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3:21 예수의 친속들이 듣고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불치병을 고치는 초인적인 능력, 기존의 종교가들과 다른 권세 있는 가르침은 한번 예수님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기 때부터 보아온 친족들에게는 예수님의 인성적인 측면이 고정관념으로 자리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면모, 메시아로서의 측면이 낯설고 믿기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여겼습니다. 얼른 잡아 끌어내려, 예전의 그, 자신들이 알던 목수 예수로 문제 없이, 얌전히 살게 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보러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바알세불이 지폈다고 하거나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근거도 없이 악의적인 해석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대속 사역으로 인해 사람의 모든 죄에는 용서의 여지가 있음을 선언하십니다. 단 하나, 예외가 있습니다. 그렇게 누구에게나, 어떤 죄인에게도 활짝 열린 절대적이고 완벽한 구원의 주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에게는 용서의 길이 닫혀버립니다.
막 3: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무릇 훼방하는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막 3:29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얻지 못합니다. 영원히 죄과를 진 상태가 됩니다. 성령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구세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메시아로 증거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셔서 진리를 선포하시고, 기적을 일으키시고, 메시아 사역을 감당하셨는데, 성령을 훼방하고 귀신이다 바알세불이다 폄하한다면, 그리하여 예수님의 생명 사역, 재창조의 사역을 부인한다면, 그런 자에게는 구원의 문이 닫혀버립니다.
마 12: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마 12:33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예수님은 더 나아가 예수님 자신과도 성령을 비교합니다. 말로 인자를 거역하는 자에게마저 용서의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의 친족들처럼, 연약한 제자들처럼, 일시적으로 예수님을 거역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의 신성을,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인류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이요, 그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죄과가 해결되었음을 깨닫고 나면 구원의 효력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에게서 나타나는 일의 성격, 능력의 원천이 신적인 것임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낸 열매를 보고 나무가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생명을 살리는 일, 병자를 고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의 근원이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것이라 하는 것은, 좋은 열매를 맺은 나무더러 나쁜 나무라고 판단하는 것처럼 모순된 일입니다.
마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마 12: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나쁜 사람이라고 거부하는 것은 왜일까요? 이는 정직하지 못한 눈, 순수하지 못한 왜곡된 동기를 가진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하고, 선한 것을 배척하는 악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선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신은 부족하여 그 선을 실현하지 못할지라도 누군가 그것을 이루어내는 것을 보면 박수 치며 응원하고 칭찬할 것입니다.
마 12: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마 12:37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막 3:30 이는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함이러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악용하여 온갖 악의적인 말,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가 난무하는 시대입니다.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사람, 자살하는 사람, 영향력이 막히는 피해자들이 즐비합니다. 법 체계가 약하고 불완전하다고 해서, 또 속임수로 무마할 수 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심판의 날이 있습니다. 그 날에는 무슨 무익한 말이든지, 낱낱이 심판받게 됩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오래 참으심으로 인해 당장 결과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안일하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자율이 주어져 있을 때, 잘 써야 합니다. 책임질 날이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고집이 세고 사고의 유연성이 떨어지는 자입니다. 저의 오해와 편견으로 선한 것을 악하다 하거나 악한 것을 선하다 그릇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불완전하며, 하나님만이 정확히 아시고 바로 판단하심을 인정합니다. 저에게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대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혼란한 이 시대에 주의 백성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정직한 마음으로 선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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