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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134.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심 (마 15:21~28, 막 7:24~30)

by songofkorea 2024. 3. 23.

사진 출처: http://kccs.pe.kr/with_home/bbs/board.php?bo_table=sermon_sun&wr_id=610

 

본문의 배경이 된 수로보니게 지역은 위 그림에서 두로와 시돈 근방에 있는 해변 지역이라고 합니다. 

 

막 7: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가셨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한 집에 거하시며 사람들이 모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실 수 있는 능력자 예수님의 존재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금새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막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막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이 여인은 마태복음에는 '가나안 여자'라고 되어 있고, 본문에서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방점은 이방인이라는 데 있지요. 여인은 딸이 귀신들려 고통받는 중에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는 사생 결단으로 나아와 간구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이 못 들으신 척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시자, 소리를 지르며 간구했다고 나옵니다. 듣다 못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좀 해주시라고, 여인이 계속 소리를 지르며 쫓아오는데, 보내달라고 청할 정도였습니다. 



막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예수님의 답변은 뜻밖이었습니다. 자녀는 이스라엘을, 개들은 이방인을 의미했습니다. (마 15:24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이는 구약 시대 내내 이방인과 구별됨을 요구받고 선민 의식을 가졌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별로 이질감이 없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오래고 오랜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스라엘과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먼저 이스라엘을 챙겨주신 것을 확실히 못 박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훗날, 그들은 메시아를 왜 이방에 먼저 보내셨느냐는 얼토당토 않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듣는 이방인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자존심 상하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인의 반응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막 7:28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여인은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 칭했습니다. (마 15:22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들렸나이다") 이는 이 여인이 유대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에 대해 알고 있었고, 성경에 기록된 다윗의 자손,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를 믿고 기다렸음을 의미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딸을 고쳐주실 수 있는 구원자로 믿었습니다. 

여인은 겸손하게 자신이 이방인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과의 언약 백성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예수님 말씀에 따라 개가 된 것처럼 낮추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개도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느냐 어필하였습니다. 맞는 말 아닙니까? 

어디서 이런 겸손과 끈기와 지혜가 나온 것일까요? 딸을 사랑하는 모정, 딸의 고통을 차마 볼 수 없고 내버려 둘 수 없고 포기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그 어떤 장벽도 헤치고 나아갈 힘을 준 것입니다. 나보다 더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축복입니다. 죄악되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생들에게, 그 악한 본성을 이기고 자기 한계를 벗어나 지경을 넓힐 수 있는 동기, 하나님의 마음을 체험할 수 있는 경험들을 제공하는 메커니즘입니다. 타락했을지라도 본능처럼 혈육의 정, 모정, 인간 보편의 인정과 긍휼의 마음을 남겨놓으신 조물주의 오묘하신 섭리입니다. 

 

막 7:29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예수님의 여인의 믿음과 사랑과 겸손과 지혜에 감탄하셨습니다. (마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리고 여인의 간절한 소원대로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이미 귀신에 나갔다! 선언하셨습니다.  


막 7: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창조주의 능력, 생명의 주 예수님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눈 앞에 없어도, 예수님께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그 딸의 영혼을 유린하던 악한 영을 명하여 내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온 인류의 창조주시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애초부터 만민의 구주 예수님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이 공짜가 아니요, 자격 없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희생을 근거로 베푸시는 은혜임을 가르치시기 위해 오랜 역사 동안 놀라운 사전 작업을 하십니다. 그것은 구별과 성별과 축소와 제한의 역사가 계속되며,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들이 얼마나 적은지, 얼마나 전무한지 보여주시는 역사입니다. 그 후 예수님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방향성, 즉, 누군든지, 얼마든지 구원 얻게 하신다는 놀라운 포용과 확장과 무제한의 세계, 은혜의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 대장정의 역사를 위해,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을 그 중 맏아들처럼, 대표요 본보기로 택하시고, 그들 역사 속에 친밀하고도 깊숙하게 찾아오시고 역사의 족적을 남기시고 기록된 말씀을 남기시고 메시아의 육신의 통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 뱀의 후손들과 여자의 후손들이 구별되는 역사, 즉,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가 상이한 두 그룹으로 나뉘는 역사가 계승됩니다. 그 기저에는 '여호와가 구원하신다'는 약속,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자세가 다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1. 자기의로 나아간 가인이 이탈하고, 믿음으로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을 대신한 아들 셋이 남았습니다.

2. 셋의 계보 중에 아담의 10대 후손 즈음에 와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노아 가족만 남고 다 이탈되었습니다.

3. 노아의 아들 중에서도 아비의 허물을 들추고 고발한 함이 이탈되고, 덮어주고 긍휼을 베푼 셈이 택함 받았습니다.

4. 셈의 후손 중, 불가능한 가운데도 하늘의 뭇별, 바다의 모래와 같은 자손을 주리라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습니다.

5. 육신의 힘으로 낳은 아들 이스마엘이 이탈되고 기적적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주신 아들 이삭이 선택되었습니다.

6. 심지어 쌍둥이들인데도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만도 못하게 여긴 에서가 이탈되었고, 진정한 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야곱과 평생 씨름하여 주셨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실 메시아의 통로, 육적인 이스라엘 민족의 실질적인 조상이 되었습니다. 

7. 야곱의 열 두 아들들 중, 그 훌륭한 요셉도 아니고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외면할 수 없어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노라 나섰던 회개의 열매 유다가 택함을 받았습니다.

8. 하나님은 인간적으로 출중한 사울이 아닌 진정으로 인정하시는 왕 다윗을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로 세워주셨고, 다윗의 혈통에게 영원한 왕권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때, 다윗 자신이 모압 여인 룻, 그리고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던 이방인 라합과 살몬의 아들 보아스를 조상으로 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구약 성경에서부터 천하 만민 중 누구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고 믿음으로 복음에 화답할 자들의 하나님 되심을 여러 번 보여주시고 직접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9.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하고 열 지파는 다윗에게로 이어져오는 하나님의 언약을, 마치 어리석은 에서와 같이 헌신짝 던지듯 하고 떠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버리고, 연합에서 스스로 떨어져나간 열 지파는 혈통적인 정통성을 잃고 나라 잃고 떠돌게 되었습니다.

10. 유다 지파마져 다윗 혈통의 왕들의 불순종과 죄악으로 바벨론에 망하게 되어, 이제 하나님의 언약의 별빛이 명멸하는 듯하고,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이어진 이스라엘 민족과의 언약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와버렸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상을 호소하다가 그들이나 이방이나 피장파장이며, 모두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였다는 충격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 폐해진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날 사람, 믿음이 있는 의인들에 대해 듣고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구원의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11. 패망한 이스라엘의 때, 그러나 성경은 이 때에도 에스겔 선지자, 다니엘을 통해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두셨고, 그들과 함께 하시며, 드디어 친히 이루실 새 역사를 세상 열왕을 부수는 뜨인 돌로, 새 성전의 환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는 사랑하는 조국의 멸망과 폐허를 미리 보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의 새 언약을 선포하고, 마른 뼈들이 살아나듯 성령으로 거듭나 일어날 무수한 하나님의 군대, 장차 이루어질 구원과 회복의 역사,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성전을 노래하였습니다.  

12. 70년 포로생활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고향 땅에 돌아와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등 믿음의 리더들을 필두로 성전 재건과 성벽 재건의 역사를 이루고 말씀으로 돌아가며 개혁과 부흥을 도모하지만 한계를 보일 뿐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와 종교의 짐까지 지고 민초들을 고통할 때, 오랜 침묵 속에 조용히, 아는 사람들만 아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다윗의 혈통 요셉과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그 역사를 통해 배반과 실패, 패역함을 보여왔지만, 하나님께서 남기신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대로 하나님은 조용히 하나님의 구원 역사, 약속하신 바를 실행하시는 때가 온 것입니다. 이제 혈통적으로 이스라엘이냐 이방이냐를 가르던 데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님에 대해 믿음을 화합하느냐 아니냐로 구분이 됩니다. 이것이 역사의 줄기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였습니다.

일찌기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정하신 날 이루어질 구원에 대해 노래할 때, 하나님의 백성에는 그간 부정하다며 배척되었던 몸이 상한 자들, 애굽 족속과 열방들이 포함되고, 하나님의 전에 이르러 구원 얻고 경배할 수 있는 대상에 제한이 없어집니다. 그 날에는 이스라엘 치던 열방도 하나님의 세우신 메시아를 경배하러 올 것이며, 말방울도 여호와께 성결하다 인정되고, 부억의 솥들도 하나님께 거룩한 성물이 될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 

스가랴 14:20,21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취하여 그 가운데 고기를 살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 And on that day there will no longer be a Canaanite in the house of the LORD of Hosts.)

 

구약의 하나님의 율법이 신약 시대에는 폐해지고 무의미해진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처음부터 진정한 한 가지 기준, 즉 그 아들 예수님 한 분만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달려오신 역사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할례는 진짜로는 마음의 할례, 즉,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그 마음이 변화된 자들을 가리킴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나는 죄인이로되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로 예수님을 대속 제물로 주시고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복음, 인간의 윤리 도덕과 인과응보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임을 가리키심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일찌기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대로, 이스라엘의 경계와 한계를 넘어 세계 열방 가운데 퍼져, 뭇별처럼, 해변의 모래처럼 많아진 것입니다.  

약속된 메시아가 오신 이 때에, 본문의 가나안 여인, 수로보니게 여인의 입에서 '주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고백이 나오는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이 여인이 바로 믿음의 자손, 마음에 할례를 받은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언약 백성이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스가랴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하나이실 것이요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며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한국어를 쓰는 저도, 이 글을 읽는 그대도 (^^), 혈통으로는 이스라엘 밖의 배척된 자들,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갇혀 있다면, 하나님 존전에 설 수 없는 자들, 자녀가 아닌 개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부르시고 품으시고 구원으로 초대하신 영혼들입니다. 다윗의 자손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자 되심을 믿고, 십자가의 공로를 믿고,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믿고, 씻어내는 물과 성령의 불로 더러운 양심이 청소되고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마 15:28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아멘! 

주 예수님,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제게도 믿음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은총을 누리고, 성전에 들어가 담대히 하나님 존전에 설 수 있도록 의의 옷을 입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근거로 이 죄인을 성결하다, 거룩하다 하심을 감사합니다. 

주님, 저에게도 이 여인과 같은 사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엄마와 형제 자매와 저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붙여주시는 양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주시고, 사랑의 지혜를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귀신 들려 처참해지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기도의 응답을 받게 하시고,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구주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만민의 왕이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