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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찾기 (복음요절)

023. 누구 말을 들을 것인가 (창세기 3:1~6)

by songofkorea 2021. 3. 2.

이 세상의 부조리하고 어두운 면은 왜, 언제, 어떻게 존재케 된 걸까요? 

어둠에 대해 다룰 때 잠깐 얘기나눈 적이 있는데요 (참조: 009. 빛과 어둠을 나누시다 (창세기 1:4,5) )

 

신학자들 중에는 물질계가 생겨나기 전, 즉, 창세기 1:1의 태초(the beginning) 이전에, 선행하는 존재들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물질계와 대비되는 영계에는, 물론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고, 영적인 피조물들, 즉, 천사들이 있었겠지요. 수많은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천사장 루시엘의 반역이 일어나고, 이를 필두로 1/3의 천사들이 반역에 가담하여 하나님 존전에서 쫓겨났고, 그 후 그들이 노린 곳이 바로 우리 별, 지구였을 것입니다.

 

타락한 천사들은 엿새 동안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는 것을 숨죽이고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만들 때는 그 처음 대해보는 존재에 대해 놀라워했을 것입니다. 흙으로 만든 연약한 존재, 육체를 지니고 시공의 한계 안에 갇힌 보잘 것 없는 존재인 듯 했으나... ,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그 코에 직접 생기를 불어넣으시자 생명이 들어가고, 살아 움직이는 생령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피조 세계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대리인, 왕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 하나님과 교재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 그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관심 갖고 사랑하시는 존재, 그 영광의 형상을 담아 낸 존재라니...

 

그들은 아름다운 에덴과 모든 것이 온전히 공급되는 원더풀한 세상의 주인공으로 세움 받는 사람이란 존재를 시샘어린 눈으로 가만히 지켜보다가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령하시는 것을 보고는 옳타꾸나! 무릎을 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어느날...  

 

사탄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한 뱀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여자가 홀로 있는 틈을 노려 슬쩍 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세기 3:1b)"

 

뉘앙스가 사뭇 음흉합니다. 하나님 말씀과 비슷해보이지만, 맥락적으로 보면 사실을 완전히 호도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의 '각종' 열매들을, '임의대로', '자유롭게' 먹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셨습니다. 그 무한대의 자유에 오직 하나를 더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한 가지에 대해서만 금지하셨으니까요. 수치로 보자면 99.99%의 자유라 할까요? 

그런데 뱀의 말은 설마, 진짜로, 100% 금지 맞냐, 진짜 그렇게까지 엄격하고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리신 거냐? 뭐 이런 게 되어버린 거죠.  

 

이 때 여자의 반응이 어땠을까요? 

'응??? 어디서 그런 소릴 들었니? 전혀 노노! 하나님이 다 먹어도 된다고 하셨어. 선악과만 못 먹어.' 하고 대답하면 깔끔합니다. 그런데... 온 인류의 제 1대 할머니는 이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2,3) 

 

앞서 얘기나눈 것처럼 선악과라는 금기 명령은 에덴이 에덴 되기 위한 필수 장치였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누리는 생명과 풍요로움과 자유와 만족이 모두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해주는 것이었지요.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 질서를 잡아주는 장치, 또한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으로 볼 수 있는 단서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말은 거의 무한대의 자유로 누릴 수 있는,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만지지도 말라'는 없는 말을 더하여 선악과 금기명령이 사뭇 무시무시하고 엄격하다는 불만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또,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을 '죽을까 하노라'로 바꾼 것을 보면, 혹 어기더라도 살아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설마 진짜로 죽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이 엿보입니다.  

 

빈틈을 발견한 뱀은 옳타꾸나! 하고 본격적으로 사기를 치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세기 3:4,5)" 

 

이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에 정면으로 충돌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자는 둘 중에 누구의 말을 들었을까요?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미 유혹이 되고 욕심을 품자, '저건 안 돼' 하던 마음이 고삐가 풀리고 선악과가 달콤하게 손짓하며 반짝 반짝 빛나보였습니다. 맛은 물론, 먹으면 정말 선악을 아는 지혜와 지식이 풀 장착될 것 같았습니다. 여자는 손을 뻗어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습니다. 역시 맛있었습니다. 당장 어디가 아프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뱀의 말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는 열매를 따 남편에게도 주었습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하고는 열매를 넙죽 받아먹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말들, 주장들이 존재합니다. 생각이 다 다를 수는 있으나, 다양성을 인정한다고 그 내용까지 다 인정해줄 수는 없습니다. 모순되고 상충되는 말들 중, 선택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누구의 말을 들을 것인가,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분야 전문가, 지식과 경험을 믿을 만한 사람인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생명을 준 부모님, 내 인생에 동반자 의식과 책임 의식을 갖고 있는 가족들, 진실된 벗들의 말을 듣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람 중에는 비록 그런 고마운 존재들이 없다 해도 우리에겐 진실한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지도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과도 같은 당부를 통해,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대언자,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며, 그 분의 말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게서 너의 중 너의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

 

그리고 그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도, 후에 '변화산'이라 일컫는 산에서,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언하시고 당부하십니다. 

 

마가복음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우리는 무수히 많은 목소리들, 다양한 주장들 가운데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진실하신 분, 그 말에 책임을 지시는 분, 약속을 지키시는 분, 진리를 말씀하시는 분, 진리 자체이신 분, 들을 때 생명을 얻을 수 있는 분, 바로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