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도 다져 주셨습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니라 (창세기 15:7)”
약속만 받고 눈에 보이는 아무런 증거 없이 오래도록 기다리는 어려움을 이미 겪은 지라, 아브라함은 뭔가 가시적인 증표를 요구합니다.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은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15:8)”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정식으로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삼년 된 암소와 암염소, 숫양, 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언약식 풍습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짐승들의 중간을 쪼개었습니다 (다만, 새는 쪼개지 않았다고 언급하고 있네요.) 짐승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그만큼 나의 생명을 걸고 약속한 것을 지키겠다는 표현입니다.
해질 때에 아브라함이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짙은 흑암과 두려움이 엄습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13,14)”
아브라함을 택하여 축복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니… 좀 의아스럽습니다. 어째서 히브리 민족이 먼저는 이집트에서 사백 년을 노예 생활로 고생하게 됩니까?
첫째, 이집트 파라오의 손에서 해방되는 출애굽은 장차 죄와 죽음 권세에 시달리는 인생들이 어린양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 얻을 모습의 예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탄의 종처럼 되어 심판 아래 놓였다가 구출되는 백성들입니다.
둘째, 현재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살고 있는 가나안 족속이 있는데 굳이 그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는 것은 앞으로 전쟁이 불가피함을 전제합니다. 히브리 민족 편에서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가나안 족속의 죄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15:16)”
하나님은 악인의 멸망도 마음 아파하시는 분이십니다. 가나안을 벌하시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는 인내로 기다리며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때가 있고, 그 때가 지나 죄악이 가득 차게 되면 또한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고,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습니다. 하나님은 횃불을 통해, 친히 아브라함과 피의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받을 것이 없으신데, 통상적인 ‘give and take’의 트레이딩이 아닌데…
수많은 피조물 중 하나인 우리가 무엇이라고 하나님께서 우리 눈높이로 낮아져 오셔서 약속을 주시고, 피의 언약을 맺으시고, 스스로 그 약속에 매이실까요.
축복 이전에 출애굽을 겪게 하시는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알려주시고, 언약을 맺어 믿고 기댈 수 있는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 그리고 신실하게 이루어가신 하나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려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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