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예수님은 많은 권능과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거부하던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과 같은 고을 사람들을 보시며 그들이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 소돔보다 더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신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에 대해 누군가는 믿음으로 영접하고 누군가는 그렇게 증거를 보고도 거절하는 것에 대해, 세상에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라보고, 어린아이들이 알아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오직 성자 예수님께서 계시해주시는 자들이 영적 진리에 눈을 뜨고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의지와 반하여 사람들을 믿는 자와 불신하는 자로 강압적으로 조작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내게로 오라' 부르십니다. 누구를 부르십니까? 무엇을 주고자 하십니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복음의 문은 유대인이나 이방인,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시요, 생명이시요, 생명의 공급자이십니다. 이 우주를 폐하시고 얼마든지 더 고등한 존재, 강하고 아름답고... 하여간 우리가 생각하기에 훨씬 더 멋진 피조물을 언제든지 만들어내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 창조의 주인께서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인간과 같은 육체를 입으신 것, 완전히 사람이 되셔서 사람의 한계와 약함에 스스로 갇히신 것, 사람이 겪는 피로와 고통과 절망의 무게들을 다 체험하시고 인간을 이해하시는 거, 더 나아가 죽음을 경험하시고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신 것은 우리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사랑이요, 희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은 세상 모든 죄인들의 죄과를 남김 없이 가져가시고 깨끗이 씻으시고도 남습니다. 너무나도 큰 값을 지불하셨는데, 예수님이 무엇을 아끼고, 누구를 막으시겠습니까?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예수님은 특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십니다. 죄의 짐, 인생의 짐, 종교의 짐에 억눌린 영혼들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피로와 절망을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짐을 가져가셨습니다. 그 짐을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형벌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죄 값을 치르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어깨에서 짐이 떨어져나갈 수 있습니다. 평생 짊어진 그 무거운 짐에서 풀려나고 자유를 누리는 자들의 기쁨이 얼마나 클까요.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죄짐에서 풀려나 자유로와진 사람은 이제 자기 유익과 만족을 위해 마음대로 살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는 참된 쉼이 없습니다. 아직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며, 이루어야 할 성장 과제가 있습니다.
롬 14:7-9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은혜를 덧입고 새 생명을 얻은 자들은 이제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사는 존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마음껏 써먹으려 하실까요? 아닙니다. 우리 존재를 주님을 닮은 존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존재로 빚어내고자 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께로 와서 예수님께서 메어주시는 멍에를 메고 예수님께 배우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은 후에도 우리에겐 여전히 삶의 짐이 남아 있습니다.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종교의 짐이 아니라 진정한 사명의 십자가를 메게 됩니다. 이 또한 우리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며 예수님의 제자요 사명인으로 살고자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지쳐 쓰러져 있던 저를 불러 주시고 자유와 새 생명과 구원과 영원한 하늘나라 기업을 허락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합니다. 제가 구원 이후의 삶의 향방을 분명히 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저 자신만을 위하여 안일한 삶을 추구하지 않고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주와 복음을 위해 살게 도와주십시오. 주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진리 안에 사는 삶이요, 제가 어디서 구원받았는지, 그 효력을 유지하는 삶이요, 지혜롭고 행복한 삶인 것을 압니다. 주님께서 저를 그런 자로 재창조 해주시고, 하나님 백성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뺀질거리지 않고, 딴 마음 먹지 않고, 세상의 이기주의와 정욕적인 목소리에 팔랑귀 되지 않고, 오직 나의 구주 예수님을 좇아 주님을 배우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5월 마지막 한 주 동안 마무리와 준비 작업을 잘 하고, 오롯이 주와 복음을 위한 삶으로 전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믿음으로 행하고, 도우시는 주님, 앞서 가시는 주님을 경험케 도와주십시오. 저의 인간적인 욕심과 염려와 어리석은 고집으로 짐 보따리 보따리 부여잡은 것들 잘 정리하고, 말씀하신 대로 쉽고 가벼운, 주님께서 주시는 멍에만 멜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나의 구원자, 저의 스승, 저의 네비게이션 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복음서] 182. 좋은 편을 택한 마리아 (눅 10:38~42) (0) | 2024.05.28 |
---|---|
[사복음서] 181.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 (눅 10:25~37) (0) | 2024.05.27 |
[사복음서] 179. 계시에 대한 감사 (마 11:25~27, 눅 10:21~24) (0) | 2024.05.24 |
[사복음서] 178. 돌아온 70인 (눅 10:17~20) (0) | 2024.05.22 |
[사복음서] 177.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을 책망하심 (마 11:20~24, 눅 10:1~16) (0) | 2024.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