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루병으로 열두 해를 고통하던 여인이 믿음의 원터치로 병이 나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속이 바짝 바짝 타들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새치기를 당한(?)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막 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눅 8:40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눅 8:41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막 5:23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눅 8:42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
막 5: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체면도 사회적 지위도 팽개치고 그저 딸을 살려주십사 엎드려 간구했는데, 그 틈에 혈루병 여인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능력 행사만 빨리 빨리 하시면 좋으련만, 예수님은 굳이 그 손의 주인공을 찾아 촘촘한 대화까지 나누시다니... 회당장 야이로는 상황이 워낙 다급하다보니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발을 동동 구르며 혈루병 여인을 고쳐주신 예수님께서 자기 딸도 살려주실 거라는 소망을 붙들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불길하던 예감대로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눅 8: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을 더 괴롭게 마소서 하거늘
딸이 죽었다니, 죽고 말았다니... 이건 그냥 상황 종료 아닙니까? 회당장 야이로는 당혹스럽고 떨리는 눈으로 그저 예수님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때, 예수님께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이미 죽어버린 딸에 대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니... 현실적으로, 이 상황에서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가만 생각해보면, 지켜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말이겠지만 회당장에게는 달랐을 것입니다. 딸의 죽음이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소식 앞에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던 그의 눈은 소망으로 다시 빛났습니다.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일까요? 너무나 무모해 보이지만, 오직 사랑하는 자들은 다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의 힘은 현실의 벽을 뛰어넘고 기적을 보게 합니다. 그들만은 예수님을 믿는 쪽을 택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이 상황 가운데도 예수님께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듣고, 믿음을 화합하기를 기도합니다.
눅 8: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막 9:23 예수께서 그 직원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훤화하는 무리를 보시고
막 5:39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눅 8: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아이 부모만 데리고 들어가셨습니다. 회당장의 집에 이르자 현실 감각이 있지만 믿음은 없는 사람들, 비웃는 사람들이 들어 차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초상 치르고 어두운 장례식장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지극히 평온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마치 낮잠 한 소금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듯,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막 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얼이나라 하심이라
막 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소녀는 예수님으로부터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고 살아났습니다. 아이의 몸은 창조주, 생명의 주의 명령에 순종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요.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니... 예수님 안에는 참으로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 누구라도 예수님께서 생명을 주실 때에 그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고 찬양하게 됩니다.
혈루병 앓던 부정한 여인이 옷자락을 만진 것도 그렇고, 실제로 죽어 있는 아이의 손을 잡은 것도 그렇고, 주검이나 부정한 것과 접촉하는 것은 더불어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럽고 부정한 것이 더럽힐 수 없는 분이십니다. 거룩한 관유처럼, 거룩함과 생명력이 뿜어져 나아가는 분이십니다. 장차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과를 뒤집어쓰고 대신 형벌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그에 대한 심판을 해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막 5: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마 9:26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예수님은 그 일을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지만, 일이 그렇게 될리가요. 죽은 딸을 무사히 돌려받은 부모와 다시 살아난 소녀가 침묵할 수 있었을까요? 목격한 그 무리들이 입을 닫고 있는 게 가능할까요? 예수님을 안 믿고 비웃던 마음의 두 곱절, 세 곱절로 충격을 받고는 그 온 주변에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주 하나님, 저에게 예수님을 구주로 허락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마음껏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파하라 하셔서 감사합니다. 현재적으로도 제게 문제와 숙제가 많이 있습니다. 상황이 어떠하건, 사람들이 뭐라하건, 오직 예수님께서 제게 하시는 말씀을 듣게 도와주십시오. "두려워하고 믿기만 하라" 말씀해 주십시오. "달리다굼" 해 주십시오. 제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삶 가운데 기적을 목도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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