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도 여호와의 성호를 이용한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 나옵니다.
나는 선한 목자다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ὸς
선한 목자와 나쁜 목자가 대조되는데 누가 선한 목자입니까? 나쁜 목자들의 특성은 어떠합니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0: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0: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선한 목자와 대비되는 목자들은 삯군 목자입니다. 보수를 받고 임시로 양을 돌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최고의 목적은 자기 자신의 유익입니다. 평소에는 돈을 버는 것이 목표요, 위기가 닥쳐서 이리나 맹수에게 위협을 받으면 자기 안전이 제일의 목표가 됩니다. 그들은 양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납니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자기 목숨이 제일 중요한데, 삯군은 당연히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양들은 사나운 이리떼에게 희생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한 목자는 어떠합니까?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고 자기 안전보다, 자기 목숨보다 더 위합니다.
사실, 세상에 이런 목자가 있을까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양들이나 반려 동물을 아무리 사랑하고 위한다 하더라고, 사람의 목숨이 우선시 됭야 하는 것이 이성적으로 바른 판단일 것입니다. 물론 비유에서 양들은 사람들을 일컫겠지만 말이죠.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정도로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당신 자신이신 이 선한 목자와 양들의 관계를 성부 하나님과 예수님의 관계성에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영원부터 함께 계시고, 한 마음으로 통하는 사랑의 관계성 속에 있으셨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잘 알고 사랑하셨을까요. 그러기에 예수님이 이 장구한 구원 사역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와 뜻을 합하여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독생자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셨을까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시험, 야곱이 요셉을 잃고 베냐민마저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첫째와 둘째를 연달아 잃은 유다의 이야기, 사사 입다, 반역자인 아들의 죽음 앞에 목놓아 울던 다윗왕의 이야기를 통해 조금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미션을 함께 논의하시고 계획하시고 수행하시며 성삼위 하나님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아끼고 그 아픔과 기쁨과 애환을 함께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서로를 알고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처럼, 예수님께서 우리 인생들을, 그 분의 백성을,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모님이 자기 자녀를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눈도 못 뜬 채 품에 안겨 울 때, 똥오줌을 싸고 젖을 먹고, 눈을 뜨고 방긋 거리고 고물고물 손과 발을 버둥거릴 때,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걸음마를 하고 말을 배워나가는 그 모든 순간들을 함께 했고 아는 것처럼, 속속들이 알고 섬세하게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그러나 부모는 다릅니다. 부모는 자기 목숨보다 자식의 안위를 더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한 숱가락씩 부모에게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사랑하시고, 당신의 양으로 보호하시고, 위기의 때에도 달아나지 않고 목숨 걸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놀라운 말씀일까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완전하신 분이시요 선하신 분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들이 마치 이리와 맹수 앞의 양떼들처럼 위급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평화 시엔 삯군 목자라도 상관 없겠지만, 위기의 때요, 목숨을 걸지 않고는 양들을 지켜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연약한 인생들은 악한 대적 앞에서, 세상의 유혹과 위협 속에서, 목자인 척 하는 사기꾼, 사이비 이단과 도적과 강도들의 획책에 언제든 유린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의 생명을 내어놓는 희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인 것입니다.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예수님의 눈은 유대 이스라엘만 향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상으로 품고 계십니다. 만민의 주, 만민의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름에게 부요하게 하시도다
계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10: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양들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들을 양들을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는 약해서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을 내어놓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버릴 권한과 다시 얻을 권한이 있으십니다. 신은 영원하신 존재로서 죽음과 상관 없지만, 성자 예수님은 메시아 사역을 위해 100% 인간이 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 아담의 원죄를 이어받지 않으시고 신성과 완전한 거룩하심을 유지하시되, 또한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난 100% 사람으로서, 우리와 동일한 조건에서 죽음이 가능한 존재, 고난과 형벌과 심판을 받을 수 있는 대등한 존재가 되셨습니다. 또한 단번에 완전하고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시고 죄와 사망 권세를 파하시므로, 더 이상 죽음에 묶여 있을 필요가 없으신 분으로 부활하셔서 하늘나라 영광의 지위로 복귀하셨습니다.
10:19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10: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10:21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로서 양들을 위하여 생명을 내어주실 것을 말씀하시자 듣는 이들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귀신 들렸다, 미쳤다, 그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혹자는 귀신 들린 정신 없는 자가 하는 말 같지가 않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눈 먼 자를 고치셨는데, 귀신이 그런 일을 할 수 있겠느냐, 하며 반론을 펼쳤습니다.
저는 후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 행하신 일들과 제 영혼에 베풀어주신 죄사함과 구원의 역사, 그로 인한 기쁨과 자유와 새 인생을 생각해볼 때, 예수님은 확실하고도 명백하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요,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대로 영원하신 분이시요 성자 하나님이시요, 세상 만민의 구세주, 죄인들을 구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이 작은 자를 당신의 사랑하는 양으로 아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시고 목자가 되어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 찬송 드립니다. 제가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으로 마음이 눌릴 때가 있습니다.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놓치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의 주님께서 저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고, 성령님을 보내어 주셨고, 장차 오셔서 영원한 하늘나라 본향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제가 주님의 양으로서, 주님 음성을 귀 기울여 듣고 주님을 붙좇고 평안과 기쁨 가운데 거하길 기도합니다. 나의 선하신 목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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