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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천국한잔::사복음서

[사복음서] 176. 열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심 (눅 17:11~19)

by songofkorea 2024. 5. 20.

오늘 본문에는 메시아를 만나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한센병자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누가 메시아를 영접하고 그 은혜를 누리는가, 그리고 은혜를 입은 사람들 중에도 그 은혜에 걸맞게 감사를 드리고, 예수님께 관심을 갖고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성, 죄인 대 구세주의 관계성을 맺는 자가 얼마나 적은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경유하셨습니다. 앞선 본문에서 보면 사마리아인들 중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신다는 이유로 지역 감정이 발동하여 배척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질을 부리려는 제자들을 만류하시고 또 다른 마을들을 시도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음이 열린 자들, 자기 백성에게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자들을 찾으셨습니다. 

슬프게도 이것이 현실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갈망하고 진리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진리요 구원의 문 되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자들이 대부분이요 디폴트입니다. 자기 삶이 바쁘고, 다른 관심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살만하기 때문이고, 하나님 외에 다른 데에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17:12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7:13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사마리아의 평범한 사람들은 예수님도 유대주의에 찌들어 자신들을 무시할 거라 생각하고 자존심을 부렸지만, 놀랍게도 이 문둥병자들은 예수님을 만난 것을 하늘이 주신 일생일대의 기회로 알아차렸습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라고 한 것이나, 후에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한 자를 사마리아 사람, 이방인이라고 밝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남유대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역 따지지 않고 문둥병자들끼리 함께 의지하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종교색 짙은 당시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가족들조차 만날 수 없는 처지에, 유대인이냐 사마리아인이냐 따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의 자랑거리가 다 허물어진 자리, 거기엔 차별과 교만이 설 자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정한 자요,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할 자들이기에, 겸손하게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예수 선생님, 저희를 좀 불쌍히 여겨주세요~~~' 



17:14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병을 고쳐주실 수 있고, 생명을 살리실 수 있고, 인생들에게 행복을 주실 수 있는 예수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예수님께서 이들의 간구를 들으실 때 반가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보시고 그들의 마음의 소원, 절박함, 간절함을 다 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시기 위해 큰 힘을 들일 필요도 없으셨습니다. 바로 병이 나은 것처럼 말씀하시며, 문둥병에서 치료된 것을 공식적으로 증명하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지위가 회복될 수 있도록, 절차대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라 하셨습니다. 

문둥병자들은 믿고 순종했습니다. 제사장에게로 가다가, 도중에 깨끗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놀라고 기뻤을까요. 이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환호하며 제사장에게로 내달렸습니다. 그 간의 설움과 외로움을 다 씻고, 한시라도 빨리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17:15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7:16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제사장으로 가던 길을 돌이켜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돌아오는 내내 그는 큰 소리로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다다르자 그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는 놀랍게도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인만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병 고침을 주신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하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하지 않은 나머지 아홉에 대해서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문둥병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만큼, 그 병에서 나음을 얻은 것은 놀라운 기적이요, 크나 큰 감사 거리입니다. 그런데 왜 아홉 명은 홀라당 은혜만 받고 가버린 것일까요.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참 민망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남들에게는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기적을 체험한다 해도 예수님과의 관계성이 더 깊어지지 못하고 금새 과거지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생 문제 해결, 원하는 것을 얻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받은 은혜에 합당한 반응을 보인 이 사마리아인을 주목하여 보시고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의 믿음이 구원으로 이끌었노라고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그의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그는 자신을 낫게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구원자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알아보시고 인정해주시고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구원과 영생의 복락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데 있습니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 아버지, 저는 문둥병자들과 같이 세상에서 볼품 없고 찌끼같은 존재가 될까봐 늘 아등바등 살았던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의로움과 아름다운 열매들을 들고 서야만 받아들여질 줄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실함으로 저를 괴롭히시고, 인내로 저의 가벼운 요청들에 침묵하시고, 오로지 예수님, 진짜 해답이신 예수님만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보화들을 예수님 안에 담아두시고, 제가 이 예수님을 주목하고 보화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요 선물로 알아보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쉬운 방법, 힘을 쓰는 방법으로 하지 않으시고, 오래 인내하셨습니다. 그 결과 저의 모든 가면과 허울이 벗어지고 영적인 소경이요 문둥병자요 죽은 자로 드러났습니다. 그것이 쓰디 쓰고 구슬퍼서 울고만 있는 제게, 영문 밖에서, 죽지 못해 사는 자와 같을 때에, 하나님은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여주시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저를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고난과 죽으심은 저의 죄 값을 다 치르신 완전하신 희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공의로우심은 완전하며 영광스러우신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인내와 신실하심, 진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과 희생을 찬양합니다. 

주님, 제가 성경의 사마리아인처럼, 은혜를 망각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게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 시간도 나의 구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돌립니다. 제 평생토록, 더욱 새로운 언어로,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돌리는 존재 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