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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083.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붓다 (눅7:36-50)

by songofkorea 2020. 3. 7.

7:36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7:37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7:38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7:39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바리새인 시몬이 예수님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죄 많기로 소문난 여인 하나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손님을 대접할 때 머리에 향유를 붓고 발 씻을 물을 주는데, 여인은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드렸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곁에 서서 울고,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향유 옥합은 여인이 가진 아주 소중한 자산이었을 것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아낌 없이 부어드릴만큼, 여인은 받은 은혜가 컸고,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컸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처럼, 가장 귀한 진주를 손에 넣은 진주장사처럼, 진정으로 예수님을 발견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지극한 기쁨과 감사가 있었습니다.  

여인의 극진한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부담스러워하며 손을 내저어 물리치지거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의 진심어린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다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게 훈훈하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바리새인에게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가 맞다면, 여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이요, 물리치셨을 거라 여겼습니다. 그가 가진 메시아,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지자에 대한 기대는, 자신과 같은 훌륭한 사람을 찾아 상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일반적인 생각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을 아신 예수님은 이 일을 꼬투리로 해서 중대한 진리를 알려 주십니다. 



7: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7: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7:42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7:43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예수님은 오백 데나리온과 오십 데나리온 빚졌다가 탕감받은 두 사람을 예로 제시하시며 시몬이 깨달을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비유에서 두 사람 모두 빚을 탕감받았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런데 그 액수에 따른 무게감과, 탕감받을 때의 해방감, 그로 인한 감사와 사랑의 크기가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바리세인 시몬은 자신이 빚을 탕감받은 자라는 것을 알기는 할까요? 예수님은 자기의라는 알량한 나뭇잎 치마로 부끄러움을 가린 채 거만한 눈으로 남을 판단하는 시몬에게 차분히, 그러나 팩트로 깨우쳐주셨습니다. 


7:44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7: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시몬은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안 주었습니다. 입맞춤의 예도 갖추지 않았고, 머리에 그 흔한 올리브 기름도 붓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예수님을 초대했을까요. 예수님을 살펴보고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려고 그랬을까요? 어쨌든 그의 행동에는 그의 야박한 마음이 반영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콕콕 찝어 그와 여인의 행동을 대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사함'이라는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7:48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7:49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7:50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함께 앉은 자들도 예수님의 '죄를 용서해준다'라는 선언에 눈을 치켜 떴습니다. 그들은 그 말씀의 맥락과 진의를 잘 알았고, 합당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가 누구이기에'... 

그렇습니다. 죄사함을 선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만 가능한 그런 일을 선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인지, 과연 하나님의 권한을 가진 사람인지, 신성모독하는 자인지 분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단박에 그 고민의 자리, 선택의 기로에 위치시키신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사람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데나리온 비유에서 마치 바리새인들은 열 배는 덜 죄인인 것처럼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적으로 비쳐지는, 일반적 추측일 뿐입니다. 그들은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추구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의인인줄 알았고 다른 죄인들을 업신여겼습니다. 그러니 실상은, 빚을 탕감해주는 주인 입장에서 참을 수 없는, 받아들일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오십보 백보인 똑같은 죄인들인데, '나는 빚 진 거 없소. 나는 떳떳하오. 굽신거리고 감사해할 이유가 없단 말이오.' 하고 목을 뻣뻣이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지 않았고, 빚을 탕감받은 적이 없고, 그러므로 죄사함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의 빚을 탕감받은 경험, 죄 사함을 받는 경험을 했더라면, 예수님을 사랑했을 것이요, 여인의 지극한 감사와 경배에 기쁨으로 동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긍휼히 여겨주십시오. 집채만한 죄 짐에 깔려죽을 듯이 고통하던 데서 죄사함의 은혜를 덧입었는데, 살만해지니까 또 바리새인처럼 교만한 마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 감사와 환희가 없는 냉랭한 마음이 생깁니다. 제가 시몬과 같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임을 고백합니다. 성령께서 제 무지한 심령을 진리의 빛으로 비추어 주시고, 사랑을 모르고 사랑의 지혜도, 능력도 없는 저의 실상을 깨닫게 도와주십시오. 겸손히 주님의 용서와 은혜를 구하고, 여인과 같이 주님을 사랑하고 전심으로 섬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와 동일하게 죄짐에 눌려 고통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구원의 주 예수님께 인도하는 삶 살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