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등장하여 파란을 일으키더니, 이제는 나세렛 목수 출신의 청년이 또 언변 따위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놀라운 능력과 기적을 행하고 무리들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잔뜩 경계심을 가지고 예의주시하다가, 드디어 작정을 하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마 16: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마가복음 기록에 '힐난했다'는 표현을 보면 그들은 정말 뭔가가 궁금해서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애초부터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을 가르치는 권한이 있느냐, 기적을 베푸는 그 힘의 원천이 무엇이냐, 하나님 편 맞느냐 아니냐 따졌을 것입니다. 원래 이런 논쟁은 설득도 어렵고 제 3자가 봐도 판가름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구나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나와야 매듭이 지어질까 말까 합니다.
막 8: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말로 명확히 판가름이 나지 않자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신 표적, 즉,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종인지 증명하는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막 8: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그 세대가 표적을 구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이미 얼마나 많은 표적들을 행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들이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는 식의 표적은 주지 않고자 하셨습니다.
막 8: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그들이 작정하고 와서 공격하는 만큼, 예수님도 표적을 보여주지 않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 아닙니까? 그렇게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이 작정하고 달려들어 힐문하고 요구하는데, 옛다 표적~ 하며 짜자잔~ 능력 한 번 보여주시면 간단하지 않을까요?
마태복음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그들이 잘못된 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16: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마 16: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그들은 하늘 빛깔을 살피며 날씨는 예측할 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이 붉고 흐리면 그 날 날이 궂겠다 하였습니다. 구름이 서에서 일어나면 소나기가 올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런데,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하지 못하니, 이 무슨 모순입니까?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 '외식하는 자들', 즉, 위선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정말로 볼 수 없었다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비판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실은 보이는 것, 알 만한 것을 애써 외면하고 부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예루살렘 공회원인 니고데모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서 온 분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적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불가능한 일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는 종교지도자 중 하나였지만, 객관적으로 예수님을 평가할 수 있는 눈과 판단력을 지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가 가진 지위와 명예와 기득권보다, 심지어 사방팔방 그를 둘러싼 동료들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은 곳의 동기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종을 존중하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이 하나님인 자들은, 넘어지고 엎어지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더라도 흔들리며 절뚝거리더라도 하나님께로 나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셔서 구원자 예수님 앞에 세워주시고 그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셔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로 알아보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마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하나님과의 공유한 역사가 있고, 말씀을 맡은 이스라엘조차도 약속된 메시아가 오시고 그 모든 예언들을 성취해나가시며 사인을 보여주시는데도 표적 타령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고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요나의 표적은 무엇일까요?
요나는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체념하고 바닷물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큰 물고기에게 삼켜지고 사흘 만에 죽다 살아났습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원수 니느웨를 향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기 싫어했던 고집스러운 선지자 요나는 죽음에 직면하여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의 마음이 어떻게 변했습니까?
욘 2:2~6 ...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그는 죽음을 각오했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깊음 속,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면 거기에는 요나가 각오한 죽음, 그 이상의 것, 악인들의 처소, 불과 유황이 부어지는 곳, 영원한 심판의 처소가 있습니다.
욥 38:16,17 네가 바다 근원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밑으로 걸어 다녔었느냐 / 사망의 문이 네게 나타났었느냐 사망의 그늘진 문을 네가 보았었느냐
존재가 소멸되고 영원한 잠만 잔다면, 죽음이 이렇게까지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큰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조차도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으나, 첫째 사명 뒤에는 가공할만한 사후 세계, 지옥이 있습니다.
마 12:40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땅 속'을 영어성경들은 the heart of the earth 또는 the depths of the eart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흘 밤낮을 땅의 심장 속에 계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창조주께서 사흘 밤낮을 지옥에 계시다니요!!! 예수님은 실로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다 받아 마시셨습니다. 쓸개를 탄 신 포도주를 맛보시고 그것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죄수들에게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것임을 아시고는 거절하셨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시고 언제나 하나처럼 연합되어 있으시던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으시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셨습니다. 생명이시요 생명의 공급자이신 분이 전혀 상관 없으신 죽음이라는 이질적인 경험까지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생들이 받을 형벌, 아니, 하나님을 떠나 그 마음 속에 이미 겪고 있는 지옥에까지 내려가 사흘을 있으셨습니다.
또한 사흘 만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고 극적으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부활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이것이 기적을 넘어 '표적, sign'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불신적인 유대인들이라도 그 부활 사건을 보고는 깨닫기를 기대하시는 말씀이리라 생각됩니다.
1.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죽음이 보통 사람의 죽음이 아님을 말해줍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죄 때문에 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으심은 자기 죄 때문이 아니십니다. 죄 없으신 분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으신 죽음입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은 그 죽으심으로 인해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더 이상 죽음에 묶여있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와 사망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부활이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동일한 부활과 영생을 주십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은 오늘 종교지도자들의 질문, 즉, 예수님의 출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람인가, 하나님 편인가, 믿을 만한 분인가 하는 데 대한 답이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지점까지는 예수님을 몰라보고 믿지 않던 사람들도, 부활 이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생기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도 기이한 일입니까? 예수님은 왜 군중들이, 종교지도자들이, 지각이 있는 뭇 사람들이 쉽게 믿을 수 있도록 능력 좀 팍팍 베풀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님을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종교지도자들의 불신은 종교성과 위선의 가면을 벗겨내고 그들이 진정으로 추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들을 불신의 자리에 내버려두신 것은 말하자면, 하나님의 품질 관리이십니다. 천하보다 귀한 성자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주시며 이루신 구원, 누구든 품어내실 수 있는 그 놀라운 구원은, 그러나 아무에게나 막 주지 않으십니다. 정직하여 자신의 부족함과 죄악됨을 인정하고 애통하는 자, 구원의 선물을 기꺼이 받고자 하는 자, 하나님을 추구하고 지향하고, 하나님 외에 죄로 타락한 이 부정한 세상에서 결코 참된 만족을 맛볼 수 없는 야곱의 후예, 하나님의 풍성하심과 선하심에 기대어 구원의 약속을 넙죽 믿는 자들에게 주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 이들의 우매함도 불쌍히 여기시고 표적을 주시긴 주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 부활 사건을 지켜보며, 또한 부활 소식도 의심하기 쉬운데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믿는 도가 뻗어나가고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보며, 아마 오늘의 종교지도자들 중에서도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로 발견하고 믿은 자들이 있었겠지요?
주님, 어두운 우리 눈을 밝히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 찬송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교만을 꺾어주시고 어두운 눈을 밝혀주시지 않으시면, 저희는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저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십자가의 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복음을 깨닫게 도와주십시오. 한국 교회에, 복음이 선명하게 드러나 뭇 영혼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놀라운 역사를 줄기차게 이루어 주십시오. 저의 영성과 인성과 입의 언변과 진리의 말씀을 장성케 하시고, 복음 진리를 드러내는 데 사용하여 주십시오. 사람의 힘과 의지와 지혜로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놀라운 구원의 소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는 성령의 역사에 사용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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