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의 공격에 욥은 이미 많이 들은 말이며, 친구들이 모두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욥기 16:4)"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내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은 하고, 간접 경험들을 통해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정확히는 남의 사정을 잘 모르고,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상황이 바뀌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감정도 생각도 판단도 달라집니다. 변덕이라기보다는, 그냥, 직접 당해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무지한 것들이 많죠.
그래도 자기였다면, 입술의 말로라도, 환난 당한 자를 위로하고 힘을 복돋워주었을 것이라고 욥은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공격을 한들, 위로를 해준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16:7,8)"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욥 자신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이를 가시며 원수처럼 날카로운 눈초리로 쏘아보시는 듯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주께서 원하시고 허용하셔서 벌어진 일 아닌가 생각하니, 무리들이 그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고 모욕하고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대적하는 것도 당연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6:11~13)"
하나님께서 용사같이 달려드신다 생각하니 욥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요. 그의 얼굴을 울고 울어 빨갛게 되었고 그의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웠습니다. 그 절망의 순간에 욥은 자신이 손에 포학이 없고 그의 기도는 정결하노라 호소합니다. 땅이 그의 부르짖음을 쉬지 않고 울려달라고 호소합니다. 그는 끝까지 끝까지 하늘의 하나님, 궁휼과 이해로 그를 변호해 줄 중보자를 찾습니다.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16:18,19)"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16:20,21)"
세상과 나 사이에 도움을 주실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 뿐이신데, 마냥 침묵하실 때, 세상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가볍디 가벼운 나의 존재가 금방이라도 부서져버릴 것만 같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은 캄캄히 침묵만을 고집할 때, 우리는 욥과 같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 수밖에 없습니다. 먼지처럼 사라져버리고픈 생각이 들고, 또 그런 내 자신이 불쌍하고 서글퍼 또 다시 눈물이 나고... 아무것도 아닌 나, 내가 있든 없든 전혀 개의치 않고 톱니바퀴처럼 돌아갈 이 무정한 세상...
거대한 세상 앞에 아무 바람 막이 없이 마파람을 맞는 것처럼 아프고 서럽던 젊은 날, 기숙사 옥상에 올라가 달빛 아래 구슬피 울고 울던 시간들이 떠오릅니다. 매 순간 정성스럽게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인생이 가혹한 것인지, 또한 생각하면 불완전하고 누추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는 많은 순간들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는 그걸론 택도 없는 듯 느껴져 정말 답이 없고 인생이 막막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저 생존 본능처럼, 답이 어디서 나올 수 있는지는 짐작하기에,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 앞에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해 주시고, 잘못도 많지만 진심을 다해 살아낸 순간들을 알아주시고, 다만 불쌍히 여겨 주심을 기대하며...
그 절망의 자리에 서는 우리, 그걸 지켜보시는 하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실까요. 무엇을 위해 우리를 그 자리로 이끄시고, 무엇을 예비하고 계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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