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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136. 4천명을 먹이심 (마 15:32~39, 막 8:1~10)

by songofkorea 2024. 3. 26.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먹고 말이 어눌한 자도 고치신 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더욱 널리 빠르게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그 즈음에 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며 병고침도 얻고 말씀도 듣다가 그만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막 8:1 그 즈음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막 8: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막 8:3 만일 내가 저희를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도 있느니라

 

예수님을 사흘이나 쫓아다닌 사람들인데, 이대로 보내면 집에 가는 도중에 허기져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이 쓰신 표현들에는 무리들의 처지와 예수님이 어떻게 예상하시고 느끼시는지, 아주 상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마치, 얘들아, 이 사태를 우야믄 좋노. 느무느무 보기 딱하다. 어떻게 좀 해봐라 쫌~ 하시는 느낌입니다.

제자들은 전에도 비슷한 상황에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들의 입으로 '줄을 서시오~' 외치며 사람들을 그룹 그룹으로 앉혔고, 자기들의 손과 발로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주었고,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은 것열두 광주리나 주워담았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진기하고 놀랍고 설레이는 경험일까요. 그들은 무언가 배웠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제자들 중에 '주님, 주님은 오병이어로도 오천 명을 먹이실 수 있으니, 이 무리들도 능히 먹이실 수 있으시죠? 가서 뭐든 좀 찾아보겠습니다. 주님께서 전에처럼 축사해 주시고, 이 사람들 다 먹을 수 있도록 차고 넘치게 불려주세요~' 하는 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대답이 어떻습니까?

 

막 8: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결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웬 데자뷰입니까? 


막 8: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로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막 8: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 앞에 놓더라

막 8: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그 앞에 놓게 하시니

 

예수님은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떡을 찾아보게 하시고 떡 일곱과 생선 두어 마리를 가져오자 축사하시고 무리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막 8: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막 8: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막 8: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도 약 사천 명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 합치면 8천~만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이번에도 떡과 물고기가 불어났습니다. 아무리 나눠주고 나눠줘도 제자들의 손에 든 바구니엔 음식이 또 들어있었습니다. 모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 일곱 광주리에 찼습니다. 제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본문을 읽으면, 마치 이 비슷한 일이 전혀 없었던 듯 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사복음서 기자들이 동일 사건을 각자의 관점과 기억의 편집에 의해 달리 기록한 것이라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가르치실 때 언급하시는 것을 보면, 두 가지 다른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막 8:19,20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마가복음은 군더더기 없이 간략하고 간결한 것이 특징입니다. 두번째 사건 때, 예수님이 제자들의 불신과 부정적인 답변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 예수님께서 능력으로 사태를 해결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자들이 무엇을 느꼈는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하여간, 예수님의 인내심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한번 더 생각해보면, 열 두 명이나 되는 제자들이 모두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것은 나라도 그러했을 확률이 매우 높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기사와 표적을 보고 눈으로 직접 그 능력을 목격하고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거나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인간에게 사뭇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비슷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믿음이 없고 자신들의 한계에 무력하게 머물러 선 제자들에게 뭐라고 책망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그저 스스로 느끼도록, 여러 번의 반복된 경험치들이 쌓여, 오랜 불신과 한계적인 생각들이 변화되기까지 참아주신 것 같습니다. 

판단하고 비판하지 말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또 진심으로 인정하지만, 가까운 가족에게, 믿고 기대하는 사람일수록, 쉽게 판단하고 책망하고 잔소리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은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해하고 열폭합니다. 그러나 남을 가리키는 그 손가락 세 개는 저를 가리킵니다. 나도 아무리 잔소리 듣고 핀잔 들어도, 아니 내 자신이 잘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들, 개기고 앉아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 앞에 핑계대지 않고 예수님 앞에 서고 예수님 앞에 행해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제자들보다도 더 연약한 자입니다. 나의 무지함, 나의 어리석음, 나의 불신의 죄를 회개합니다. 저는 아침 잠을 부인하고 아침을 깨워 부지런하고 성실한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당면 과제입니다. 그런데 오늘도 포근한 이불 속에서 댕댕이를 끌어안고 늦잠을 즐겼습니다. 느즈막히 시작한 하루를 대하며 제 자신이 한심스러웠습니다. 

주님, 제 힘으로 고쳐지지 않는 이 연약한 육신과 나태함과 불성실함을 고쳐주시길 기도합니다. 주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시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연약한 저도 능히 강하게 고쳐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 저를 변화시켜 주시고 고쳐 주십시오. 제게 믿음을 주시고, 주님께서 기쁘게 일하실 수 있도록 믿음의 고백을 하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할 일 많은 이 시대에 자기 한 몸 건사하고 육신의 안일을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아침을 깨워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깊이 기도하며 주님과 교제함으로 하루를 힘 있게 시작하게 도와주십시오. 말씀을 주실 주님, 말씀으로 역사하실 주님, 필요한 모든 물질과 동역자들과 환경을 허락하실 주님을 믿고, 막연한 내일로 미루기보다 오늘 할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지금 이 자리, 오늘부터, 예수님의 능력을 맛보며 승리하는 날들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복음 컨텐츠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자, 하나님의 생명 구원 역사에 쓰임받는 자 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