기 잘났다 주장하는 자들보다 더 낫다, 나는 너를 기쁘게 환영하고 복 주리라' 하시는 의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자기의를 주장할 것이 없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을 더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칭찬해 주십니다. '내 죄에 대한 대가는 내가 치러야 해, 뻔뻔하게 어떻게 남한테 전가해?' 하는 자들보다, 염치 없고 부끄럽지만 그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자들이 영원한 처소를 얻습니다. 

 

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종교 지도자들을 비롯하여, 자꾸만 자기의를 쌓으려는 본성을 지닌 우리가 이 불의한 청지기의 처신에서 배운자면, 먼저 우리는 우리의 불의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해고 당해도 싸고, 빌어먹거나 땅을 파야 할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몽땅 잃기 전에, 조금이라도 틈이 있고 기회가 있을 때, 목숨이 붙어 있고, 평화의 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때를 사는 동안, 동료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재물과 재능과 시간과 에너지, 마음을 써서 다른 사람의 빚진 것을 감해주고, 예수님의 용서를 알도록 돕고,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는 peace maker가 되어야 합니다. 한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예수님 덕분에 죄 사함을 누리므로, 다른 죄인들에게도 이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그들의 죄악과 영적인 무지를 참아주어야 하고, 때로 주인이 그러했듯, 손해를 감수하고, 그 영혼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이 땅의 불의의 재물을 써서 사람의 마음을 얻고 그 영혼을 얻을 때, 전도한 동료 죄인들로부터 영원한 처소에서 기쁘게 환대받을 것입니다. 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높이며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 짐을 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저를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로 인도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불의한 청지기처럼, 염치 없고 뻔뻔하게도 예수님의 공로와 은덕을 힘 입어 자격 없는 자가 천국을 침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뼛속 깊이 바리새과 같아서 자기의를 놓지 않으려 하고 사람 앞에서 행하는 자, 나 자신의 부족함을 모른 채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잘 하는 어리석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거저 주신 제 2의 인생을 살고 한계 많은 이 땅의 불의한 재물을 누리고 사는 동안, 죄로 병든 인생들에게 예수님의 용서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생각과 지식과 사상과 감정과 가치관이 철저히 복음적인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저의 생명, 지식, 돈, 시간, 에너지, 지혜, 열정 등 모든 것을 누리는 동안, 나와 모든 인생들의 주인 되신 하나님 앞에 이웃의 허물을 덮어주고 긍휼히 여기고 용서하는 자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 있고 슬기로운 자, 지혜있는 자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