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전날 성전에 오셔서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베다니에서 묵고 다시 예루살렘을 찾으셨을 때,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에게 앞으로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사건은 성전 정화 사건과 교차로, 샌드위치처럼 삽입되어 있으며, 오늘 본문의 성전 정화 사건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전 정화 사건은 수천년의 유대교가 그들의 경배의 대상이신 주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평가받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대목입니다.
막 11: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막 11: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는 전혀 낯선 모습, 뜻밖의 행동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상과 의자를 뒤집어 엎으셨습니다.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그 누구도 물건을 가지고 성전에서 들락날락 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성전에서는 성전세를 낼 수 있는 유대 화폐로 교환하고, 흠결 없는 짐승이라고 제사장들이 인정해주는 희생 제물을 사기 위해, 말하자면 리베이트 비리로 다져진 매매들이 관행화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성전에서 이런 불법이 자행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자기들 생계가 걸린 일인데, 젊은 청년이 와서 뭐라 한다고 장사꾼들이 쉽게 포기하고 나갈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행동은 참으로 과격하고 파격적이었습니다. 아마 고함을 치시고 눈을 부라리고 발을 쾅쾅 구르며 채찍을 휘두르셨을 것입니다. 동전들이 엎어지고 비둘기들이 놀라 퍼더덕 거리고, 사람들은 이 경건한 성전 안에서 삽시간에 벌어진 소동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마 21: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다윗 때부터 준비되고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마치고 기도를 올린 것을 보면 성전의 존재 목적과 참된 기능을 알 수 있습니다.
왕상 8: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솔로몬은 왕 된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모하는 모든 민족이 이 성전에서, 또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환난의 때에 구원하여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왕상 8:41~43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저희가 주의 광대한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듣고 와서 이 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므릇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으로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옵시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사 56:6,7 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섬기며 나 여호오의 이름을 사랑하며 나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이방인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왕상 9:3)' 하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종교 의례가 하나님 보시기에 옳바른 것이었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들의 경배를 기쁘게 받으시며, 그들에게 복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가상하지만, 인간이 만든 성전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까지 내려오면서, 성전은 더 이상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본래 목적을 상실했습니다. 형식적인 제사와 그 이면의 부조리와 비리들이 뒤섞여 하나님께서 견디기 어려우신 상태가 되었습니다.
말 1: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 2:3 보라, 내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게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같은 마음이십니다. 후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날 성전에서 장사하는 물건들을 내어쫓으신 사건을 기억하며 시편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요 2: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시 69:9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막 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눅 19:48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이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다 예수님의 교훈을 놀랍게 여겼습니다. 평소, 종교지도자들의 비리를 알고도 항거할 수 없고, 부조리함을 느껴도 불평할 수 없었던 힘 없는 민초들은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비겁함이 싫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이렇게 만홀히 여김받는 것을 견디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모습이 얼마나 놀랍고 속시원했을까요. 백성들의 마음은 이렇듯 정의롭고 자기를 아끼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보며, 경이로움과 존경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럴수록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더욱 시기 질투에 휩싸이고 현실적인 위협을 느끼며 예수님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귀를 기울여 듣고 존경하는 것을 알기에 뾰족한 방도를 찾지 못하고 발을 동동거릴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성전을 깨끗케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물질적인 성전을 헐고 진정한 성전, 인간과 하나님의 만남의 장소, 임마누엘이 되어 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속의 죽음으심으로 죄의 장벽을 없애심으로 말이죠.
참 성전이신 예수님, 하늘나라를 도포자락에 촤라라락 끌고 이 땅에 오신 주님, 자기 육체를 찢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서 부활 승천하시고, 이제는 주를 믿는 성도들을 성전 삼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신 주님, 믿는 자들을 벽돌 한 장 한 장 삼으셔서 새로운 하나님의 집을 지어가시는 주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성전된 제 자신을 잘 가꾸고, 정결케 하고, 거룩하신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기에 흡족한 마음 갖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의 연약과 죄악된 것과 불신과 한계를 잘 아시는주님, 저를 정결케 하여 주시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마음 되게 도와주십시오. 육을 입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육적으로도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사랑을 표하며, 주님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복음서] 217. 예수님이 죽으시는 목적 (요 12:20~26) (0) | 2024.08.24 |
---|---|
[사복음서] 216. 어린아이들이 찬양함 (마 21:14~16) (0) | 2024.08.23 |
[사복음서] 213~214.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마 21:17~19 막 11:11~14) (0) | 2024.08.21 |
[사복음서] 212. 무리들이 따름 (마 21:10~11, 요 12:17~19) (0) | 2024.08.20 |
[사복음서] 211. 예루살렘의 멸망 예언 (눅 19:41~44) (0) | 2024.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