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단절 된 세상에, 생명력을 잃고 병든 사람, 시름 시름 죽어가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많았습니다. 의술도 지금보다 한참 뒤떨어지고 가난했을 그 시절, 귀신 들린 자, 간질병자, 중풍병자, 손 마른 자, 걷지 못하는 자 등 각종 질병에 걸리고 고통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두 맹인이 고침을 받고 나갈 때에,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들이 다른 사연의 주인공을 예수님 앞에 데려왔습니다.
9: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
이 사람은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을 주시고 보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죄인들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장대 높이 달린 놋뱀처럼,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사 우리 대신 형벌 받으시고 죽임 당하신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민 21:8,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귀를 주셔서 무수한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특히, 죄인들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오늘 본문에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말은 사상과 감정과 원하는 바를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사람은 텔레파시 초능력자가 아닙니다. 말을 해야 의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종이와 필기구가 흔한 때도 아니고, 폰으로 문제 메시지를 보내는 시절, 이 사람은 말을 못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더군다나 귀신 들려서 그리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육체적 장애 이상으로 주변인들에게 거리낌과 두려움과 공포감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의 건강했던 모습을 기억하는 가족들에게는 크나큰 아픔이요 마음의 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도 소망의 빛이 임했으니, 예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시고 병자들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악한 영적 존재도 물리치실 수 있을까요?
9:33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
과연 예수님은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의 구원자이셨습니다. 귀신은 창조주 예수님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던 사람이 말을 하였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놀라며, 이런 놀라운 기적은 듣도 보도 못했노라고 감탄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기적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 예수라는 한 사람에게서는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전적인 능력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났던 것입니다. 자연 만물을 제어하고, 병든 것을 회복시키고, 악한 영과 죽음까지도 이기는 권능, 생명을 공급하는 권능이 발현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께서 그토록 오래 반복하여 예언하시고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아임을 뒷받침하기 위한 가시적인 표시, 표적, 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귀로 소문과 소식을 듣고, 눈으로 직접 기적을 보고, 늘 보던 말 못하던 사람이 정상으로 회복된 모습을 목격하고도 그 권능의 주인공,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9:34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예수님의 능력은 누가 봐도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웬일인지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 하나님의 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악으로 규정짓고 적으로 낙인 찍었습니다. 예수님이 악한 영의 편이요, 그의 능력이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발휘된다고 멋대로 판단하였습니다.
동일한 현상을 보고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뜻밖의 반응을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요 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모든 경건한 노력과 수고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자기 백성에게 찾아오신 창조주요 구원자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본질적으로 어두움이요,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요 3:18-20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을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빛 앞에 자기 어두움을 드러내는 것이 싫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러나 구원을 갈망하며 하나님을 찾는 열망이 그것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빛 되신 예수님께서 그 모든 어두움을 물리쳐 주시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어두움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어두움 속에 머무는 것이 꽤나 만족스럽고 편했나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지 않았음을 반증해줍니다.
바리새인들의 논리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혹은 악한 영입니다. 귿르은 예수님을 배척하기에 그 능력의 배후에 귀신이 있다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영이 발휘하는 능력의 특징이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악한 영의 능력은 넘어뜨리고 속이고 빼앗고 죽이는 파괴적인 방향성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의 회로를 설계하신 분이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하게 준비하셨습니까? 인생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알아보고, 죄인들이 예수님 십자가의 대속의 의미를 알도록 얼마나 반복하여 열심히 예습을 시켜 주셨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귀신의 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이 혼선을 빚게 하실까요? 악한 영들은 인간의 죄를 빌미로 송사하고 정죄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서 인간을 컨트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용서로 화해와 회복과 생명의 역사, 살리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히 2:14,15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영적인 리더들,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많은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첫 관문이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을 계속해서 죄와 형벌을 얘기하며 영혼들을 두려움과 공포 안에 가두어 둔다면, 어떨까요? 심판과 지옥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람이 변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죄에 대한 깊은 자각과 회개로 이끌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 전반이 평생 자기 죄 문제에 머물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은 죽은 자들, 자기 힘으로 결코 선을 행할 수 없는 자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을 변화 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은 용서와 용납, 이미 완전히 해결하신 하나님의 업적을 아는 데에서 나타납니다. 성령께서 우리 죄의 크기와 함께,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과 은혜의 압도적인 광대함을 보여주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능히 덮으시고 영접해주시는 구원의 복음에 대해 밝히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혼들에게 자유와 해방과 온전한 생명력이 충만해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더 많이 힘 있게 일으켜 주십시오. 복음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게 도와주십시오. 죄악에 방황하고 어두움의 그늘에 앉은 영혼들에게 생명의 원천 되시는 구주 예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지게 도와주십시오. 저희에게 분별력을 허락해 주시사, 하나님의 사람과 거짓 선지자를 구분할 줄 알게 도와주십시오. 우리 안에 생명과 사랑을 지향하는 하나님의 스피릿과, 자기 긍정과 교만을 부추기는 악한 영의 속임을 구분하게 도와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구원의 주 예수님의 이름을 더욱 힘차게 외칠 수 있도록, 말씀과 힘과 지혜와 능력을 공급하여 주십시오. 모든 연약한 영혼들을 능히 고치시고 일으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복음서] 114. 일꾼을 필요로 하심 (마9:35~38) (2) | 2024.02.27 |
---|---|
[사복음서] 113. 다시 배척받으심 (마13:53~58, 막6:1~6) (0) | 2024.02.26 |
[사복음서] 111. 두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마 9:27~31) (0) | 2024.02.23 |
[사복음서] 110-2.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예수님 (마9:18~26, 막5:21-43, 눅8:40-56) (0) | 2020.07.18 |
[사복음서] 110-1. 혈루증 여인을 고치신 예수님 (마9:18~26, 막5:21-43, 눅8:40-56) (0) | 2020.0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