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가버나움을 떠나 고향 나사렛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노바디가 아니셨습니다.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이요, 따르는 제자들이 있는 분,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주인공이셨습니다.
막 6: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사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좇으니라
6: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가로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뇨 이 사람의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뇨
예수님은 가시적인 영적 권능과 성경 지식을 두루 갖춘 분이셨습니다.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많은 사람들이 듣고 놀랄 정도였습니다. 구약 성경을 속속들이 아실 뿐 아니라, 그 핵심을 꿰고 포인트를 가르쳐 주셨으니, 사람들은 빨려들어가고 감탄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그런 지혜와 권능을 받았는지, 놀라워했습니다.
마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마 13: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뇨 하고
그러나 예수님을 누리며 있는 그대로 보기에는, 고향 사람들에게는 이미 보고 경험한 것 때문에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아되심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들 생각에, 메시아라면,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어야 할 것 같았겠지요. 가령, 예수님이 뼈대 있는 제사장 가문이라거나, 지역 유지라거나, 혁혁한 공을 세우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좀 더 유력한 가문에 태어나 더 볼품 있고, 멋지고, 힘 있는 존재였다면, 뭔가 그림이 맞아 떨어지고,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그것도 사생자 루머가 있는 아이요, 아무 특출한 것도 이목을 끄는 것도 없는 청년이었는데... 그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형제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빤히 보고 있는데....
그들은 그들이 알던 청년 예수에서 지금의 이 열풍의 한 가운데에 있는 예수로의 변화가 의아하고 그 말씀의 능력과 기적을 일으키는 권능의 원천이 무엇인지, 그 비결이 무엇인지 사뭇 궁금하기만 했습니다.
마 13: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의문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친밀함은 오히려 경멸을 낳는다'라는 표현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아는 고향 사람들은 그 경험과 지식이 장애물이 되어 예수님의 또 다른 측면, 신적 기원과 메시아로서의 면모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잘 모르던 이방인이요, 예수님을 까맣게 모르는 먼 나라 백성이요, 까마득한 후대 사람으로서, 예수님께 대한 아무런 편견 없이,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에게까지 복음이 와 닿도록 애쓰신 선교사님들과 신앙 선배들의 수고와 충직함을 인하여 감사합니다. 또한 영적 무지와 불신과 어리석음으로 걸려 넘어지던 저에게 십자가를 코 앞까지 들이대시며, 저의 죄짐과 인생짐, 종교의 짐을 대신 담당하신 예수님을 주목하게 도와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죄의 세력에서 놓여나고, 하나님의 오케이 한 마디를 갈구하던 저에게, 완전하신 구원의 길을 보여주심을 감사합니다. 제가 나사렛 사람들처럼 인간적인 면모와 자기 생각으로 누군가를 그릇 판단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정말 뭐가 진실인지, 분별할 수 없는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저를 진리의 길, 진실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시오. 팩트와 잘잘못을 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쓰시는 사람들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마 13:58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고향에서는 오히려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기사와 이적의 목적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알아보게 하는 것인데, 그 진실을 거부하니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겪으신 편견과 배척과 불신은 이 시대에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 일을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들은 태생적으로 죄인이요 죽은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도 완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동안, 육체라는 이 낡은 텐트를 옷입고 사는 동안은, 완전함과 영화로움과 거룩함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믿은 그 순간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와 대속의 은혜, 그것을 근거로 주시는 의롭다 하시는 은총을 믿고 살 뿐입니다.
그래도 속 상합니다. 제가 좀 더 영성이 뛰어나고, 죄를 이기고, 예수님을 닮아서, 비범한 삶을 산다면, 나의 전하는 이 귀한 복음이 더 밝히 드러나고 설득력이 있을 텐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놀라운 보물을 담아내기에, 나는 너무 초라하고 볼품 없는 질그릇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저의 연약함과 자기중심적이로 안일한 죄성을 이기고 복음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제게는 선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무겁고 연약한 육신을 이겨낼 열정과 에너지가 딸립니다. 날마다 넘어지고 엎어지는 모습이, 믿지 않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저의 생활과 저의 사업장의 현황을 아는 이들은, 복음을전하고자 하는 소원에 대해 '너나 잘 하세요~' 할 것만 같습니다. 물론, 자기를 의식하는 마음이요 자의식이겠지요.
하나님 아버지, 힘을 주십시오. 이것이 제게 원하시는 모습이라면, 제가 저의 연약함을 개의치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영성과 사랑의 능력과 지혜를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저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동시에 복음의 깃발을 힘차게 나부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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