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물찾기 (복음요절)

024. 선악과를 따 먹은 결과 (창세기 3:7~13)

by songofkorea 2021. 3. 4.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그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은 '먹지 말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였습니다. 

듣보잡 뱀의 감언이설은 '결코 죽지 않으리라', '오히려,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의 공급자요 사랑하는 부모님과 같은 하나님 말씀 대신 뱀의 말을 믿었건만,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선악과를 먹은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선한 것, 좋은 것, 밝고 빛나는 것, 영광스러운 것, 사랑하고 기뻐하고 충만한 만족과 평안이 흐르던 세상에 먹구름이 드러웠습니다. 선한 것들만 있던 세계인데, 전과 다른 것들이 보이고, 느끼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당장 벌거벗어도 아무 거리낌이 없던 남편과 아내가 벗은 것을 수치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아끼던 마음이 자기중심적이고 비인격적인 욕정으로 변했습니다. 아마, 상대방의 눈빛에서 그것을 느꼈고, 그것은 바로 자기 마음도 어두워졌기에, 즉, 악을 알게 되었기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이었겠지요. 

 

그들은 다급하게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수치를 가렸습니다. 이내 말라비틀어질 이 치마처럼,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서로 속아주며 실상을 가리우는 가면, 위선, 허레허식, 합리화, 자기 기만은 죄인들이 얼굴을 들고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필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진정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려 줄 수 있는 것을 무엇일까요?

그리하여, 허물을 가려줄 옷, 의복은 이후 성경에서 계속 반복되는 상징물이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올 것이 왔습니다. 그 날도 동산을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기척이 들려왔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두려워 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3: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하나님은 불길한 사태를 감지하시고, 애타게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3: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3:11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숨는다는 것, 하나님의 존전에 나아갈 수 없다는 것, 창조해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모든 좋은 것들을 허락하시고 이제껏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갖고 사귐을 가졌던 하나님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이 생각났고, 몹시 두려웠습니다. 이 낯설고 황망한 사태를 어찌할까요.  

 

추궁하시는 말씀을 듣고, 아담은 어떻게 반응했나요? 창조 후 얼마 동안 에덴의 평화가 지속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간의 경험을 미루어 하나님의 사랑과 너그러우신 성품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소중하게 생각했다면, 이렇게 말할 법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주님의 말씀을 거역했어요. 저와 아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나봐요.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하나님께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며 용서를 구했을 텐데... 그는 이미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본질을 비껴갔고, 핑계를 대었고, 남을 탓했습니다. 

 
3:12 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부르던 자기 분신과 같은 아내를 그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별 잘못이 없으며, 그 여자가 잘못했고, 그 여자를 붙여주신 하나님이 궁극적 원인이라는 뉘앙스입니다. 

 

여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말할 줄 몰랐습니다. 뱀에게 속은 피해자라고 변명할 뿐입니다. 


3:13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 안에 있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이었고,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 마땅한 권위를 부정하고 맞먹고자 욕심을 내었을 때, 얻은 것은 타락이요, 죄의식이요, 두려움이었습니다.

 

아담은 죽음을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영혼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면 그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신뢰와 사랑의 관계성이 깨어진 것 자체가 이를 나타냅니다.

 

창세기 기사는 인생에 대해 가장 본질적인 것을 말해줍니다.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전제, 바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성스럽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의 중심인 지구, 그 지구별의 주인공인 인간을 창조하실 때, 솜씨 자랑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장난처럼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자유의지를 부여하시고, 하나님께 대해 마땅한 태도를 갖기 원하셨고, 그것을 관심 갖고 주목하셨습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면 그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었습니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고, 하나님이라는 자기 머리 위의 유일한 권위를 거스리는 우를 범했지만, 그 결과는 기대와 정 반대였습니다. 이미 가졌던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영광을 잃어버리고 짐승처럼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깨어지고 사람과의 관계성도 깨어졌습니다.

 

이제 성경은 여기서 끝나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버려버리고 손 털고 일어나 다른 데 가셔서 다시 실력 발휘 하시는 게 깔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은 반역과 불순종과 실패의 자리에서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찾으셨습니다. 대화를 시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치 고집스럽고 철 없는 자식을 달래고 훈계하는 부모님처럼, 인간이 진실되게 사죄하고 뉘우치기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고 합당한 자세를 갖기까지 씨름하십니다. 

 

그리하여... 창세기 3장 후반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이 이토록 두꺼워지고 방대한 내용이 기록되듯 이제 인류에게는 오래고 고된 여정이 펼쳐질 것입니다. 역사 전체를 거쳐, 또한 각 사람은 자신의 일생을 걸쳐 훈련을 받게 됩니다. 결국엔 하나님의 포기치 않는 사랑과 열심으로, 인간은 본래 가져야 했던 그 마땅한 법도를 인정하는 자리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는 자리 말이죠. 

 

전도서 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