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율법사의 질문,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느냐는 질문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의 질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라 대답하시는지 귀 기울여 들어야겠습니다.
10:25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율법사는 예수님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했습니다. 자기 지식과 생각에 비추어 과연 하나님의 종인지, 얼마나 영적인 진리를 아는지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오히려 율법에 대한 그의 이해, 즉 구약 성경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가 되물으셨습니다.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율법사의 대답은 기막힌 정답이었습니다. 신명기의 쉐마와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두 번째 핵심을 모두 말하였습니다.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 22:37~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의 대답이 옳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음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율법사의 질문은 영생을 얻는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완성한다면 모두들 열두 번은 죽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큼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 세상의 문제는 얼마간은 해결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부자들은 과잉섭취로 인해 살 빼는 데 돈을 쏟아붓고, 가난한 자들은 굶어죽고 약도 못 써보고 죽어가는 일들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계명들을 순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계명은 너무도 수준이 높고, 우리는 믿음이 부족하고 이기적이어서, 아마도 평생토록 노력을 기울이고 완주해야 할 과제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생의 끝에서도 '아, 주님, 제가 너무 부족하네요. 주의 계명을 순종해내지 못한 이 죄인을 용서해 주옵소서.' 하며 탄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0:29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율법사는 정직하게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떻게 해야 순종할 힘이 생길까 여쭙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옳게 보이려고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하나님 사랑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이 되고, 최선을 다해 노력을 경주하리라 하며 정신승리를 갈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웃 사랑에 대해서는 도저히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더 나아가 율법 자체가 너무 무리 아닌가, 부당한 것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율법이 말하는 이웃의 범위에 대해 여쭙는 것입니다.
율법사의 반응과 질문이 사뭇 이해가 됩니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실은 마음 뿐이요, 주관적인 착각일 뿐, 실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이웃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부모 형제도, 심지어 배우자도, 자식도, 나 자신을 위하는 만큼 위해주기 어렵습니다.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 한계 안에 갇혀있는 존재, 자기를 먼저 챙겨야 살 것 같은 존재들입니다.
예수님도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을 이웃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강도 만난 사람을 지나치지 않고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도와 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십니다.
10:3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물건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어가는 채로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 영혼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마음껏 유린하고 해치는 자들, 인생 살다보면 사기꾼과 폭력배 등, 이런 무도한 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10: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10: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그런데 마침 그 길로 지나가던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보고는 피하여 지나가버렸습니다.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외면하고 자기만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부정한 자를 만지지 않겠다는 판단이든 지역 감정이든, 그들은 인간에게 심어주신 긍휼과 자비의 마음을 저버렸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면 하나님의 법도를 알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평소 신앙생활과 가르침이 얼마나 허무한 겉껍데기 위선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10:33 어떤 사마리아 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10: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10:35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 인은 다르게 행동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나 거반 죽어가게 되는 사람을 보고는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지나치지 않고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응급 처치하고,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로 가 돌보아 주었습니다. 급한 일이 있는지 갈 길을 서두르면서도 두 데나리온, 이틀치 품삯에 해당하는 돈을 주며 돌보아 주도록 하였고 비용이 더 발생하면 돌아올 때에 갚겠다 하였습니다. 그의 목적은 자기에게 얼마나 손해가 나느냐가 아니라 강도 만난 자가 무사히 회복되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자의 안위를 자신의 것처럼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강도 만난 자를 위해준 것입니다.
10:36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10:37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율법사는 '누가 내 이웃입니까?'를 여쭈었지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율법사는 평소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에 대해 언급하기도 껄끄러운지 '자비를 베푼 자'라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강도 만난 자,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할 수 있는 대로 자비를 베풀라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로 남을 가르치기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죄인들을 위해, 인생의 강도만난 자들을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셨습니다. 아니, 우주를 다 보탠 것보다 더 큰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바로 창조주의 생명을 희생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런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세상과 다른 삶, 죄악된 본성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물론 계명을 지켜내기엔 턱 없이 부족합니다. 평생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생 얻는 조건이 되거나 잃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구원과 영생은 다만 믿는 자에게 값없이 베푸신 자비의 선물입니다. 믿는 자들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여,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고, 주님의 마음을 배우려 하고, 주님이 하신 일을 본받으려 애쓸 뿐입니다.
주님, 저에게 선한 이웃이 되어 주셔서 자비를 베풀어 주신 주님, 죄와 사망 권세에 짓눌려 신음하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지나쳐 버리거나 외면하지 않으신 예수님의 은혜를 감사 찬송합니다.
예수님은 저의 죄 짐, 인생의 짐을 가져갔습니다. 저의 수치와 슬픔과 애통을 가져가시고 기쁨의 화관,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저의 가난함과 질고와 고통을 가져가시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이 되셔서 저와 죄인들이 겪을 모든 고통을 체휼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용서와 용납과 회복을 주시기 위해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시고 절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죄와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치료의 광선을 발하여 주셨기에, 인생의 강도만난 자처럼, 죽어가던 제 영혼이 살아나고 빛을 보고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늘나라 산 소망을 가지게 되었고 참되신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을 아는, 진리 안에서 사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 복음의 능력이 희미한 이 시대에 제가 복음의 능력을 덧입고 살아내는 자,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율법을 아는 것만으로 소용 없음을 인정합니다. 또 제 힘으로 지켜 행할 수 없음도 압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주시고 영생을 주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이 감사와 기쁨으로, 이미 얻은 영생을 살아내고 발현하는 예수님의 제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오늘 하루, 제게 붙여주시는 자들에게 사랑으로 진실되이 대하게 도와주시고, 제가 도와야 할 강도 만난 자, 죽어가는 영혼에게 힘을 다하여 돕게 도와주십시오. 죽어가던 영혼, 영원히 멸망에 처할 수밖에 없던 이 죄인을 구원하신 선하신 사랑의 주님, 나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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