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심각한 문제는 보이지만 내가 해결하기 어려울 때가 많지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프로젝트의 지도자로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 모세의 첫번째 질문은 “내가 뭔데, 내가 어떻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있잖아. 내가 너랑 같이 갈께”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세의 질문은 “그럼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가도 되는지 의문스러웠던 것이지요. 모세는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칭호가 주는 의미 외에, 더 확실히 이 신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는 돌려 돌려 조심스럽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13)”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3:14)”
“내가 누구냐고? 나는…” 창조주가 피조물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는 것, 특정한 이름으로 불리며 레이블이 붙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하나님의 이름을 여쭈었을 때, 하나님의 대답은 영어로는 “I AM THAT I AM”, “나는… 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시공과 그 안에 든 모든 것들과 보이지 않는 존재까지, 모두 것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은 오직 유일하게 피조되지 않은 자존자, 영원히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무신론 과학자들이 전에는 물질이 영원히 존재해왔다고 주장하다가 시공의 시작이 있음이 드러나고 창조주를 배제한 채 그 시초를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다가 ‘그럼 그토록 복잡하고 고도의 지능을 지닌 하나님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해보라’고 역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자기가 설명해야 할 물질의 시초를 설명하지 못하고선 상대방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화법인데요,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시지요.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이름 I AM을 도용하고 부지 중에 신성모독을 하게 하는 문화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명상할 때 "I AM"을 주문처럼 외우라고 하거나 모자, 티셔츠 등 디자인의 도안으로 사용하는 것이죠.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옛날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속였던 그 속임수,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어'라는 거짓말의 반복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줄 알고서도 못하게 막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고, 올바른 영적 질서를 잡는 것... 어찌 보면 합당하고 당연한 문제인데, 하도 오염된 현상이 많아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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