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날마다천국한잔::구약

07.08. 아들의 반역, 그 도망 길에 (사무엘하 14~15장)

by songofkorea 2016. 7. 11.

징계도 아니고 화해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2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했지만, 압살롬은 잘못을 저지르는 수 많은 아들과 딸들이 그렇듯, 아버지가 자신을 계속 미워한다고 여겼습니다. 잘못이 자신에게 있음을 온 천하가 지적해도, 진정한 반성과 용서와 성찰로 사랑받지 못하는 괴로운 시간을 견뎌내는 자녀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했을 것이고, 좀 더 지나서는 자기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외면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던 어느 순간, 압살롬은 아버지를 무시하고 미워하고 공격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압살롬은 온 이스라엘 가운데 외모로 으뜸 가는 자였습니다.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흠이 없었고, 삼단 같은 머리털을 자랑하였습니다. 그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았는데, 아름다운 딸의 이름을 '다말'이라고 지었습니다. 암논에게 겁탈당한 누이 동생과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면서도 왕의 얼굴을 볼 수 없자 요압을 청했습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자 요압의 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와 화를 내는 요압에게 압살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사무엘하 14:32b)" 


이게 무슨 말입니까? 결론적으로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겠다, 나는 떳떳하다, 이렇게 외면 당할 이유가 없다 그런 말로 들립니다. 그는 누이 동생에 대한 원한으로 형제 암논을 계획적으로 살해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치 정당함을 인정받지 못하여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요압이 다윗 왕에게 나아가 압살롬의 말을 전하자 그제서야 다윗은 압살롬을 불렀습니다. 압살롬이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래도 아비의 얼굴을 보고자 하는 압살롬의 마음을 헤아리고 불쌍히 여겨서일 것입니다. 압살롬이 얼굴을 땅에 대며 절하자 왕은 압살롬과 입을 맞추었습니다. 표면상으로는 부자지간에 관계성이 회복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다윗은 아직도 압살롬이 어떤 위인인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말 없이 품어주고 용서해주면 압살롬이 그의 마음을 알아주고 성숙해지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본격적인 다윗 가문에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가 호의적이라는 것을 확인하자 압살롬은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왕에게 재판을 청하로 오는 사람마다 불러 세워서는 이간질하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내가 이 땅에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사무엘하 15:3,4)" 


이렇게 그는 부지런히 립서비스를 하고 입을 맞추며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4년 만에 서원한 것을 지키겠다면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보내어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브레인 아히도벨을 비롯하여 이백 명을 청하여 반역의 세를 불렸습니다. 


압살롬의 반역과 이스라엘의 민심이 다 그에게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황급히 예루살렘을 떠나 도망하였습니다. 그는 백전 노장이었지만, 그에게는 용장 요압이 있었지만, 경험도 일천한 압살롬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도망길을 택하였습니다. 밧세바 사건으로 칼이 그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로 알아차린 것이지요. 다윗의 모든 신하들과 가드 사람 육백 명이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기 코가 석 자인 때에도 그들을 걱정하여 (아마도 가드 사람들의 지도자였을) 잇대에게 돌아가라고 종용하였습니다. 좋은 시절이라면 몰라도, 쫓겨난 나그네와 같은 자신을 왜 따라오느냐, 괜히 그들을 자기와 함께 떠돌아다니며 고생하게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잇대는 단호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15:21)" 


친히 낳은 아들의 반역,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등을 돌리고 배반한 것 같은 다윗의 초라한 도망 길에는, 그래도 그의 진심을 알아주고 함께 슬퍼해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온 땅 사람들이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사독과 레위 자손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궤를 엘리 제사장 때처럼 언약궤를 부적처럼 쓸 수는 없었습니다. 다윗은 사독에게 이렇게 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보라 하나님의 궤를 성읍으로 도로 메어 가라 만일 내가 여호와 앞에서 은혜를 입으면 도로 나를 인도하사 내게 그 궤와 그 계신 데를 보이시리라 

그러나 그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아니한다 하시면 종이 여기 있사오니 선히 여기시는 대로 내게 행하시옵소서 하리라 (15:25,26)" 


다윗이 철저히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다만 은혜를 바라고 선처를 기다리는 마음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갔습니다. 함께 한 모든 백성들도 각기 자기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갔습니다. 아렉 사람 후새도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았지만 다윗은 압사롬의 편에 가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독과 아비아들 두 제사장, 그리고 그 아들들 아히마아스와 요나단과 함께 연대하도록 일러주었습니다. 

 

세상이 저를 공격해오고, 이길 힘도 빽도 없을 때, 나의 실패를 인정하기 어렵고,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의 걱정, 낙심, 비웃음, 그리고 내가 믿음의 이름으로 불렀던 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때, 한 없이 속이 상합니다. 한 판 붙어볼까, 싸워볼까, 그냥 당하면 바보 아닌가,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가, 정말 실패요 패배로 인정해야 하는가 복잡한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겸손으로, 그 뜻에 순종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실패의 자리에서도 나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붙들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이렇게 선하신 하나님,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