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오늘 본문을 통해, 혼인 잔치에서 있을 법한 상황을 비유로 하여, 자신을 낮추는 자세, 겸손한에 대해 가르쳐 주십니다.
14: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보시고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14: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14:9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14: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혼인 예식이나 잔치 자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합니다. 내가 잔치의 주인과 아무리 가까워도, 그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하여 볼 때 가족에, 일가친척 관계, 직장 관계 등, 내가 미처 모르는 수많은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레 짐작으로 상석에 앉았다가는 민망한 상황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일 때는 당연히 나보다 우선순위 높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상석에 앉을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만약 주인이 나를 존중하고 대우해줄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조용히 말석에 앉아 있을지라도 불러내어 상석에 앉힐 것입니다. 나는 스스로 높다고 생각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높여주는 것, 그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14: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예수님은 이런 상황이 뭇 사람에게, 여러 상황에서 참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릇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말석으로 몰려 부끄러움을 당하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입니다.
요사이 저의 중요한 기도 제목은 교만해지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제 마음을 지켜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조금만 꼬투리가 있어도 저절로 교만해지고, 자기를 높이고, 분수에 지나치도록 자신이 뭐나 되는 양 차각하게 됩니다. 또한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저의 주위를 흐트리고 끌어가는 것이 사람의 눈, 사람의 인정, 사람 앞에서의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교만을 경계하고 멀리하고, 파수꾼을 세워 제 마음을 지키며, 수시로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려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 앞에서 살고자 굳게 결단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이 말씀 앞에 아멘으로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기 PR도 중요하고, 마냥 겸손을 떠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하며 비판받기도 합니다. 자기를 낮추었는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자처럼 취급받아서, 자존감도 높지 않은 자로서 상처받고 서글퍼지고 쓴 뿌리까지 품게 될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자신을 낮추고 말석에 가 앉고, 누군가가 높여주기 전에는 스스로 자랑하지 않도록 겸손을 힘써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너무나 뿌리 깊고도 간절한 욕망, 사람의 인정과 칭찬과 자기 영광을 구하는 마음을 아예 도끼로 찍어내고 포기를 해야 합니다.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세상 영광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고, 오직 하나님 눈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칭찬과 인정만이 진짜라는 것을 아는 것이 보여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면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이 보이고, 용납하시고 용서하시고 귀히 여겨주시는 하나님 은혜만이 커질 것입니다.
저의 기도가 '교만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하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부정형 기도를 넘어서서,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해주세요' 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고, 저같은 미련하고 뻣뻣하고 고집센 자를 위하여 온유와 겸손으로 감당해주시고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힘으로 벗어버릴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뿌리깊은 교만과 허영에서 벗어나, 우리의 겸손하신 주, 겸손의 모델이신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4:12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14:13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14:14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또한 누구를 대접하고 섬겨줄 것인지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니다. 핵심은 이해관계도 없고, 반대급부로 보상을 받을 수도 없는 자들을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벗이나 형제나 친척은 평소 친분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챙겨주어야 할 자들입니다. 부한 이웃에게 대접하면 되로 주고 말로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우연히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줬는데 알고보니 재벌이더라 카는 스토리가 얼마나 흡족합니까? 나도 뭔가 선을 베풀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더 큰 선물을 받고 보상을 받는다면... 하며 즐거운 상상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가난한 자, 몸이 불편한 자들, 다리가 불편한 자들, 눈 먼 자들을 잔치 자리, 식사 자리에 초대하여 먹이라 하십니다. 그들은 갚을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반대급부로 뭔가 요행을 기대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자기를 낮추라 하시는 말씀처럼, 이 또한 우리의 본성과 너무나 반대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 말씀을 순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가장 부요하신 하나님께서 갚아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시기가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의인들의 부활 시에 갚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식사 자리에 함께 있던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영감을 받아 말했습니다.
14:15 함께 먹는 사람 중에 하나가 이 말을 듣고 이르되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 하니
하나님의 나라, 그 나라의 잔치 자리에 참여한다는 것, 그것은 가장 복된 일일 것입니다.
우리는 끈덕지게 이 땅의 부귀 영화, 육신의 안녕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의 눈은 다르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해 아래, 이 땅을 인생들의 훈련의 장, 시험의 장, 가르침의 무대로 셋팅해 두셨습니다.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주시고, 선악 간에 보상해 주시고, 우리의 눈물과 인내와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시고 상 주시는 곳은 이 땅이 아닙니다. 시험이 모두 끝난 후, 수업 종료 종이 울리고 나서입니다. 그래야 그 훈련과 시험이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사람과 하나님의 관점 차이, 바라는 것의 간격이 있고, 믿음의 세계에 대한 진입 장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Already but Not Yet!
이 땅은 본향이 아니며, 완전함이 허락되지 않은 곳입니다. 그 때문에 믿고 거듭난 자도 연약함에 쌓여 있고, 결코 완전하지 않습니다. 불완전하고 불만족스러운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또한 그들의 삶을 지켜보는 불신자들도, 그런 애매한 가운데 하나님을 택하는가, 모호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찾는가 테스트 받습니다. 너무 좋고 완벽하고, 믿음도 필요 없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증명된 것들이라면, 너도 나도 다 좋다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품질 관리를 하십니다.
욥기에서 사탄은 욥이 하나님께 받는 이러 저러한 축복들을 빼앗기면 더 이상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섬기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욥이라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예로 들어, 반대급부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내시고 보여주시고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욥은 세상 모든 것보다 하나님 자체만을 추구하는 자들의 대표요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수는 없었겠으나, 그 극심한 시험과 공격과 비난과 하나님의 침묵의 터널을 통과케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그렇게 빚어내셨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해 위의 세계, 놀라운 하나님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죄인들이 용납되고, 자격 없는 자들이 자녀의 지위를 회복받고,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얻고,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의 존전에 설 수 있는 은혜의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죄도 눈물도 아픔도 사망도 거짓도 없는 완전한 세계를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한계적이고 부족한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의 완전함과 무한함을, 하루 한 잔씩이라도, 한 숟갈씩이라도 허락해 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이 블로그 이름을 '날마다 천국 한 잔, a cup of heaven'이라 지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근본적으로 이 땅에 시험장이요, 진정한 상급과 보상은 나중에 기약된 것임을 기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잘 아시고 필요를 잘 아시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으시고 품질 관리를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그 옳으심과 완전하심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따라 믿음의 경주를 해야겠습니다. 제가 교만과 사람의 인정, 세상의 부귀 영화를 구하는 마음을 찍어내버리고, 하나님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 살기를 기도합니다. 장차 이를 본향에서 하나님께서 주실 상급과 평강과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기를 간절기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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