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Gospel :: 복음이 궁금해?

19. 야곱과 평생 씨름하신 하나님

by songofkorea 2016. 11. 27.

큐레이션 : 고래 사냥 (송창식)

 

시원한 노래 잘 감상하셨나요? 그나 저나, 덩치 큰 고래를 무슨 수로 잡을 수 있을까요?

옛날 고래사냥 방식 중 하나는 밧줄을 매달아 작살을 꽂은 후, 몇날 며칠이고 고래에게 끌려다니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상처 입은 고래가 서서히 힘을 잃을 때까지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것이었죠.

잡아 먹기 위해 고래를 잡는 데 비유하기가 좀 그렇지만, 야곱의 인생을 보면 고래사냥이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성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꾀쟁이 고집쟁이 고래심줄 야곱...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온 천하의 주인이신 하나님마다 야곱에게 니가 이겼다하며 항복을 선언하십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게 되어 있는 법, 사랑하시기 때문이죠.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사랑은 그토록 질긴 야곱을 설복해 내십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아무리 힘들어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내치지 않으시는 그 사랑이 야곱의 마음을 녹이신 거죠.

야곱와 일생 씨름하시며 결국은 그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에게 두신 뜻을 이뤄내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은, 또한 우리 각 사람의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말씀

창세기 32:26~28, 30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Q1. 창세기 25:19~34, 27:1~28:9을 읽어보세요.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에서의 장자권을 사는 것, 아버지를 속여 장자가 받을 축복 기도를 가로채는 것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Q2. 창세기 27:10~22을 읽어보세요. 야곱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과 야곱의 서원 기도가 어떻게 대조됩니까?

 

Q3. 창세기 29 ~31장을 읽어보세요. 야곱의 타향살이 20년 생활은 어떠했습니까? 그 과정에서 야곱은 무엇을 배웠으며, 이스라엘 열 두 지파는 어떻게 태동되었나요?

 

Q4. 창세기 32장을 읽어보세요. 그리운 고향 땅으로 가려면 야곱은 어떤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까? 얍복강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는 야곱,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사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어떻게 이어지나요?


핵심 짚어보기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나

기원전 2006년 경, 이삭이 60세 되던 해, 그 가정에 쌍둥이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쌍둥이들이 엄마 뱃속에서부터 하도 심하게 싸워댔는지, 리브가는 대체 무슨 일이냐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묘~한 예언을 해주셨습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창세기 25:23)”

형 에서는 성격이 활달하고 능숙한 사냥꾼이었습니다. 반면 야곱은 조용하고 주로 집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늠름하고 남자다운 에서를 편애하고, 무엇보다도 그가 사냥한 고기 요리를 좋아하였습니다. 반대로 어머리 리브가는 어린 자가 더 높아진다는 하나님의 예언을 마음에 두어서인지, 동생 야곱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야곱은 겉으론 조용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의 발꿈치를 붙들고 나온, 야망과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차자로 태어난 것에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계속 틈을 보다가, 드디어 기회를 포착하였습니다. 야곱에 붉은 팥죽을 쑤고 있는데 들에서 돌아와 기진맥진한 에서가 팥죽을 좀 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크게 한 방 질렀습니다. 팥죽 한그릇에 에서의 장자의 명분을 요구한 것이지요.

장자의 명분

고향 땅을 떠나 나그네로 사는 아브라함의 후손에게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재산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약속, 그들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시고, 지금은 나그네로 있는 그 땅을 그 후손에게 주시며, 그들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신다는 약속, 그것은 그들에게 가장 귀한 자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적인 축복은 그 시대의 전통을 따라 장자에게 계승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팥죽 한 그릇과 장자권을 맞바꾸자는 제안은 그 자체로 흠씬 두들겨맞고 욕이나 쳐먹을 만한 망발이었습니다.

그러나!!! 명민한 사기꾼 야곱은 평소 에서를 겪어봐서 그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하고는, 자리를 보고 발을 뻗은 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에서는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깟 장자의 명분이 다 뭐야. 당장 너 가져. 그래, 내 맹세할 테니까, 어서 팥죽이나 가져 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장자의 명분을 소홀히 여겼습니다. 조부 아브라함을 택하여 불러내시고, 그 땅과, 무수한 별과 같은 백성을 약속하신 하나님, 죄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실 메시아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비전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그런 영적인 축복은 당장에 주린 배를 채워 줄 팥죽 한 그릇보다 못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거래를 하고 말았습니다

속이는 자 야곱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을 가로채는 야곱, Ludwig Richter (출처: KCM)

세월이 흘러, 이복 형 이스마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늙은 이삭은, 자신도 기력이 남아 있는 동안 유언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장자 에서를 불러 들에 나가 사냥을 하여 맛있는 고기 요리를 해오도록, 그리고 마음껏 축복 기도를 해주겠노라 하였습니다. 이는 가장으로서의 유언적인 기도요, 장자에게 아버지의 영적인 기업을 계승하는 매우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들뜬 마음으로 에서가 들에 나가 열심히 사냥을 하는 사이

이삭이 하는 말을 엿들은 리브가는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리브가는 쌍둥이가 태중에서 싸울 때, 하나님께로부터 어린 자, 동생이 더 위대한 자가 될 것라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연히 남편에게도 여러 번 얘기했겠지만, 영적으로 둔감해진 이삭은 그래도 에서가 장자인데…’ 하며 흘려들었을 것입니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믿었지만, 정직한 방법을 택하고 하나님께 믿고 맡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노안이 들고 어눌해진 남편을 속이는 살떨리는 사기극을 주동하기에 이릅니다. 야곱에게 형 에서인 척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가로채도록 한 것이지요. ‘어머니, 들키면 축복은커녕 괘씸죄로 저주를 살까 무섭습니다하는 야곱그러나 리브가는 잘못되면 자기가 다 책임 질 것이라 장담하며 채근하였습니다.

못 이기는 척, 야곱은 어머니가 해 준 맛있는 고기 요리를 들고 아버지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눈 질끈 감고는 에서 행세를 하였습니다. 이삭은 목소리가 좀 다른 것 같네~ 하며 잠깐 의심을 하긴 했지만, 워낙 눈이 어두워 이내 속고 말았습니다. 이삭은 맛있는 고기 요리와 포도주에 기분이 좋아져서는 장자에게 베풀 축복의 예언을 마음껏 야곱에게 풀어놓았습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주저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27:29)”

이는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나게 합니다 (창세기 12:3 참고).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한 족장들의 말은 예언적인 성격이 강하고 의미심장한 것들이었습니다. 이로써 상황 끝! (역사적으로 이삭의 축복기도대로 예언이 이루어져 다윗과 솔로몬 통일 왕국 때에 에서의 자손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한 발 늦은 에서가 이 사실을 알고 땅을 치고 후회하며 자기에게도 축복 기도를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이미 신적 언약의 계승은 야곱에게 빼앗긴 뒤였습니다. 에서는 너무나 분하여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만 치르면 야곱을 죽이고 말겠다며 이를 갈았습니다. 걱정이 된 리브가는 야곱을 멀리 친정집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피신하도록 하였습니다. 잠깐 갔다가 에서의 화가 누그러지면 돌아올 수 있으려니 했으나, 이것은 야곱의 험악한 나그네 인생의 출발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리브가와 야곱이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의지하지 못하고 앞서 나갔을 때, 가정이 콩가루가 되고, 형제가 원수처럼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사랑하는 아들과 생이별을 하고, 무엇보다 야곱은 타향에서 20년 세월을 고생하게 되지요.  

하나님은 왜 차자를 택하시는가?

부부가 서로 다른 자식을 편애하는 것이 이 가정의 비극의 씨앗이었다면, 리브가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언은 어떤 의미일까요? 태어나지도 않은 쌍둥이 형제 중 하나를 높이신 하나님, 동생을 택하시고 편애하신 하나님...

거슬러 올라가보면 형 가인과 아벨의 대조가 나옵니다. 그 때에도 동생인 아벨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지요. 또한 아브라함의 가정에서도 몸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과 본처 사라의 아들 이삭이 대조됩니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이 분명하셨습니다. 이스마엘과 하갈을 돌보시되 아브라함의 약속을 계승할 진짜 아들은 이삭 한 사람이라고 못박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도록 하셨습니다. 십분 양보하여 이스마엘은 적자가 아니라서 차별을 받았다 쳐도, 에서와 야곱의 경우에는 왜 장자와 차자의 순서가 뒤바뀐 것일까요? 이 데자뷰는 후에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도 반복되어, 야곱은 노년에 두 손자의 순서를 거꾸로 하여 에브라임에게 오른 손을 얹어 축복 기도를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문화와 전통에서 중요한 장자의 권리가 뒤집히고 차자를 택하는 이 사건들은, 그만큼 중요한 복음의 예표가 됩니다. (32. 옛 언약, 새 언약 참조)

야곱의 하나님

야곱은 살기 등등한 에서를 피해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밧단아람 외가댁을 가는 먼 길, 뛰고 뛰다 밤을 만나면 돌을 베개 삼아 노숙을 해야 했습니다.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던 내성적인 사람이었는데, 홀홀단신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요?

그런데 한 밤엔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되 적대적인 마음으로 하늘에 닿으려는 악한 계획은 흩으셨지만, 화평의 언어, 사랑의 언어로 코드로 친히 손을 뻗어 내리셨습니다. 하늘에서 친히 사닥다리를 내려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바른 관계성 속에 하나님께 갈 수 있게 해 주는 야곱의 사닥다리이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Landscape with the Dream of Jacob, Michael Willimann, 1691 (출처: 위키미디어)


보호막이 걷히고 홀홀 단신 나그네 신세가 된 자리에서, 야곱은 더 이상 조부의 하나님,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닌, 야곱 자신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 28:13,14)”

비록 사기를 쳐서 장자가 받을 축복 기도를 가로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조상 대대로 주시는 영적인 복들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목숨을 위협받는 야곱에게, 무사히 돌아오게 하시며, 땅의 티끌같은 자손을 주시고 그 땅을 주신다는 약속, 땅의 모든 족속이 그와 그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얼마나 벅찬 말씀일까요. 하나님은 반신반의하는 야곱에게 믿음을 심으시기 위해, 그와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신 것을 다 이룰 때까지 떠나지 아니하시겠다 힘주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웅장한 스케일로,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을 볼 수 있는 눈은 아직 야곱에겐 없었습니다. 그는 다음 날 제단을 쌓고, 딱 자기 수준에 맞는 서원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창세기 28:20~22)”

우리는 야곱을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과 야곱이 하나님께 요청하는 소원의 간극을 볼 수 있습니다.하나님은 야곱의 필요를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무사귀환도 약속하시고,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비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직 하나님을 못미더워 하며, 마치 자신이 무엇을 드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람과 ‘give and take’ 식의 딜을 하듯 조건부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달래고 비위를 맞춰 자기의 필요를 공급하시고 지켜주실 분으로 제한하는 것이지요.

우리와 참 비슷하지 않나요? 이 간극을 어찌할까요? 야곱은 그 평생을 통하여 시행착오를 겪게 됩니다. 정말 열심히 살지만, 나름대로는 성실하고 양심적이고 맡은 바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지만, 종국에는 자기 힘과 노력으로 안 되는 극한 지점들을 만나, 결국 하나님 바짓가랑이를 붙들게 되지요. 그리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볼 줄 모른 채 도대체 왜, 나만 왜???’ 하며 식식거리는 야곱, 그의 등 뒤 한 걸음 떨어진 곳에는 늘 하나님께서 따라가십니다. 야곱이 어깨에 힘을 빼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조용히 그 음성에 귀 기울이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세월, 파란만장한 그의 평생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딱 너같은 사기꾼 만나 너도 당해 봐!

어머니의 친정 마을 밧단아람에서는 외삼촌 라반 가족이 그를 맞아주었습니다. 야곱은 그곳에서 첫눈에 반한 운명같은 사랑을 만납니다. 어여쁜 둘째 딸 라헬이었습니다. 그는 외삼촌을 도와 7년을 일해주는 대신 라헬을 자기 아내가 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원하는 목표는 반드시 얻어내고야 만다! Power of love!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에 야곱에게는 7년 세월도 수일처럼 느꼈습니다.

라헬에 대한 구혼, Ludwig Richter (출처: KCM)


그런데라헬과 결혼만 하면 세상 행복할 것 같은 기대에 열과 성을 다 한 야곱의 마음은 외삼촌 라반의 속임수에 감쪽같이 배반당하게 됩니다. 라반은 시침 뚝 떼고 있다가 결혼식 날 밤, 어두운 신혼방에 베일을 가리고 언니 레아를 들여보낸 것이었습니다. 날이 밝아 사태를 깨닫고 거칠게 항변하는 야곱에게 외삼촌은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이렇게 일축했습니다.

우리 고장에는 언니를 제끼고 동생을 먼저 시집 보내는 법이 없어~ 정 원한다면 7년 더 일하게. 그럼 라헬도 내 기꺼이 자네한테 시집보내겠네.’

이 뻔뻔하기 짝이 없는 라반. 그러나 당해봐야 안다고, 야곱에게는 그런 라반이 거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파렴치한 인간인지 성토하다가도 야곱은 문득 문득 아버지와 형을 속인 과거가 생각났을 것입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야 할 가정에 두 아내가 있다보니, 야곱의 집은 끊임 없는 질투와 갈등의 도가니였습니다. 야곱은 외모가 매력적인 라헬을 더 사랑하였지만, 하나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언니 레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레아만 연거푸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라헬은 경쟁심에 몸종을 통해 아들을 낳았고, 레아도 합세하여 자기 몸종을 첩으로 들였습니다. 야곱은 졸지에 두 아내와 두 여종 사이에서 이리 저리 치이며 눈치를 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야곱에게는 어느덧 열 두 아들이 태어났고, 이들은 훗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조상들이 됩니다.

약속의 땅을 향하여

라반을 피해 도주하는 야곱, Ludwig Richter (출처: KCM)

야곱은 자신보다 훨씬 더 지독한 라반에게 딱 걸려서, 두 딸을 위해 14, 그리고 몇 번이고 월급을 깎이고 떼이면서 6, 꼬박 20년을 처가살이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굽히지 않고 자기 밥그릇을 챙겼고, 그가 급료로 받기로 한 얼룩이, 점박이, 아롱이 가축들이 평균 통계치를 훌쩍 넘어 쑴풍 쑴풍 태어났습니다. 야곱의 재산이 불어나자 외삼촌 라반도, 그 아들들도 시기하고 경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귀향을 명하신 것입니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내게 말씀하시기를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 곳을 떠나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창세기 31:13)”

하나님께서 명하셨다면 확신을 가질 만도 한데, 이번에도 야곱의 방법은 당당하지 못하였습니다. 야곱은 라반과 그 아들들이 양털 깎으러 멀리 출장 간 틈을 타 야반도주하게 됩니다. 좋든 싫든, 스무 해를 함께 지낸 곳, 아내들의 아버지 가족을, 마치 죄 짓고 도망치듯 이렇게 몰래 떠나다니사람을 두려워하다가 야곱은 관계성을 헤치는 비겁한 작별을 택하게 됩니다. 더군다가 아내 라헬이 아버지가 섬기던 드라빔 신상을 훔쳐 온 터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들과 어린 식솔들, 가축떼를 이끌고, 역부족이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라반은 칠 일 길을 맹렬히 뒤쫓아 야곱 일행의 덜미를 잡았습니다. 자칫하면 야곱이 완전히 약점을 잡히고 고향 땅으로 돌아가지 못할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 하나님께서 야곱의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전날 밤, 화가 잔뜩 나 있는 라반의 꿈에 나타나 야곱에게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 경고하신 것입니다. 라반은 그저 드라빔이라도 찾고 싶었지만 아무리 샅샅이 뒤져도 신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친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야곱은 쌓이고 쌓인 울분을 터뜨리며 반격을 가했습니다.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외삼촌이 나를 도둑 잡듯이 추격하셨습니까? 그동안 외삼촌 가축을 돌보고 일하면서 가축이 다치거나 손실되면 내 돈 물어가며 다 갚았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청춘을 바쳐서 일했는데, 외삼촌은 제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습니다. 이거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세상 사 다 그렇듯, 라반은 입장이 달랐습니다. 오갈 데 없는 놈을 거둬주고 일거리도 주고 딸들도 시집보내 주었는데, 야곱이 가진 모든 것이 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인데, 이 무슨 배은망덕한 놈이냐며 되려 역정을 내었습니다. 딸들이랑 손주들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게 이렇게 몰래 야반도주 하냐며, 안 그랬으면 성대하게 작별 파티라도 열어주고 좋게 보냈을 것이라며 허세도 부렸습니다. 라반은 꾀쟁이 야곱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게 결코 만날 수 없는 고용주와 노동자의 평행선을 재차 확인하고는 라반과 야곱은 화해의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지독한 비즈니스맨 라반의 마지막 남은 인간미를 보십시오. 두 딸을 빌미로 야곱을 부려먹고 재산을 불린 라반이었지만, 그 부성애는 죽지 않아 사위에게 이렇게 신신 당부를 합니다.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창세기 31:50)”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고비를 넘긴 야곱은 라반과 그 아들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평화 조약을 맺은 후, 축복 가운데 훈훈한 작별을 하게 됩니다.  


얍복 강, 도저히 건널 수 없는 한계선 

라반이라는 태산을 넘었지만, 고향으로 가는 야곱에게는 해결해야 할 일생일대의 과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야곱을 죽이고야 말겠다고 이를 갈았던 형 에서였습니다. 조심스럽게 전갈을 먼저 보내보니, 아뿔사, 에서가 무려 사백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로 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죽을 것 같은 두렵움에 숨이 막혀왔습니다. 그는 식솔들을 두 떼로 나누어 선발대를 치면 후발대가 피할 요량을 세웠지만 끝까지 두려움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저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이 요단을 건널 때는 제 손에 지팡이 하나뿐이었는데 이제 이렇게 두 떼나 이루었습니다. 간구하오니 내 형 에서의 손에서 구원해주소서. 저 혼자라면 또 도망이라도 갈 수 있지만, 저 연약한 처자식들은 어떻게 한답니까~”  

그의 기도는 진실되고 간절했습니다. 이제까지 자기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있고, 벧엘에서의 약속의 말씀도 기억하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핵심, 아버지와 형을 속인 자신의 죄악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가장 절박한 순간,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조차 이렇습니다.

기도를 하고도 안심이 안 되자 그는 모두들 얍복강을 먼저 건넌 후에도 자신은 홀로 이편에 남았습니다. 그토록 사랑하던 라헬도, 그 아들 요셉도 다 보냈는데, 자기만은 살겠다고 그렇게 남아 있는 게 스스로도 기가 막혔습니다. 결국 그에게 있었던 것은 알량한 자기 사랑, 그 한가지 뿐이었습니다.

야곱과 씨름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하는 야곱, Ludwig Richter (출처: KCM)


마침내는, 이런 야곱을 직접 다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사자가 내려와 얍복강 가에서 야곱과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고래심줄 같은 야곱이 끝까지 지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결국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습니다.

자녀들이 조근 조근 말로 할 때 알아들으면 오죽 좋을까요? 누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회초리를 대고 아프게 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인격적이고 진실한 대화를 하기 원하는 부모 마음 아랑곳 없이, 자기 눈에 좋아보이는 것에 온통 정신이 팔려 눈도 제대로 마주쳐주지 않는 고집스런 자식처럼, 야곱은 완력을 써야 굴복하는 질긴 사람이었습니다.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이상 32:26,27)

속여 빼앗는 자야곱. 깊은 한숨과 함께 대답하는 그의 마음은 이렇게 고백하는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주님. 장자가 되고자 했던 욕심, 배반과 속임수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사실 저의 욕심과 이기심의 주된 동기였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악다구니같은 삶을 살았지만, 고생하여 얻은 그 모든 것들이 이제 보니 아무 소용이 없네요. 참으로 신기루같은 세상 행복을 좇느라 헛된 삶을 살았군요.

주님, 저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진짜 축복을 주십시오. 주님만이 저를 도와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아니면 안 되는 걸 알겠습니다. 제발...’

이스라엘,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긴 자

이 때, 하나님의 사자는 놀라운 말을 하였습니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32:28)”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자 이스라엘’, 이는 장차 야곱의 열 두 아들을 통해 세우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이 됩니다. 더 나아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본받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을 믿는 모든 성도들의 소속을 나타내는 이름이 됩니다.

어느 누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 사랑 때문에저주실 때 가능한 일입니다. 일평생 땅에만 코박고 살아가는 우리 인생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진리에 법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하나님께서 씨름하여 주신 덕분에, 인생의 한계점, 진정한 절망의 자리에 이르게 되고, 비로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진짜 축복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사랑하셔서, 야곱처럼 환도뼈를 치시고, 무릎꿇게 하시면서도 내가 졌다고백하시는 하나님자녀를 사랑하여 져줄 수밖에 없는 인자하신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고집 센 우리 뒤를 좇으시며 조용히 도와주시며, 우리 눈이 주님을 향하기까지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밤새 씨름한 야곱은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는 의미로 그 곳 이름을브니엘이라고 지었습니다. 야곱과 씨름한 사람은 성자 하나님, ,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오시기 전의 예수님의 현현입니다.

환도뼈를 맞아 절뚝거리는 몸이었지만, 브니엘의 아침은 새로운 존재, 이스라엘이 된 야곱을 찬란하게 비추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확신한 야곱은 이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얍복강을 건너 앞세웠던 처자들을 제치고 형 에서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저 멀리서부터 형에게 다가가는 동안 일곱 번 땅에 절을 합니다. 이를 본 에서의 마음도 풀리게 되어 두 형제는 이십 년 만에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되지요.


에서와 야곱의 화해, Ludwig Richter (출처: KCM)


물론, 야곱은 이후로도 끈질긴 세상 욕심과 자기 고집때문에 한참 더 고난을 겪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계승한 족장 야곱은 그 인생이 어찌나 파란만장한지, 스스로도 파라오를 접견했을 때 그의 나이를 묻는 파라오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야곱에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창세기 47:9)”

그러나, 얍복강의 씨름을 통해 조금씩 하나님께 진심어린 관심을 가지고 코드를 맞춰나가기 시작한 야곱은 큰 문제가 터질 때마다 하나님 앞에 옷매무새를 바로 잡고, 꽉 움켜쥔 소중한 것들을 하나님 손에 맡겨드리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리하여, 문제아 야곱도 기어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는 사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는 사람, 세상 최고의 권력자 파라오 앞에서도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축복을 빌어주는 늠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야곱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힘으로 억지로 하지 않으시고 잠잠이 야곱의 뒤를 좇으시는 하나님,고래심줄같은 우리의 오해와 편견을 인내하시고 하나님께 진정한 관심을 갖기까지 씨름하시는 하나님은 인자하고 겸손하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 아무리 오래 걸려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평생에 걸쳐 씨름하시며 끝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내시는 그 집념,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일러스트 : John Song

팡세

당신의 삶에서 하나님과 계속해서 줄다리기를 하는 영역이 있다면 무엇인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적어보세요

'Gospel :: 복음이 궁금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 욥이 학수고대한 변호자  (2) 2016.12.02
20. 선으로 악을 이긴 요셉  (0) 2016.11.27
18. 여호와 이레  (0) 2016.11.27
17.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0) 2016.11.26
16. 바벨탑과 민족들의 이동  (1) 2016.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